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결혼 안 하길 너무 잘했어"

리얼다큐 <싱글즈 인 서울>에 비친 '요즘 싱글들'

등록 2005.07.15 00:00수정 2005.07.15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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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이라고 해서 특별할 건 없다. 특이한 외계 집단이나 희귀 종족이 아닌 이상 이 시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슷비슷한 취향과 가치관을 갖게 마련일 테니. 싱글의 삶 역시 일, 놀이, 결혼 같은 다소 진부한(?) 키워드를 중심으로 굴러간다. 다만 이 키워드를 고민하는 방식이나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작은 차이가 명품을, 아니 '싱글족'이라는 트렌드를 만들어낸다.

케이블 방송 <온 스타일>은 지난해 3월부터 1년 3개월간 싱글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다룬 <싱글즈 인 서울>시리즈를 기획, 지난달 29일 '콘트라섹슈얼' 편을 끝으로 세편의 시리즈물을 끝냈다.


제작진은 시리즈 1편 출연자 섭외를 위해 2003년 12월부터 업계 전문가의 추천 및 매스컴에 소개된 50여명의 싱글 여성을 찾아 그 중 가장 적합한 4명을 추려냈다. 이들은 매회 '최고의 스타일로 변신하라' '부자 싱글 가난한 싱글' '신종 바이러스 연하' '참을 수 없는 결혼의 무거움' 등의 주제 안에서 다양한 생각들과 임무수행 과정을 보여줬다.

이어 시리즈2, 3편에서도 도시 남성들의 싱글 생활을 담은 '메트로섹슈얼'과 전통적 여성상에서 벗어나 일에 몰두하는 싱글 여성들의 모습을 담은 '콘트라섹슈얼'이 선보여졌다.

a <싱글즈 인 서울3-콘트라섹슈얼>에 출연한 싱글들

<싱글즈 인 서울3-콘트라섹슈얼>에 출연한 싱글들 ⓒ 온스타일

물론 이들이 이 시대 싱글들의 정서를 대변한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동안 300여 명의 다양한 싱글들을 만났고, 또 이중 29명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봐 온 담당자라면 우리 시대의 싱글에 대해 해줄 말이 있지 않을까. <싱글즈 인 서울> 총사령관 김제현 팀장과의 만남은 그렇게 이뤄졌다. 다소 '튀는' 싱글들의 일과 놀이 그리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내게 일은 '나를 만족시키는' 도구다"

싱글족을 말해주는 첫 번째 키워드는 바로 '일'이다. 김 팀장이 만났던 싱글들은 하나 같이 일에 몰두했다. 그들의 치열함은 일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기도 하고 성공을 향한 강한 의지이기도 하다. 또 자신의 생계를 홀로 꾸려야 한다는 책임감의 반증이기도 하다. 이들 싱글들에게 일은 늘 무엇보다 우선이다. 결혼과 일 중 어느 것을 선택하겠느냐는 고색창연한 질문에 그들은 당연히! 그리고 기꺼이 '일'이라고 말한다.


"결혼 뒤에도 마찬가지다. 집안일은 양해를 구할 수 있지만 일은 개인사와는 별개의 문제. 내가 속해있는 단체에 나의 개인사를 이해시키고 싶지 않다. 내게 일은 숨이 턱에 찰 때까지 달리는 것과 같다."(권은아·33·광고대행사 AE)
"나는 오직 나의 성취욕을 위해 정상에 서길 원한다."(낸시 랭·26·팝아트 아티스트)
"뮤지컬은 내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는 친구다."(류정한·35·뮤지컬 배우)
"일을 사랑하지만 될 수 있으면 많이 사랑하려고 하지 않는다. 상처도 덜 받고 이성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다."(황의건·36·PR 매니저)
- <싱글즈 인 서울> 메트로섹슈얼과 콘트라섹슈얼 내용 중에서


사무실에서 제일 늦게 퇴근하고 휴일에도 출근을 하거나,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시장과 패션쇼, 전시회장으로 발품을 파는 그들의 모습은 느슨한 일상을 즐기는 사람들의 정신을 바짝 들게 할 만큼 진지하고 성실하다. 김 팀장은 "<싱글즈 인 서울3-콘트라섹슈얼> 내레이션을 맡았던 아나운서도 이들의 열정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며 실제로 대학 졸업을 앞둔 젊은 층으로부터도 비슷한 평을 들었다고 말한다.


