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시민사회 "일본 침략전쟁 반드시 기억돼야"

[취재수첩] 잇따르는 방일단... 교과서왜곡 저지 연대활동

등록 2005.07.01 16:10수정 2005.07.05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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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일본 후소샤 왜곡교과서의 불채택을 위한 한국 시민단체의 방일단의 활동이 잇따르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3일부터 26일까지 히로시마를 방문한 전교조 대구지부와 대구지역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히로시마시청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모습.

일본 후소샤 왜곡교과서의 불채택을 위한 한국 시민단체의 방일단의 활동이 잇따르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3일부터 26일까지 히로시마를 방문한 전교조 대구지부와 대구지역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히로시마시청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모습. ⓒ 오마이뉴스 이승욱


"태평양전쟁에서 만난 조선인들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두 번 다시 되풀이될 수 없는 역사입니다." - 태평양 전쟁 당시 초등학생이던 쿠마가와(73) 할아버지

"15세 어린 나이로 끌려간 우리를 일본이 지우려고 합니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은 더이상 용납할 수 없습니다." - 강제종군위안부 출신 이용수(78) 할머니

"일본의 침략전쟁 결과가 원폭의 피해입니다. 저는 일본 군국주의 상징인 기미가요와 히노마루를 인정할 수 없습니다. 일본의 침략전쟁은 반드시 기억돼야 합니다." - 원폭 피해 2세 하시모토 마코토(45)씨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저지를 위해 한국과 일본의 시민사회단체들이 힘을 합치고 있다.

오는 8월말 일본의 중학교 역사교과서 검정 결과발표를 앞두고 한국의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의 방일도 줄을 잇고 있다. 지난 6월 중순 방일단을 조직한 전교조 등 한국의 각 지역 시민사회단체 10여 곳은 8월말까지 활동을 계속 펼칠 예정이다

대구지역 시민사회단체 회원 등 9명을 비롯해 양미강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 상임공동운영위원장, <미래를 여는 역사> 공동집필자인 하종문 한신대 교수 등은 지난달 23일부터 26일까지 후소샤 역사왜곡교과서 채택저지를 위한 방일단이라는 이름으로 히로시마(대구시 교류시)를 방문했다.

전국에서 잇따르는 방일단


a 히로시마를 방문해 한신대 하종문 교수가 한중일 역사학자들이 공동 집필한 교과서 <미래를 여는 역사>를 일본 현지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히로시마를 방문해 한신대 하종문 교수가 한중일 역사학자들이 공동 집필한 교과서 <미래를 여는 역사>를 일본 현지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방일단 일행은 지난 24일 히로시마현(縣)청과 현 교육위원회, 히로시마시·하츠카이치시·미요시시 등 현내 5개 시청 및 시 교육위원회를 방문하고 후소샤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대구시의회 의장과 지역 52개 시민단체 명의의 불채택 요구 서한도 전달했다.

물론 일본의 자치단체장들이 방일단 방문을 그리 환영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상당수 단체장과 교육위원장이 일정을 이유로 직접 방일단을 맞이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단체장들은 "교과서 채택 여부는 해당 교육위원회 소관으로 관여할 수 없다"는 원칙만 반복했다.


하지만 성과가 없는 것도 아니다. 후소샤 교과서 채택 여부에 쏠린 한국의 관심을 전달하고 일부 현 의원과 단체장들의 공감대를 재확인하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방일단과 면담한 히가시 야스유키 히로시마현 의원은 "문부과학성이 각 교육위로 내려보낸 주의점에는 '일본 역사에 대한 애정을 갖자'는 내용이 있다"면서 "결국 일본 정부의 후소샤 역사교과서 지원에 정치적 힘이 있다는 것을 부인 못한다"고 말했다. 히가시 의원은 "일본 역사교과서에서 과거 침략전쟁과 원폭에 대한 기술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며 방일단과 공감대를 형성했다.

a 지난달 24일 히로시마현 의원과 면담하고 있는 강제종군위안부 이용수 할머니. 할머니는 "15살 끌려갔다"며 "일본이 나의 역사를 지우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원도 일본의 역사왜곡에 우려하며 공감했다.

지난달 24일 히로시마현 의원과 면담하고 있는 강제종군위안부 이용수 할머니. 할머니는 "15살 끌려갔다"며 "일본이 나의 역사를 지우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원도 일본의 역사왜곡에 우려하며 공감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다른 모 단체장도 "교육위의 선정과정에는 관여할 수 없다"면서도 "고이즈미 총리 등 일본 정치권이 독도와 역사교과서 문제 등으로 한일관계를 꼬이게 하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방일단과 같은 직접적인 압박 외에도 한국 학생들이 일본 시민사회단체와 연계해 "역사교과서 채택을 막아달라"고 직접 쓴 편지들이 일본 현지로 빗발치면서 후소샤 교과서 검정을 앞둔 교육위에 '은근한' 압박이 되고 있다.

한국 시민사회와의 교류로 힘받는 일본 시민사회

무엇보다 한국인들의 방문과 교류는 우경화 흐름과 대다수 시민들의 무관심 속에 '고전분투'하는 일본 시민사회단체 일꾼들에겐 큰 힘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교과서문제를 생각하는 히로시마시민네트워크 키쿠마 미도리 공동대표는 "한국인들이 방문해 그들의 생각을 말하면 우리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시민네트워크의 또 다른 관계자는 "한국인들이 일본 정부나 우익과 일본의 시민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을지 걱정된다"면서 "하지만 한국인들도 일본 시민사회단체의 노력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양국간 깊은 골 속에서도 시민사회 연대가 필요하다는 지적인 셈이다.

a 지난달 24일 밤 히로시마 방일단과 일본의 시민단체 회원들이 모여 교류회를 갖고 있다. 한일 양국의 깊은 골 속에서도 그들은 침략 전쟁의 상흔을 나누고 평화를 위한 연대를 다짐했다.

지난달 24일 밤 히로시마 방일단과 일본의 시민단체 회원들이 모여 교류회를 갖고 있다. 한일 양국의 깊은 골 속에서도 그들은 침략 전쟁의 상흔을 나누고 평화를 위한 연대를 다짐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방일 일정을 마칠 무렵, 한일 양국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얼굴을 마주하고 둘러앉았다. 태평양전쟁 당시 조선인의 참혹함을 지켜봐야 했던 70대 할아버지와 80을 바라보는 조선인 강제위안부 할머니, 원치 않은 원폭피의 고통을 안고 사는 40대 일본인. 침략전쟁의 상흔이 채 지워지지 않은 기억의 흔적이 배어 나왔다.

침략전쟁으로 인한 아픈 인연이 반성과 용서 속에 두 나라 시민사회 연대로 이어질 때 일본의 우경화를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히로시마의 밤은 깊어갔다.

덧붙이는 글 | *<대구경북 오마이뉴스> 바로가기→dg.ohmynews.com

덧붙이는 글 *<대구경북 오마이뉴스> 바로가기→dg.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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