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만 지나면 팬티까지 젖어요"

SK 와이번즈 용돌이·용순이 마스코트 오연중·신수항씨

등록 2005.07.22 01:04수정 2005.07.22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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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은 어디로 떠날까?"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됐다. 불경기다 뭐다 말들은 많지만, 이맘때면 젊은이들의 마음은 으레 설레기 마련이다. 매년 그렇듯, 산과 바다를 놓고 저울질 하는 사람들도 많을 듯한데.

그러나 여기, 푹푹 찌는 날씨에도 '이열치열' 온 몸을 땀으로 적셔가며 돈 벌기에 여념 없는 젊은이들이 있다. 다른 일터에서와는 달리 유별나게 화끈한(?) 의상을 입고 있어야 하는 두 사람. 바로 SK 와이번스의 마스코트 '용돌이·용순이' 역을 맡고 있는 오연중(용돌이, 20·인천전문대 체육과)씨와 신수항(용순이, 20·인천전문대 체육과)씨가 그들이다.

땀으로 시작하는 하루, 마스코트 안은 찜질방?

a 7월 16일 프로야구 올스타전이 열렸던 인천문학경기장. 용돌이 오연중씨가 기념 티셔츠를 발포하기 전 팬들에게 호응을 유도하고 있다

7월 16일 프로야구 올스타전이 열렸던 인천문학경기장. 용돌이 오연중씨가 기념 티셔츠를 발포하기 전 팬들에게 호응을 유도하고 있다 ⓒ 안윤학

7월 16일 주말 오후, 프로야구 올스타전이 열렸던 인천문학경기장. 무더위를 잊은 듯한 팬들의 열기는 야구장 건물 한구석에 마련된 그들의 아지트에도 그대로 전해졌다. 연중씨와 수항씨는 잠시 의상을 벗고 맨바닥에라도 드러누워 더위를 식히고 싶었지만, 마스코트가 언제 호출될지 몰라 '항시 대기중'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이 옷, 가히 상상을 초월하죠! 요즘 같은 날은 10분만 지나면 팬티까지 젖습니다!"


엄청나게 큰 용 모양의 가면과 삼복더위를 무색케 하는 두꺼운 의상, 슬리퍼를 신어도 시원찮을 판에 거대한 장화까지 신었다. 겨울을 지내기에도 문제없을. 그러나 가만히 앉아있어도 온몸이 끈적끈적해지는 요즘 같은 때는 견디기가 힘들 것 같은데.

"가끔 눈썹 같은 곳에 땀이 차거나 볼에 땀방울이 흘러내려 간질간질 할 때가 있죠. 그런데 팬들 앞에선 마음대로 가면을 벗지 못하니 긁을 수도 없고, 땀이 눈에 들어가도 닦아 내지도 못하고. 그럴 땐 그야말로 미치는 거죠!"


마스코트의 주된 업무는 팬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것. 따라서 그들은 '이미지 관리'를 위해 몇 가지 지켜야 할 수칙이 있다. 먼저, 아무리 더워도 팬들 앞에선 절대 가면을 벗지 말 것, 그리고 말하지 말 것. 또 팬들이 뭐라고 욕을 하든 그냥 참고 넘어갈 것. 와이번스 팀의 이미지를 지키는 것도 중요한 임무 중 하나다.

학교를 다니고 있는 연중씨와 수항씨가 경기장에 도착하는 시간은 보통 오후 4시경. 둘 다 체육을 전공하여 경기장에 오기전 이미 녹초가 될 때가 많지만, 일터에서는 개인적인 사정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들에게 맡겨지는 첫번째 임무는 경기장에서 사용될 음향기기를 나르고 설치하는 일. 그들이 '노가다'로 부르는 이 작업은 마스코트가 몸풀기(?)로 하기엔 사실 부담이 된다.

