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만에 왜 하느냐고? 백년이 지나도 해야 한다!

역사학자 한홍구의 <대한민국사 3 : 야스쿠니의 악몽에서 간첩의 추억까지>

등록 2005.07.13 02:53수정 2005.07.15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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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대한민국사 3> 표지

<대한민국사 3> 표지 ⓒ 한겨레신문사

역사학자 한홍구가 또 한번 세상을 향해 펜을 들었다. 극렬하다고 표현할 정도로 논쟁을 일으켰던 <대한민국사 1,2>에 이어 '야스쿠니의 악몽에서 간첩의 추억까지'를 다룬 <대한민국사 3>를 내놓은 것이다.

<대한민국사 1,2>가 일으킨 반향을 생각한다면 당연하게도 <대한민국사 3>에 대한 궁금증은 역사를 논하는 어느 인문도서에 못지않다. 더불어 책에 대한 사회적인 기대 또한 상상 이상이다. 역사라는 단어에 손사래를 칠 사람들의 눈과 귀를 빼앗을 정도로 '역사이야기'를 맛깔스럽게 해낼 줄 알고, 보이지 않는 성역까지 거침없이 침범해 기어코 할 말을 해내고야 마는 저자의 태도 때문에라도 저자의 펜 끝을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기대감 속에 등장한 <대한민국사 3>은 무엇을 다루고 있을까? 저자의 시선은 대체적으로 '과거 청산'에 닿아 있다. '1부 똑바로 살아라'에서 박정희 정권의 시대에 펜 끝을 맞추는 것을 시작으로 과거 청산이 제대로 되지 못하는 원인들을 지적하면서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이나 중국 등 해외까지 영역을 넓혀 반드시 알아야 할 '과거'들이 어떻게 변질되어 갔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과거 청산'이라는 화두는 현재 사회에서 상투적으로 쓰이는 개념 중 하나이다. 한동안 뉴스를 도배할 정도로, 또한 '타령'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매일같이 여기저기서 그 개념을 입에 올렸으니 상투적이라는 표현은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래서 저자에게 파격적인 무언가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투적이라고 해서 실망한다는 것은 옳은 과정은 아닐 터. 오히려 이런 생각을 지닌 이들이 더욱 <대한민국사 3>을 봐야 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저자는 이제껏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든 과거 청산의 반대세력들이 오늘날까지 어떤 행패를 벌여왔는지를 적나라하게 알려주는 동시에 맹목적으로 과거청산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절실하게 과거청산의 당위성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과거 청산을 하자고 하면, 그리고 그것에 관심을 갖자고 하면 '이제 와서 그런 걸 무엇 하나?'라는 반응을 보이는 이들에게 <대한민국사 3>는 입장을 바꿔 생각할 수 있도록 비슷한 사례 등을 제시해 생각의 전환을 꾀하라고 말하고 있다. <대한민국사 3>에서 저자는 자신이 믿는 정의를 결코 남에게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가령 일본의 과거 청산을 분개할 정도로 주장하면서도 국내의 과거 청산에 미지근한 태도를 유지하는 아이러니함을 보여주면서 그것을 깨우쳐줄 뿐이다.

당시 형법은 '국헌을 문란할 목적이라 함은' '1. 형법 또는 법률에 관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것. 2.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 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라고 친절히 설명하고 있다. 박정희, 그 시절 기준으로 해도 1961년과 1972년 두 차례에 걸쳐 범행을 저지른 국헌 문헌의 수괴 아닌가? 형법 어디를 찾아봐도 경제 발전에 기여하여 그 죄를 사해준다는 말은 없다. - '본문' 중에서


과거 청산, 그거 지금 꼭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60년을 안하고도 살아왔으니 그런 질문이 나올 법도 하다. 과거 청산을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면, 나는 고개를 돌려 시도 때도 없이 망언을 일삼는 일본의 극우파들을 보라고 말하고 싶다. 단 한번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고 사죄하지 않고 화해하지 않으려는 자들이 어떤 모습인지를…. - '본문' 중에서


