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사진을 가까이 찍지 못했다. 미안해서 일 하다가 몰래 한 장 찍었는데 참 여유롭게 사신다. 손녀도 할머니와 엄마를 닮기를 바란다.김규환
나는 유명산과 인연을 쉬 놓지 않았다. 7년 전 2년 반 동안 농사지으면서 빈집을 고쳐 민박과 음식장사까지 해봤던 마을이다. 올 봄 <산채원시험포지>에 적지를 찾으면서도 한번 맺은 연결고리를 이어가려했던 건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는데 필요한 일종의 텃새에 대한 고려와 산나물 재배를 위해선 해발 300m 이상이 필요했던 까닭이다.
200평 조금 안 되는 묵힌 논을 연간 8만원에 계약하고 밭으로 만들 땅을 개간하듯 정리해나갔다. 한적한 외딴집 근처라 드나드는 사람이 한정돼있어 더 맘에 들었지만 잡초와 싸울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했다.
그곳엔 외로이 사시는 할머니 한분이 계셨다. 살아계셨으면 내 어머니와 연세가 비슷해보였는데 아직 마실도 자유자재로 하시는 걸 보니 여간 정정한 게 아니었다. 하루 이틀 만나 뵐수록 정감이 가는 분이었다. 깔끔한 외모에 80이 다 되는데도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이 무척 좋아보였다. '어머니가 살아계셨더라면 이렇게 곱게 늙으실 수 있을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두릅이 한창이던 때 몇 사람과 밥과 양념을 준비하여 할머니 댁 은행나무 아래 만들어 놓은 평상아래서 대낮 삼겹살 파티를 하고 있을 때 점심을 같이 하며 술을 한잔 드리게 되었다. 마침 다섯 명에 할머니까지 소주 두병을 나눠 마시니 병아리 오줌마냥 감질났다.
내가 운전을 해야 하니 단 한 병만 더 사오기로 했다. 젊은 양반들이 부족하다는 낌새를 보셨는지 할머니는 댁으로 들어가시더니 시큼한 씀바귀 무침에 검은콩을 넣은 잡곡밥과 소주 두병을 가지고 나오셨다.
"할머니 이건 뭐예요?"
"저기 밭에 있는 씀바귀를 캐서 무쳐봤어요 한번들 먹어보세요."
"잘 먹겠습니다. 근데 할머니 소주는 됐습니다. 저희 그만 먹어도 돼요."
"아니에요. 나도 같이 먹었으니까 조금은 내고 싶어. 고기까지 먹었는데 뭘 이것가지고…."
"이렇게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술 다 마셨어요."
여럿이 나서 말렸는데도 한사코 거두지 않고 손수 병뚜껑을 따고 마셨다. 당신께서는 만난지 며칠 되지 않아 서먹서먹한데도 말동무가 되어준 우리가 고마웠던 모양이다. 어머니 세대지만 젊은 사람 못지않은 감각, 신사다운 면모를 잃지 않고 나눌 줄 아는 미덕을 지녔다는 걸 깨닫게 해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