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닌 '그들'은 한국전쟁을 이렇게 본다

[책읽기가 즐겁다 136] <그들이 본 한국전쟁 1>을 보면서

등록 2005.07.20 11:00수정 2005.07.20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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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 눈빛

<1> 전쟁을 겪는 사람들의 삶

중국에서 바라보는 1950년 한국전쟁은, "평화와 정의를 위하여 싸운" 일이며, "미국이 종이호랑이임을 밝혀낸" 한편, "동방 평화의 전초를 지켰"고 "영예와 우정을 가득 싣고 돌아온"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세 해에 걸친 전쟁을 돌아보고 생각할 테며, 북녘은 북녘 나름대로 생각할 테고, 이 전쟁에 몸담은 미국과 중국도 그들 나름대로 생각할 테지요.


보통 전쟁을 누가 일으켰는가 하는 문제로 머리에 핏대를 올리곤 하는데, 전쟁은 한 나라를 평화롭고 아름답게 가꾸려는 마음을 품지 않은 독재 권력자들이 부딪쳐서 일어났다고 보아야 옳지 싶습니다. 그곳이 남이든 북이든 물 건너 저 멀리든 어디이든 말입니다.

- 해방된 조선 북부의 인민들은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 부지런히 일하였다.
- 일본 제국주의 아래에서 오랫동안 노예 생활을 겪은 조선 인민들이 평화롭고 행복한 생활을 향한 첫걸음을 떼었다.
- 토지를 분배받은 농민들은 풍요롭고 행복한 상조 합작의 길을 향하여 걷기 시작하였다.


한국전쟁이 터지기에 앞서, 북녘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은 <그들이 본 한국전쟁 1>에 나온 사진 말입니다. 이 사진 말마따나 남이든 북이든 오랜 시달림에서 벗어난 기쁨과 보람으로 평화를 이룩하려는 마음은 한결같았지 싶습니다. 다만, 남과 북에서 시달리고 억눌렸던 `보통사람'들은 이렇게 평화롭고 자유롭게 살고픈 마음이었을 테지만, 남이나 북에서 권력을 움켜쥔 이들은 다른 생각을 품었겠지요.

- 잔혹하게 도살된 죄 없는 인민들.
- 욕을 당하고 살해된 부녀자.
- 어머니를 잃은 천진한 아이.


싸움터가 된 이 나라에서 죽은 사람들은 보통사람들입니다. 군인, 이 가운데 일반 병사로 끌려가서 한겨레임에도 총부리를 맞대고 서로 죽이지 않으면 자기가 죽고 마는 처지에 빠진 사람도 보통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싸움터에서 죽어나간 군인을 남편이나 오빠나 동생이나 아버지로 둔 사람도 보통사람들입니다. 욕을 당하고 공출을 당하고 부역을 당해야 한 사람 모두 보통사람들이고요. 싸움터에서 비 오듯 쏟아지는 총알은 이 보통사람들을 '소모'시키며 체제와 권력을 더욱 튼튼하게 할 뿐, 우리 삶을 나아지게 하지 않습니다.


- 지원군은 조선 인민의 생산 노동을 돕는 것을 당연한 책임으로 여겼다. 전사들이 전투 사이의 휴식 기간에 인민의 봄갈이를 돕고 있다.
- 양국 인민전사들은 자주 함께 개울에서 세탁을 하면서 친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 '어머니'에게 땔감을 드렸다.


<그들이 본 한국전쟁 1>에 실린 사진을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 삶과 문화를 차분히 돌아보기에 매우 소중한 자료가 퍽 많습니다. 전쟁이 있건 없건,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어떤 마을에서 어떤 차림새로 무엇을 하면서 살아갔는가를 엿볼 수 있는 사진이 꽤 있거든요.


중국 인민지원군이 봄갈이를 돕고 땔감을 대신 해 주며 어떤 전술이나 선전효과를 노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요. 어쨌든 그 인민지원군은 고향인 중국에서는 거의 모두 농사꾼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군인으로 뽑히거나 스스로 나서서 이렇게 북녘 땅에 왔을 때 농번기를 쉬 지나치기 어려웠을 테며, 휴전이 이루어지고 북녘 땅에 남았을 때는 북녘사람들과 함께 농사일을 도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렇게 농사일을 도와야 자기들이 먹을 밥도 나오고 땔감도 얻을 테니까 자연스레 일을 도왔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때 남녘에 남아 있던 미군은 어떠했을까요? 덧붙여 지금까지도 남녘에 남아 있는 미군은 우리한테 어떠한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을까요?

- 지원군의 모 부대는 메가폰으로 항복을 권유하여 미군 흑인 중대를 투항하게 하였다. 투항 후 지원군의 우대를 받은 그들은 매우 흥분하고 즐거워하였다. 오랫동안 미국에서 인종차별을 받다가, 이곳에서 처음으로 인도적인 대우를 받은 것이다.

전쟁을 바라보는 우리 눈길은 여러모로 다독이고 다스리며 차분하게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먼저 누구를 쳤느냐, 얼마나 학살을 당했느냐, 세균전을 일으켰느냐 어쩌느냐 하는 이야기도 중요하겠지만, 훨씬 중요한 일은 싸움터로 끌려 나와서 총부리를 든 사람은 누구이고, 이렇게 싸움이 벌어지면서 가장 괴롭고 힘든 이들이 누구인가 하는 대목이지 싶어요. 그리고 어떤 사람이 군인으로 뽑혀 나왔으며, 이들 삶은 어떠했는가도 살피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군 가운데 '흑인'들은 어떻게 뽑혀 왔고 어떤 대접을 받았는가를 헤아리는 일도 중요한 대목 가운데 하나라고 봅니다.