<대한민국사 3>은 과거 청산을 다루면서 비교적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는 것들에도 시선을 주고 있는데 그것은 간첩에 관련된 것이나 해외의 조선 민족이 겪었던 시련의 세월 등이다. 사망한 뒤에 간첩이 되어버린 최종길 교수 등의 예를 좇아 진짜 간첩이 아닌 '가짜 간첩'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고찰해 알려지지 않았던 대한민국의 또 다른 면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때까지는 그래도 간첩을 갖고 웃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간첩은 주로 북에서 내려온 존재였으니까. 그런데 동백림 사건이 터지고 1971년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재일동포 형제 간첩단 사건이 터지면서 얘기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간첩이 우리의 일상을 옥죄기 시작했다. 아니, 진짜 우리가 두려워한 것은 간첩 그 자체가 아니라, 간첩 잡는 사람들, 좀더 정확히 말하면 간첩을 만드는 사람들이 된 것이다. - '본문' 중에서

그렇다고 해서 <대한민국사 3>이 과거에만 시선을 둔 것은 아니다. 저자는 현재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실전경험이 풍부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것은 역시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오늘날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말할줄 아는 것 또한 저자의 재주다. 덕분에 <대한민국사 3>는 과거를 제대로 볼 줄 아는 것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대한민국까지 제대로 볼 줄 아는 방법들까지 알려주고 있다.

나는 머리로든 발로든 운동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았지만, 최근에 정말 오랜만에 사상운동이란 말을 다시 들었다. 기억조차 희미해진 그 말을 다시 살려낸 사람들은 이른바 '뉴라이트'를 표방하고 나선 이들. 수구언론의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등장한 그들은 '노무현 정권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유주의 사상을 생산하고 확대하는 '사상운동'필요하고도 긴급'하다며, '사회 곳곳에 자유주의 진지를 구축하고 자유주의를 시대 담론으로 만드는 사상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 지난 10년간 그들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골방에서 열심히 10년간 연구 개발해서 들고 나온 모델이 486인 모양이다. 그런데 어쩌나, 이제 세상은 펜티엄급도 머잖아 낡은 모델이 될 정도로 확확 변하고 있는데. - '본문' 중에서

탄핵이란 대사변을 유쾌한 축제로 만들어버린 시민들의 유머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영화 <아마데우스>에 비유한다면 시민들은 모차르트의 경쾌함인데, 저들은 살리에리 식으로 이미 깨져버린 엄숙주의를 고집한다. (…) 적당한 참여와 방식을 찾지 못한 채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해버린 정치에 대해 시민들은 인터넷 시대에 맞추어 새로운 참여의 양식을 계발해낸 것이다. 이제 자기들만의 리그를 고집하는 정치적 엄숙주의자들이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 '본문' 중에서

<대한민국사 3>에서 저자의 펜은 여전히 거침없다. 할 말, 안 할 말 가리지 않는 태도는 물론이거니와 특유의 입담으로 어두운 역사의 그늘까지도 유쾌한 공간으로 불러낼 줄 아는 재주의 탁월함 또한 여전하다. 특히 역사의 것들을 왜 돌아봐야 하고, 청산해야 하는지를 오늘날의 상황과 연관시켜 알려줄 줄 아는 비범한 '문제 제기' 또한 여전하다.

<대한민국사 3>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는 충분히 제 값을 얻어낼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한민국사 1,2>만큼이나 깊고 넓은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나아가 회색을 하얀색이라고 억지 쓰며 믿게끔 강요하는 이상한 역사의 테두리에서 발 뺄 수 있는 디딤돌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으로 여겨진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도서정보 사이트 '리더스가이드(http://www.readersguide.co.kr)'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도서정보 사이트 '리더스가이드(http://www.readersguide.co.kr)'에도 실렸습니다.

대한민국사 3 - 야스쿠니의 악몽에서 간첩의 추억까지

한홍구 지음,
한겨레출판,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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