혹자는 일에 '올인'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평생직장'으로 여기며 회사에 몸을 바쳐 일하던 기성세대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은 기성세대와 다르다. 일과 가족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기성세대에 비해 이들은 일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분출하고 즐길 것만 생각하면 되기 때문이다. 인생에 있어 그들의 무게 중심은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에게 있다. 그들에게 있어 일이란 자기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 전부가 아니다.

a <싱글즈 인 서울3 -콘트라섹슈얼>에 출연한 싱글들

<싱글즈 인 서울3 -콘트라섹슈얼>에 출연한 싱글들 ⓒ 온스타일

일과 휴식, 이성과 감성을 적절히 배합하라

싱글은 일에 대한 성취욕만 있을까? 그들은 열심히 일하는 것만큼 열심히 논다. 김 팀장은 싱글들이 인생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자기만의 취미 혹은 여가를 보낼 '뭔가'가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일과 휴식을, 이성과 감성을 적절하게 배합할 줄 안다.

"무엇이든 심심하거나 밍밍한 건 싫다. 일 할때도 물론이고 놀때도… 테이블 위에서 춤추고 분위기를 주도하며 작은 순간에도 열정적으로 산다."(권은아·33·광고대행사 AE)
"한 퓨전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배워 지금은 스파게티나 캘리포니아 롤을 만들 줄 안다. 환자들과의 상담을 위해 짬짬이 타로카드 강습도 듣는다."(박준홍·36·피부과 전문의)
"예쁜 드레스 입고 파티에 간다. 권투나 요가, 스윙댄스도 종종 즐긴다."(김세라·35·브랜드 매니저)
- <싱글즈 인 서울> 메트로섹슈얼과 콘트라섹슈얼 내용 중에서


그들은 새로운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을 주저하지 않는다. 또 자신의 취향에 적잖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 상대방에서 먼저 다가가 '삶의 모토인 애교가 듬뿍 담긴' 인사를 건네고(낸시 랭) '다 큰 여자가 무슨 인형'이냐는 시선에 아랑곳없이 패브릭 인형이나 앤틱 로봇을 수집한다(강희재·30·인터넷 쇼핑몰 대표). 싱글들은 '타인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닌 철저히 자신을 위한 자기표현'(최범석·28·패션 디자이너)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는 게 김 팀장의 설명이다.

"결혼? 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싱글족'이라고 해서 결혼에 무심하지는 않다. 연애 혹은 결혼을 강권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강한 게 사실이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상당수의 싱글들은 결혼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다만, 한국사회의 객관적 현실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는 것.

"아직까지는 가사가 여성의 몫이라는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에 결혼하지 못하겠다는 분들이 많아요. 한 싱글 여성은 자신도 결혼해서 애도 낳고 일도 하고 싶고 그게 더 훌륭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할 수 없기 때문에 결혼하지 않는 거라고 불평하기도 하더라고요."

김 팀장의 말처럼 싱글 여성들에게는 결혼으로 인해 여성에게'만' 덧씌워지는 사회적 관습에 의한 굴레들이 부담스럽고 부당하게 느껴진다. 그들은 좋은 상대를 만나면, 또는 자신이 하고 싶어질 때 결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단언한다. 여자에게 있어 결혼하기 적당한 나이와 일하기 적당한 나이가 다 다르기 때문. 이런 현실에서 그들은 "결혼 안 하길 너무 잘했다"고 입을 모은다. 적어도 지금은 일이 더 즐겁고 가정에 매여 있지 않아 행복하다는 것.

