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원
한참을 감자 캐는 일에 몰입해 있는데 갑자기 아내가 질겁하며 소리를 지릅니다. 지렁이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비온 뒤라 그런지 밭에 유난히 지렁이가 많습니다. 실처럼 가는 새끼 지렁이도 있지만 때로는 굵직한 놈도 있습니다. 실지렁이 보면 무덤덤하게 그냥 캐지만 굵은 지렁이 보면 호들갑입니다.
“감자 캐는 아줌마가 지렁이를 무서워하면 돼?”
아내는 조심스럽게 지렁이를 호미로 밀어내고 다시 감자를 캡니다. 어찌 보면 지렁이가 더 놀랄 일이지요. 잘못 휘두르는 호미에 찍혀버리면 두 동강이 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렁이를 만나면 감자 골라낸 뒤에 흙으로 잘 묻어줍니다.
감자 캐다 개미집을 파헤치기도 했습니다. 개미가 새카맣게 흩어져 우왕좌왕합니다. 일부 개미는 발등 위로 기어오르기도 합니다. 부서진 개미집 사이에서 감자를 주워낸 후 호미로 개미집을 흙으로 덮어줍니다.
지렁이나 개미 말고도 감자밭에는 다양한 생명체들이 살고 있습니다. 감자 덩굴 사이에 숨어 있던 귀뚜라미도 있습니다. 아직 어리지만 발에 힘은 제법 붙어 있어서 폴짝폴짝 잘도 뛰어 달아납니다. 흙더미 사이를 기어 다니는 거미도 있습니다. 흙 속에 숨어 있던 굼벵이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