낙안읍성, 이래서 썰렁하고 저래서 닫혀 있다

국가소유, 개인소유 모두 운영에 진퇴양난

등록 2005.06.23 22:11수정 2005.06.24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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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굳게 잠겨져 있는 집, 국가소유의 14채 중 한 곳인 이곳은 수년째 빈집이다

굳게 잠겨져 있는 집, 국가소유의 14채 중 한 곳인 이곳은 수년째 빈집이다 ⓒ 서정일

사립문이 닫혀 있다. 방문엔 굳게 열쇠가 잠겨져 있다. 마당엔 보수하려고 가져다 놓은 돌이며 모래가 쌓여 있고 한쪽 구석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화장실은 쓰레기가 여기저기 널려 있고 짐승을 키웠음직한 우사는 쓰러져가고 있다. 낙안읍성내 국가 소유의 14채 중 몇몇 초가집의 실태다.

또한 개인소유의 집엔 어김없이 '주인허락 없이는 들어오지 마시오'라는 푯말이 대문에 걸려 있다. 나라가 소유하고 있는 집은 몇 년씩 사람이 살지도 않고 관리가 미흡해서 을씨년스럽고 개인 소유의 집들은 대문에서부터 관람객의 방문을 막고 있다. 관은 관대로 민은 민대로 왜 이런 식으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을까?


"동업하기 때문이죠"

인근지역에서 낙안읍성을 관심 깊게 바라보고 있는 한 주민은 뼈 있는 말을 내뱉는다. 사실 '낙안읍성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가'라고 할 때 복잡한 계산식이 있게 마련이지만 간단하게 절반은 국가에 절반은 주민에게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업'이라는 말도 충분히 설득력은 있다.

a 가축들이 살았을 것으로 생각되는 우사는 쓰러져가고 있고 잡초들이 무성하다

가축들이 살았을 것으로 생각되는 우사는 쓰러져가고 있고 잡초들이 무성하다 ⓒ 서정일

하지만 예부터 동업은 부모지간에도 하지 말라고 했다. 그것을 염려해서인지 낙안읍성이 만들어질 때 국가가 전체적으로 매입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성곽 내에 주민들이 소유권을 갖고 있는 집들이 생겨났고 그것은 어떤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밀고 당기는 일이 다반사요 서로의 눈치를 보다가 밀어붙이기식 일방통행이 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귀한 세금으로 매입한 국가 소유의 집을 방치하다시피 해 놓고 있는 것은 잘못이 아니냐는 질문에 관리사무소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은 복잡한 문제라며 고개를 저으며 이구동성 얘기한다. 한 사람을 들여놓기 위해선 수많은 문제들을 생각해야 봐야 하고 막상 거주 후에도 또 다른 문제점을 노출시킨다고 말한다.


집을 임의로 변형시키지 않고 잘 관리해 줄 것인가? 관람객들에게 나쁜 인상을 주지 않고 건실한 생활을 할 것인가? 주민들과는 마찰을 일으키지 않을 것인가 등 비교적 가벼운 문제에서부터 입주 후 장사를 하거나 기존 주민들과 동일한 기능으로 경쟁하지는 않을까 하는 좀 더 복잡한 문제까지.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부적격으로 판단되어 퇴거를 명해도 '갈 곳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국가 소유의 집을 무단 점거해 버린다는 것. 7~8년째 그냥 눌러 앉아 있는 M모씨, 전기까지 개인명의로 변경해 놓고 버티는 S모씨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한마디로 진퇴양난의 모습들이다.


a 한달전쯤 들어온다는 서당선생은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며 닫혀진 서당은 그저 모형에 불과하다

한달전쯤 들어온다는 서당선생은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며 닫혀진 서당은 그저 모형에 불과하다 ⓒ 서정일

그럼 '주인 허락 없이 들어오지 마시오'라고 쓴 푯말은 뭘까? 그곳이 바로 주민들이 소유하고 있는 개인재산이다.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 개인의 재산을 임의대로 행사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보면 납득이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한 것은 아닙니다"

어찌 보면 관광지이기에 관람 온 사람들에게 충분히 보여주고도 싶지만 이것저것 손대고 때론 파손하면서 조금 신기하거나 오래된 물건이라 생각되면 슬며시 가져가는가 하면 상추나 오이, 호박 등을 따가며 텃밭을 망쳐놓기도 했었다고 말한다.

방안에 앉아 있으면 문을 불쑥 불쑥 열어보고 심지어 화장실 문까지도 전혀 거리낌 없이 열어 싫은 소리라도 하면 되레 관람객들이 화를 냈다면서 개방하는 게 좋겠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얘기한다. 이 또한 진퇴양난이다.

한 달 전쯤 국가 소유의 집인 서당에 들어온다고 예정된 서당선생은 아직도 감감 무소식이다. 얼마 전까지 '매매'라고 쓴 플래카드를 걸어두었던 개인소유의 집은 누구에게 팔렸는지 플래카드가 걷어져 있지만 여전히 인기척이 없다. 이래서 썰렁하고 저래서 닫혀져 있는 낙안읍성내에 있는 초가집들. 서로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짜봐야 할 시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덧붙이는 글 | 낙안읍성 민속마을 http://www.nagan.or.kr

덧붙이는 글 낙안읍성 민속마을 http://www.naga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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