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이 말하는 '학교 폭력' 근절 방안

여수 YWCA 주최로 ‘학교 폭력 근절을 위한 청소년 토론대회’ 열려

등록 2005.07.18 17:09수정 2005.07.19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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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학교 폭력 근절을 위한 청소년 토론대회

학교 폭력 근절을 위한 청소년 토론대회 ⓒ 안준철

“학교와 폭력이란 단어는 서로 붙어 있어서는 안 되는 단어입니다.”

설익은 사과 맛이랄까? 조금은 어색하고 미숙하면서도 청소년다운 신선함이 느껴졌다. 딴은 그렇다. 학교와 폭력은 어울리지 않는, 아니 어울려서는 안 되는 단어들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학교 폭력’이란 말은 이미 우리의 귀에 익숙해진 지 오래다. 서로 붙어 있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굳게 결속하여 학교와 사회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토요일 오후 2시, 여수 YWCA(회장:조효순) 주최로 ‘학교 폭력 근절을 위한 청소년 토론대회’가 여수 여성문화회관 회의실에서 열렸다. 여수 지역 8개 중ㆍ고등학교 학생들이 참여한 이번 토론대회는 학교별로 사전토의를 거친 뒤에 그 결과물을 대표 학생이 토론자로 나와 발표하는 형식을 취했다. 정희란 간사는 경과보고에서 “학교 현장을 방문하여 토의 과정을 지켜보았는데 그 과정에서 참신하고 현실적인 방안들이 쏟아져 나와 많이 놀랐다”고 소감을 털어놓았다.

한 가지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시내 초ㆍ중ㆍ고 학교에 모두 공문을 보냈지만 인문고등학교(특히 공립)에서의 반응은 냉담했다. “우리 학교는 학교 폭력이 없어서 토론회에 참석할 이유가 없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학생들의 시각은 달랐다. 학교 폭력이 일어나는 원인을 인성교육을 등한시하는 학교의 입시위주 교육에서 찾고 있는 토론자들이 의외로 많았다. 학교 대표가 아닌 청소년 동아리 대표로 나온 두 고등학생의 말에 귀 기울여보자.

a 토론회를 지켜보는 눈길들

토론회를 지켜보는 눈길들 ⓒ 안준철

“입시 위주 환경으로 인해 학생들의 스트레스가 학교 폭력으로 풀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교사들은 일진회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들이 생각하기엔 일진회보다도 오직 점수만을 생각하는 학교와 가정의 무관심이 더 큰 문제입니다. 또 성적 문제로 학원이나 과외를 받은 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건전한 놀이문화도 잊혀지고 폐쇄된 공간에서 성인 싸이트나 폭력적인 영화로 스트레스를 풀다보면 자연히 폭력에 길들여질 수밖에 없습니다.(여수 청소년 YMCA 까끔)”

“학생들에게 자율권을 주지 않고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 학교 폭력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우리 학교는 학생회가 있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학생들이 참여하지 못하는 허수아비 학생회일 뿐입니다. 그리고 학교는 학생의 정서나 인격형성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은 전무하고 오로지 입시 위주 교육과 성적만을 강조하여 학생들 간의 여유가 없고 냉정함과 비정함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학생들의 사고를 부정적으로 만들어 폭력을 일으키기도 합니다.(여수 YMCA 노둣돌)”

이날 토론회에서 학교 폭력을 근절하는 방안의 하나로 인권 교육을 정규 과목으로 신설하고 제대로 된 교육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학교와 지역사회 청소년 수련관과 연계하여 학생들의 여가 프로그램이나 동아리 활동을 지원해 주어야한다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은 학생도 있었다.


학교 상담실의 활성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학교에 상담실이 있지만 있으나마나하며 인성상담이나 생활상담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진학상담만 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거짓 상담교사가 아닌 학생들에게 신뢰받는 진정한 상담교사가 필요하다”고 역설하며 유명무실한 학교 상담실 운영에 대해 따갑게 일침을 놓기도 했다.

왕따 체험을 통해 소외와 따돌림의 아픔을 한번쯤 경험한다면 급우를 왕따 시키는 일도 조금은 줄어들 것이라는 의견도 많았다. 학교 폭력은 서로 잘 알지 못하는 학생들 간의 반목이나 작은 오해로 야기될 수 있음으로 학기 초에 서로를 알고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하며 그런 친목을 도모하는 시간을 교육과정 속에 넣어 운영해야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 여학생은 앳되면서도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대중매체에 대한 자성을 요구하기도 했다.

“인터넷 소설이나 영화 등으로 소위 일진이라는 학생들이 모든 이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한때 조폭 영화나 드라마가 유행했을 때 학생 범죄가 늘어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시청률이나 자사의 이익보다는 청소년들을 먼저 생각하는 풍토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a 연극 공연

연극 공연 ⓒ 안준철

이날 대상은 이장한군(여수전자화학고 2학년) 외 15명이 수상했으며 “학교 폭력의 대상은 나약하게 보이고 자신 없어 보이는 학생에게 가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 자신의 모습을 당당하게, 자신감 있게 만들고 변모시켜서 타 학생들이 나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자신의 행동과 의식수준을 높여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이날 100여명의 관객 중에는 학생들을 지도한 교사들도 일부 자리를 함께 하고 있었다. 심사위원 석에서 점수를 매기다 말고 나는 문득 뒤를 돌아 그분들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길은 없으나 어린 제자들의 입을 통해서 쏟아진 성토에 가까운 말의 화살을 맞고도 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프면서도 환한, 그런 표정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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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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