"괜찮은 놈 물어서 행복하게 사는 거? 미친 짓이다!" (낸시 랭·26·팝아트 아티스트)
"결혼하고 싶지만 그건 노력한다고 되는 일이 아닌 것 같다. 지금 당장 짝이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바로 할 마음은 없다." (김세라·35·브랜드 매니저)
"연애를 하면서 서로 맞추어 나가다보면 일과 나의 생활이 우그러진다는 느낌이 든다. 그럴 때는 화가 난다." (권은아·33·광고대행사 AE)
- <싱글즈 인 서울3> 콘트라섹슈얼 내용 중에서


이처럼 싱글들의 생각은 저마다 아주 작은 차이를 드러낸다. 이 시대 싱글들은 사회의 고정관념과 제도에서 '아주 미세하게' 비껴나가 있다. 그것이 그들의 힘이자 한계인데, 김 팀장은 이 모든 것들을 관통하는 두 가지 정신은 '독립'과 '자기애'라고 말한다.

"맨 처음 <싱글즈 인 서울>을 기획하고 싱글들을 만나면서부터 '독립적'이라는 단어를 늘 염두에 두게 됐어요. 그만큼 자아에 대한 고집이 강하고 자기애가 충만한 사람들이죠. 이기적이라는 것과는 좀 다른데,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맘껏 자기를 누리는 거죠."

"싱글이 뭐냐고? 답 안나온다"
[인터뷰] 김제현 <온 스타일> 팀장

▲ <싱글즈 인 서울> 기획자인 김제현 '온 스타일' 팀장
- <싱글즈 인 서울>을 기획하게 된 이유는?
"<온 스타일>이라는 채널 자체가 2035 여성들을 주 타깃으로 삼고 있다. 시대가 바뀌고 사고 방식이 바뀌면서 싱글이라는 집단이 주요한 사회적 형태로 떠올랐고 그 변화를 조명해보는 게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싱글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뭘 원하는지 낱낱이 들어보고 싶었다."

- 야심찬 기획에도 불구하고 <싱글즈 인 서울1>은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에 비해 <싱글즈 인 서울2-메트로섹슈얼>이나 <싱글즈 인 서울3-콘트라섹슈얼>은 한층 높은 호응을 끌어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싱글즈 인 서울1>은 <섹스 앤드 더 시티>의 한국판을 표방하며 화려한 싱글의 삶을 보여주고자 했다. 성이나 연애에 있어서도 과감한 이야기를 끌어내고자 했는데 한국 정서에는 잘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시리즈1에서는 어떤 상황들을 많이 설정했다. 네 명의 여성들을 함께 살게 한다거나, 소개팅을 주선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그러다보니 생생한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시리즈2부터는 리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꾸밀 줄 아는 남성인 메트로섹슈얼을 컨셉트로 잡았다. 그들은 남성성을 유지하면서도 헤어스타일이나 메이크업, 패션 등에 관심을 갖고 자신의 내면에 내재되어 있는 '여성성'을 긍정적으로 즐긴다. 하고 많은 남성 싱글 유형 중에서 이들을 대상으로 한 것은 기획당시 사회적으로도 '메트로섹슈얼'이 부상했고 그들의 스타일과 트렌드가 비교적 앞서간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시리즈 3에서는 일에 주목했다. '콘트라섹슈얼'은 '전통적인 여성상'에 반하는 새로운 20~30대 여성을 뜻하는 말로, 이들의 목표는 사회적 성공과 많은 돈을 버는 것이며 30대 중반까지는 결혼이나 출산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새롭게 부각하는 싱글들의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 많은 싱글들을 보며 어떤 공통점 같은 걸 발견하게 되는가?
"사실 처음에는 싱글이라는 것에 어떤 기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점점 많은 싱글들을 만날수록 '답을 낼 수 없다'는 쪽으로 기운다. 사람마다 너무나 다양한 모습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적이고 자기애가 강한 것, 다른 사람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 등은 대부분의 메트로섹슈얼과 콘트라섹슈얼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요소들이었다."

- <싱글즈 인 서울4>도 만들 생각인가?
"싱글들의 다양한 측면들을 좀더 짚어나갈 생각이다. '시즌 4'의 주제와 방식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싱글은 매우 주요하고 재미난 코드임은 틀림없다. 앞으로 싱글이라는 코드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방식으로 진화해나갈지 주목하는 게 우리의 장기적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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