- 수많은 포탄 구덩이를 신속하고 평평하게 메우는, 어렵지만 중요한 새로운 전투가 시작되었다.

전쟁이 끝난 뒤 북녘 땅은 그야말로 포탄 구덩이 투성이였겠지요. 남녘도 마찬가지로, 공습과 포격으로 불타지 않은 산과 들과 집이 없었을 겁니다. 바로 이런 자취, 전쟁이 할퀴고 간 생채기를 다스리고 씻어내는 일도 우리들 보통사람이 떠안고 도맡은 일입니다.

전쟁은 사람을 사람 아닌 괴물로 만들기도 하지만, 사람과 뭇 생명체가 함께 살아갈 터전을 깡그리 짓밟고 부수는 끔찍한 짓을 저지릅니다. 저마다 품는 생각이 다르고, 살아가는 방법도 다르며, 먹는 밥과 입는 옷과 사는 집도 다릅니다. 이 다른 사람들은 자신한테 가장 알맞은 길로 살아가야 가장 좋습니다. 우리한테 평화가 소중하다면, 모든 사람이 다 다른(개성, 다양성) 모습을 언제나 즐겁게 간직하면서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일이 그만큼 아름답고 좋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그들이 본 것"을 보면서

그들, 중국 사람이 본 한국전쟁을 책 한 권으로 만나 보았습니다. 중국 사람들도 그들 나름대로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고 적군(미국)이 얼마나 끔찍한 짓거리를 저질렀는가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들이 '미국을 막고 벗(북조선)을 돕는다'고 한 데에는 그만큼 자기한테 도움이 되고 좋은 일이 있기 때문이었을 테지요. 이 땅에서 전쟁을 치른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총부리를 겨눈 남과 북도 그럴 테고요.

그런데 우리들이 쉬 놓치는 일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하나는 전쟁으로 시달리는 보통사람들 삶이고, 전쟁으로 쑥대밭이 되어 버리는 이 나라 산과 들과 강과 바다입니다. 등에는 포개기로 아기를 들쳐 업고 소 대신 사람이 끄는 쟁기로 밭을 가는 아주머니는 짚신을 신고 있습니다. 보통사람들이 사는 집은 흙벽이고, 방에는 자리 하나 깔려 있습니다. 벽에는 아무것도 안 발랐어요. 사람들이 입은 옷을 잘 살피면 때나 먼지가 꽤 묻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남는 옷이 거의 없어서 늘 입던 옷을 입고 살았을 테니 그랬겠지요.

부지런히 가마니를 틀고 다 튼 가마니에 곡식을 담고, 이렇게 담은 곡식을 나릅니다. 바느질을 하고 지붕을 잇고 빨래를 하고 무너진 집도 일으키는 한편, 쉬는 참에 함께 어울려 춤과 노래를 즐기기도 합니다.

책 정보

책이름 : 그들이 본 한국전쟁 1
- 항미원조, 중국 인민지원군
글,사진 : 해방군화보사
옮긴이 : 노동환
펴낸곳 : 눈빛(2005.6.25.)
책값 : 20000원
나무라고는 거의 보이지도 않는 산을 타고 넘는 군인들이 보이고, 이런 군인들이 가로지르고 넘은 산에는 꺾이고 부러지고 잘리고 넘어진 나무들이 있을 뿐입니다. 이때, 한국전쟁을 치른 이 나라에 살던 들짐승, 산짐승은 어찌 되었을까요. 죽은 사람 숫자는 누군가 기록으로 남기지만, 죽은 짐승 숫자는, 죽은 푸나무 숫자는 그 어디에도 적거나 남기지 않습니다.

전쟁이 터진 지 쉰다섯 해, 전쟁이 끝난 지 쉰 두 해입니다. 전쟁이 있었어도 살아남고 견뎌 낸 사람들이 있고, 살아남고 견뎌 낸 자연이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남고 살아가는 우리들과 우리 삶터를 생각하면서 `우리가 참말로 헤아리고 마음 쓸 일'이 무엇일까, 지난날 한국전쟁을 겪은 생채기와 아픔을 어떻게 다스리면 좋을까를 말하는 좋은 시 한 편을 옮기며 글을 마칩니다.

사람들은 참 아무것도 모른다
밭 한 뙈기
논 한 뙈기
그걸 모두
'내' 거라고 말한다.

이 세상
온 우주 모든 것이
한 사람의
'내' 것은 없다.

하느님도
'내' 거라고 하지 않으신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다.

아기 종달새의 것도 되고
아기 까마귀의 것도 되고
다람쥐의 것도 되고
한 마리 메뚜기의 것도 되고

밭 한 뙈기
돌멩이 하나라도
그건 '내' 것이 아니다.
온 세상 모두의 것이다.
〈권정생-밭 한 뙈기〉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책과 헌책방과 우리 말을 사랑하는 모임인 '함께살기(http://hbooks.cyworld.com)' 게시판에 함께 올려놓고, 서울 은평지역 시민신문인 <은평시민신문(http://epnews.net)>에도 함께 보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책과 헌책방과 우리 말을 사랑하는 모임인 '함께살기(http://hbooks.cyworld.com)' 게시판에 함께 올려놓고, 서울 은평지역 시민신문인 <은평시민신문(http://epnews.net)>에도 함께 보냅니다.

그들이 본 한국전쟁 1 - 항미원조 - 중국인민지원군

중국 해방군화보사 글.사진, 노동환 외 옮김,
눈빛,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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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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