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더 슬프면 너에게 닿을 수 있겠니?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자기중심적인 아이와의 사랑

등록 2005.07.10 23:05수정 2005.07.11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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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일째 결석을 하고 있는 한 아이에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너무도 자기중심적이고 제 고집대로만 하려는 아이여서 마음고생을 많이 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미움이 가는 아이는 아닙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성격적 결함을 누구보다도 본인 자신이 잘 알고 있으며, 그것을 고치려고 나름대로는 노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감정의 기복이 너무 심하여 잘 하다가도 한 번 마음이 틀어지면 본인 스스로 깨우치고 돌아올 때까지는 어느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담임인 제가 해야 할 일이지만 저도 성질이 느긋하지 못한 구석이 있어서 가끔 충돌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 다음 수순은 늘 이런 식입니다.

안녕!

비가 오는데 집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모르겠구나.
지금 넌 날 원망하고 있을까?
아니면 네 잘못을 아는데 또 다른 일로 학교를 나오지 않는 것일까?
만약 날 원망하거나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면
난 널 어떻게 해야 할까?

한 가지만 얘기하마.
널 아끼고 사랑하는데
그리고 그만큼 너에게 정성을 쏟고 있다고
내 스스로 믿고 있는데
그런 너에게 인사는커녕
짜증 섞인 표정이나 대답을 들어야하는 것이
나를 한없이 슬프게 한다.

물론 너의 속마음은 다르다는 것을 안다.
학교에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네 마음의 상태야 어떻든
내가 아끼고 사랑한 제자로부터
담임을 무시하는 듯한 표정을 읽는 것은
슬픈 일이다. 정말 슬픈 일이다.

그래서 화가 났던 거다.
아무튼 화를 낸 것은 사과하마.
(…)



물론 처음부터 이런 편지를 쓰리라고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이번만은 버릇을 단단히 고쳐 주리라 마음먹고 스스로 뉘우치고 돌아올 때까지 냉정하게 대하리라 몇 번 다짐을 해보지만 매번 헛수고로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활활 타오르던 분노가 슬픔으로 변하고 슬픔이 다시 그리움으로 바뀌어가는 시간은 불과 하룻밤, 길어야 이틀 남짓입니다.


처음부터 아이들을 관리하는 차원이었다면 이런 경우 문제해결은 간단합니다. 집으로 연락을 취하고 문제 해결의 공을 학생과 부모에게 넘기면 그만입니다. 일탈행동으로 인한 불이익은 공을 받은 쪽에서 보게 됨으로 제가 서두를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결국 학생들을 관리하지 않고 사랑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사랑하게 되면 모든 일이 복잡해집니다. 우선, 그 아이의 손해가 제 자신의 손해로 느껴집니다. 마치 부모자식간의 관계처럼 말입니다.

해서, 잘못은 학생이 하고 사과를 교사가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선 학교에 복귀시켜 결석일수를 줄이고, 거리를 배회하는 과정에서 혹시라도 발생할지도 불미스런 사태로부터 제자를 구해놓고 보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면 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직은 철이 없어서 부모의 심정도 헤아리지 못하는 아이들이 노심초사하는 담임의 마음을 헤아리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이미 시간이 많이 흘러 상급 학년으로 올라간 뒤거나, 그도 아니면 졸업을 한 뒤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기도 합니다.

"너희들 내년 스승의 날에 선생님한테 와서 울고 그러지 마. 그러면 정말 혼내 줄 거야. 그러지 말고 지금 잘해!"

지금 잘하라는 말은 사실 제 자신이 억울해서라기보다는 아이들이 철없이 흘러 보낸 세월이 너무 아깝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교사로서의 욕심일 뿐, 시간이 흘러 철이 드는 자연의 이치를 성급한 마음으로도 어찌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늦게나마 아이들이 못난 담임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지요.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은 사람은 또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테니까요.

슬프다는 것. 그것은 분노나 미움의 감정보다는 덜 공격적입니다. 그래서 분노가 슬픔으로 뒤바뀌는 것을 저는 내버려 둡니다. 슬픔이 그리움으로 변하는 것도 크게 억울해 하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을 그리워하는 것이 그들에게 화를 품고 있는 것보다는 제 자신에게도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사랑의 힘을 믿고 싶습니다. 인간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면 교육도 끝장입니다. 적어도 사랑의 교육학에서는 그렇습니다.

저는 요즘 '슬픔의 내성을 키우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슬픔의 내성을 키운다는 말은 슬픔을 슬픔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말도 됩니다. 슬픔을 하나의 사랑의 과정으로 보는 것이지요. 열매 맺기 위한 생산적인 과정 말입니다.

물론 교사에게도 감정이 있고 아이들에게 화를 낼 때는 내야한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자주 화를 내는 것으로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 없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분노보다는 슬픔의 감정을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그 슬픔이 저를 무너뜨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슬픔의 내성을 키우려는 것이지요. 그런 경지에 도달하기까지는 많은 연습이 필요하겠지만 말입니다. 그런 연습의 과정에서 오늘 아침 시를 한 편 썼습니다. 시라기보다는 아이에게 보내는 짧은 한 통의 편지글 같은.

요즘 슬플 일이 없어
세상 돌아가는 슬픔에 둔감했는데
날 슬프게 해주어 고맙구나.

요즘 슬플 일이 없어
마음의 더러움 씻어내지 못했는데
날 슬프게 해주어 고맙구나.

어제 먹여준 것 금세 까먹고
밤새 새로 지어 옷을 입혀야하니
늘 사랑하게 해주어 고맙구나.

나날이 새로운 피로 솟구치게 하여
내 살과 뼈 이다지 맑고 강건하니
눈물겹도록 고맙구나, 아이야.

얼마나 더 슬프면 너에게 닿을 수 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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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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