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서울대 전면전, 최후의 승자는?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일반고-특목고도 대립각

등록 2005.07.07 09:08수정 2005.07.07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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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와 열린우리당이 6일, 당정 협의회를 갖고 서울대학교의 통합 교과형 논술고사를 '본고사 부활 시도'로 규정해 '초동 진압'에 나서기로 했다.

통합 교과형 논술고사에 대해 '무방하다'던 교육부가 입장을 바꾼 데에 노무현 대통령의 의지가 작용했다는 건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당정 협의가 있기 이틀 전 노 대통령은 서울대의 통합 교과형 논술고사를 '가장 나쁜 뉴스'로 규정하면서 교육 문제를 직접 챙기겠다고 한 바 있다.

주된 논쟁 사안은 통합 교과형 논술이 본고사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다. 하지만 이 문제는 6월 28일자 이 코너에서 짚은 바가 있기 때문에 재론하지 않겠다.

당정 협의회에서 제기된 내용 가운데 흘려 넘길 수 없는 사안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특기자 전형 문제다.

서울대는 전체 모집정원의 30%를 특기자 전형으로 뽑겠다고 했는데 <한겨레>는 서울대가 설정한 특기자가 "수학과 과학, 외국어 우수자"라고 보도했다.

이 때문에 당정 협의회에 참석했던 서남수 교육부 차관보는 기자 간담회에서 "특기자 전형은 성적이 좋은 학생을 편법적으로 뽑는 '신(新)고교등급제'로 활용될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이로써 서울대와의 '전면전'은 복수의 전선에서 치르게 됐다. 남은 건 전세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제 개전 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전세를 점치기는 어렵다. 다만 징후는 읽을 수 있다. 당정이 서울대와의 '전면전'을 선포하자마자 일선 고교의 반응은 두 갈래로 갈렸다. 일반 고교는 환영하고 있는 반면 특수 목적고는 우려하고 있다. 당연한 현상이다.

통합 교과형 논술고사와 함께 특기자 전형을 늘리면 특수목적고로선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게 된다. 일반 고교에 비해 통합 교육이 수월하니까 대입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고, 수학‧과학‧외국어 우수자 중심으로 특기자를 뽑으면 거의 독식을 할 수 있어 좋다. 반면에 당정의 의도가 관철된다면 특수목적고로선 '재앙'에 가까운 결과를 안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당정이 선포한 '전면전'은 서울대와 정부의 싸움이기도 하지만, 일반고와 특수목적고의 싸움이기도 하다.

전세를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한 지름길은 우군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다. 이건 상식이다. 하지만 이 상식이 '전면전'을 하겠다는 정부 안에서 지켜지지 않고 있다.

건설교통부와 국가균형발전위는 지난달 말에 176개 공공기관 지방 이전 계획을 발표하면서 공공기관 이전지역에 특수목적고나 자립형 사립고 신설을 허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공공기관 종사자들의 반발 심리를 제어하기 위해 내놓은 방안이 바로 특수목적고 신설이다.

건교부 등의 사고는 뻔하다. 좀 과장하자면, 공공기관 종사자 자녀의 미래는 특수목적고로 보장할 테니 조용히 지방으로 가라는 발상이다. 건교부 스스로 특수목적고를 명문대 입학 통로로 '특수'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한 부처는 '전면전'을 하겠다면서 전선을 형성하고 있는데 다른 부처는 후방을 교란하고 있다. 이게 작금의 행정 실태다.

물론 이런 반론도 있다. 서울대의 통합 교과형 논술고사와 성적 우수자 위주의 특기자 전형을 막으면 특수목적고는 힘을 잃게 되고, 따라서 특수목적고 선호 현상도 약화될 것이라는 논리다.

일면 타당한 논리다. 하지만 이 논리는 가정 위에 서 있다. "서울대와의 '전면전'에서 이긴다면"이라는 가정 말이다.

당정 협의 내용이 발표된 직후 서울대 정운찬 총장은 대학 자율성에 속하는 문제를 왜 외부에서 이러쿵저러쿵 하느냐고 말했다. 당정에 '응전'하겠다는 뜻이다.

여기에 상당수 언론이 가세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당정 협의 결과를 '대학 때려잡기'로 규정했고, <중앙일보>는 당정을 '한심하다'고 비난했다. <동아일보>는 정운찬 총장의 응전 태세를 '당당한 모습'이라고 칭송했고, <세계일보>는 '자구 차원에서 이해되는 일'이라고 했다.

전선을 긋긴 했지만 '초동 진압'이 말처럼 쉽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들이다. 그렇기에 '가정'에 기반한 특수목적고 신설 방침은 위험하다.

지적할 건 이 뿐만이 아니다. 여권 관계자는 건교부의 지역별 특수목적고 신설 방침이 정부여당간 협의를 거친 게 아니라고 말했다. 서울대와의 '전면전' 결과에 따라 뒤집힐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 대목에서 던져야 하는 질문이 두 개 있다.

하나. 건교부가 지역별로 특수목적고를 신설하겠다고 밝힌 시점은 6월 26일, 서울대가 통합형 논술고사와 특기자 전형 확대 방침을 최초로 밝힌 시점은 4월 30일이었다. 그럼 두 달 동안 정부는 뭘 한 건가?

둘. 정부여당의 협의 결과 지역별 특수목적고 신설 방침이 뒤집힌다면 공공기관 종사자들을 '들었다놨다' 한 오락가락 행정의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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