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의 엉뚱한 '지역구도 극복'

[손석춘 칼럼] 참여정부의 앞날이 새삼 걱정스런 까닭

등록 2005.06.28 13:19수정 2005.06.28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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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말은 그 자체로 무겁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칠 최고 정책결정권자이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웹진에 기고한 '당원동지 여러분께 드리는 편지'가 눈길을 끄는 것도 그래서다. 더구나 대통령은 편지에서 최근 낙선 원외인사의 기용을 둘러싼 논란에 주목할 만한 발언을 했다.

"최근 정부 내에 낙선한 원외인사의 기용을 놓고 대통령이 여론의 매를 맞고 있는데 반하여 당에서는 원외인사의 기용에 대하여 남의 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서운함이 뚝뚝 묻어난다. 이어 강조했다 "(영남지역) 원외 인사 기용은 지역구도 극복이라는 간절한 목표를 실천하는 과정의 하나다."

낙선한 인사 기용이 '지역 극복'의 실천?

솔직히 그런 말을 했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다. 너무 생뚱맞지 않은가. 찬찬히 톺아볼 일이다. 대통령의 발언은 앞으로도 낙하산 인사를 내놓고 하겠다는 것으로 보이기에 그냥 넘어가기 더욱 어렵다.

분명히 말하자. 한국철도공사와 조폐공사 사장 자리에 각각 이철 전 의원과 이해성 전 청와대홍보수석을 앉힌 게 '낙하산 인사'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낙하산인가. 총선에서 영남에 출마해 낙선한 사람들에 대한 '보은' 아닌가. 두 사람이 걸어온 길은 철도공사와 조폐공사와 전혀 무관하다. 비판여론이 일자 김완기 인사수석은 되레 언구럭을 부렸다. "참여정부에 낙하산 인사는 없다. 이번 인사는 적재적소다."

대체 무엇이 어떻게 적재적소란 말인가. 답이 궁해서일까. 김 수석은 "전문성도 중요하지만 노조와의 협상을 잘 이끌 정치력과 직원 3만 명의 거대조직(철도공사)을 운영해 나갈 통합적 관리능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문제의 심각성은 대통령까지 나서서 자신의 낙하산 인사를 놓고 "지역구도 극복"이라는 가당찮은 명분을 내세운다는 데 있다. 노 대통령은 "영남에서 지지가 없다보니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고 그러다보니 선거 때가 되면 인물이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라며 "이렇게 악순환이 되다보면 지역구도는 더욱 굳어지게 마련"이라고 사뭇 당당하게 말했다. 낙하산 인사가 '선거용'임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하지만 과연 '선거용 낙하산'으로 지역구도가 극복될 수 있는가. 아니다. 정반대다. 가령 최근 대구·경북지역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가 창립 10돌을 맞아 경북대에서 연 기념강연회의 뒤풀이 때 오간 이야기를 보더라도 그렇다. 40대 후반의 한 치과의사는 이철 전의원의 철도공사 사장 취임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대선 후보시절 정몽준 옆에 서있던 이철을 보며 착잡하던 기억이 새롭다. 학생운동의 상징적 인물 하나가 또 망가졌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노 정권 아래서 다시 철도공사 사장에 취임했다. 노 정권에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

그랬다. 그게 대구의 뜻있는 사람들 정서다. 철도공사와 조폐공사 낙하산 인사는 대구지역에서 그나마 노무현을 지지했던 사람들에게 되레 배신감을 안겨주었다. 당당하게 낙하산 인사를 부정하며 '지역구도 해소'라는 간절함을 내세우는 대통령의 모습이 참으로 딱한 까닭이다. 대통령이 자리를 준다고 전혀 낯선 자리에 덥석 취임하는 '인사'들은 또 어떤가.

낙하산 인사는 영남개혁세력에 대한 우롱

지역구도 해소는 후보시절 공약했던 개혁정책들을 일관성 있게 추진해나갈 때 시나브로 해소될 수 있다. 낙하산 인사로 그걸 해결하겠다는 것은 영남의 개혁인사들에 대한 우롱이다.

하나만 더 명토박아둔다. 대통령은 문제의 글에서 "민주주의와 중구난방은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에 대한 비판이다. 좋은 말이다. 다만 그 과녁이 열린우리당에만 있지는 않을 터이다. 청와대, 아니 바로 대통령 자신이 경청할 말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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