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기사와 아가씨의 설전 그리고 방관자가 돼버린 나

여러분, 관심을 가지고 삽시다

등록 2005.06.28 08:52수정 2005.06.28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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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24일)이었습니다. 저는 모처럼 버스를 타고 출근합니다. '카풀'하는 김 계장이 다른 일로 먼저 출발을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버스가 오지 않습니다. 저는 정류장에 걸려있는 버스 안내판을 봅니다. 제가 타려고 하는 버스는 좌석버스입니다. 13분에 한 대씩이라고 적혀있습니다. 그런데 벌써 20분이 지났습니다.

택시가 제 앞에 잠시 섰다가 지나갑니다. 저는 택시를 탈까 하다가 그만둡니다. 조금 더 기다려도 출근시간에는 늦지 않습니다. 택시를 타면 버스요금보다 예닐곱 배 이상 비쌉니다. 버스를 이용하면 그만큼 돈을 아낄 수 있습니다.

저는 시계를 봅니다. 벌써 25분이 지났습니다.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합니다. 집에서 버스정류장까지 걸어 나온 시간까지를 감안하면 40분 넘게 지났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걱정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어떡한다. 지금까지는 김 계장 덕분에 편하게 출퇴근을 했습니다. 그런데 7월 11일부터는 아닙니다. 고생 좀 해야 합니다. 김 계장이 본원으로 들어갈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별 수 없이 버스를 이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버스가 이렇게 지체되고 있으니 정말 큰일입니다.

드디어 좌석버스가 옵니다. 30분 넘게 기다렸습니다. 그것도 막 지나쳐 가는 걸 겨우 붙잡았습니다. 불쾌했지만 참았습니다. 버스기사는 검은 안경을 끼었습니다. 미안한 표정도 없습니다. 버스가 백화점 앞을 지나갑니다. 아파트 앞 정류장에 멈춥니다. 아가씨가 올라탑니다. 요금함에 돈을 넣습니다. 그런데 아가씨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화가 단단히 난 모양입니다.


"버스가 왜 이렇게 늦게 와요? 30분 넘게 기다렸단 말이에요."

아가씨 목소리에 날이 서 있습니다. 버스기사가 아가씨를 쳐다봅니다. 불쾌한 표정이 역력합니다. 아가씨는 항의를 계속합니다. 13분 간격으로 와야 하는데 왜 지키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버스기사도 더는 참기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출근시간이라서 차가 밀립니다. 이해하여 주십시오."
"그렇다면 출근시간만이라도 차를 늘리면 되잖아요?"
"그게 우리 맘대로 됩니까. 배차는 사업주가 하는데요."
"그럼 사업주한데 시민의 애로사항을 얘기해야지요. "
"참, 아가씨도. 왜 우리가 그런 문제까지 신경을 써야 하나요?"
"아니지요. 버스는 시민의 발이에요. 버스를 운전하시는 분도 책임이 있어요."
"그만 합시다. 우리도 죽을 맛입니다."

버스기사가 입을 꾹 다뭅니다. 아가씨도 더는 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맨 뒤로 가더니 빈자리를 골라 앉습니다. 저는 주위를 한번 둘러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버스기사와 아가씨가 그렇게 싸우는데도 관심조차 두지 않습니다. 모두 먼 산 바라보듯 합니다. 하긴 어디 그들 뿐이었겠습니까. 저 역시 남의 일인 양 지켜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게 있네요. 얼마 전이었습니다. 이곳 창원, 마산에서도 시내버스 파업이 있었습니다. 파업기간 중에 버스기사들이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파업이 장기화되자 시청에서는 임시 버스를 운행했습니다. 버스회사측과 시청의 줄다리기는 오랫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시민들의 태도였습니다. 파업이 장기화되는데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어느 쪽이 옳다고 편을 들어주었을 법도 합니다. 그런데 조용하기만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무관심으로 일관합니다. 파업이 언제 끝났는지, 어떻게 합의를 봤는지조차 시민들은 알려하지 않습니다.

그런 태도는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버스기사와 아가씨가 그렇게 말다툼을 하는데도 저는 시종일관 방관자 자세를 취했습니다. 저도 아가씨처럼 그렇게 피해를 봤는데도 말입니다. 시내버스 파업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a 천막농성입니다

천막농성입니다 ⓒ 박희우

저는 오늘도 일찍 출근했습니다. 저희 사무실은 시청 앞에 있습니다. 저는 시청 쪽으로 걸어가 봅니다. 시청 광장에는 아직도 천막농성이 한창입니다. 저는 출퇴근할 때도, 점심을 먹을 때도 그 앞을 지나갑니다. 그런데도 저는 무심하기만 했습니다. 그들이 언제부터, 무엇 때문에 농성을 하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저는 그제야 깨닫습니다. 세상에 무관심만큼 무서운 게 없습니다. 무슨 일이든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신의 의견을 밝힐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까지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고쳐나가겠습니다. 당장 시청 앞 천막농성부터 찾아가야겠습니다. 그들의 아픔이 무엇인지를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그들 또한 우리들의 따뜻한 이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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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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