"6시부터는 선수들이 몸을 풀기 시작해요. 우린 그때야 비로소 캐릭터 옷을 입고 운동장에 나가죠. 팬 서비스 차원에서 선수들과 장난을 치며 노는 거죠. 가끔 선수들이 장난으로 툭툭 치기도 하는데, 운동하시는 분들이라 그런지 살짝 쳐도 엄청 아픕니다! 특히 정경배 선수, 박재홍 선수가요!"

a 아이들과 사진을 찍고 함께 놀아주는 것은 마스코트에게 가장 큰 임무!

아이들과 사진을 찍고 함께 놀아주는 것은 마스코트에게 가장 큰 임무! ⓒ 안윤학

더위보다 더 공포스러운 건 꼬마 악동들!?

사실 이들에게 더위를 참는 것 외에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어 보였다. 기기를 나르는 힘든 일도 잠시, 일당 5만원에 종종 쉬는 시간도 있어 지친 다리를 쉬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미처 예상치 못한 복병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꼬마 악동들. 지독하게 끈적끈적한 날씨만큼이나 지독하게 끈적끈적 달라붙는 아이들은 이제 용돌이·용순이에겐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다.

a 경기장 입장 도중 바지가 벗겨져 망신(?)을 당한 용돌이

경기장 입장 도중 바지가 벗겨져 망신(?)을 당한 용돌이 ⓒ 안윤학

"더운 건 이제 익숙하죠. 한 2시간만 지나면 덥다는 느낌이 안들 정도로 무감각해집니다. 그런데 꼬마애들이 괴롭히는 건 정말 말로 표현을 못해요! 그것 때문에 정말 이 일 그만두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니까요!"

마스코트 일을 '야구장에 온 아이 모두를 돌보는 보육사'로 정의한 연중씨. 부모들이 경기 보느라 정신없는 사이 용돌이·용순이는 아이들의 장난감으로 전락해 버린다고.

관중석에 오르면 순식간에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튀어 나온다. 가면을 뺏으려는 아이들, 날개 떼어 가려는 아이들, 꼬리를 잡고 놓지 않는 아이들, 사정없이 주먹질을 해대는 아이들, 욕하는 아이들….

"짓궂은 아이들은 막 장난치고 때리면서 이렇게 말해요. '진짜 용 맞아? 한 번 날아봐! 왜 못 날어? 날지도 못하는데 무슨 용이야?', '근데 너 남자야 여자야? 말 못하겠으면 남자면 고개를 끄덕이고 여자면 얼른 도망가!' 특히 7살 쯤 된 남자아이들은 자기네들이 무슨 만화영화 주인공인 것 마냥 나를 나쁜 괴물 취급해서 사정없이 때리고 날개 뜯어가고…."

a "예쁜 여학생들이 오면 기쁘죠"

"예쁜 여학생들이 오면 기쁘죠" ⓒ 안윤학

웃지 못 할 에피소드는 줄을 이었다.

"한번은 한 아이가 야구방망이로 저를 때리더라구요. 팔꿈치가 무지 아팠죠. 옆에 서 있던 아이 부모님은 그저 웃고만 계시고…. '좀 말리지!' 하는 맘은 들었지만 별 수 없었죠. 도망가는 수밖에. 그럼 쫓아와서 또 때리고…, 때리지 말라고 손 흔들면 '그래, 인사하자!' 하고 또 때리고…."

가면 속에서 남몰래 눈물을 훔쳤던 적도 있다. 30, 40명씩 떼거리로 몰려온 여고생들에게 둘러싸여, 가면이 벗겨질 정도로 사정없이 얻어맞는 수모를 당했던 것. 수차례나 사고(?)를 당했다는 연중씨는 그럴 때면 정말 참지 못할 설움이 복받쳐 온다고 했다. 아이들한테 당하는 것도 서러울 텐데.

"가끔 술 취한 아저씨들은 가슴을 만지기도 해요."

치마를 두른 용순이는 겁탈(?)을 당하기도 한다나. 원래 '용순이' 마스코트에는 여자들의 지원도 있었으나, 선임자들의 만류로 포기했다고 한다.

a 경기장에 나선 용돌이와 용순이

경기장에 나선 용돌이와 용순이 ⓒ 안윤학

악동들의 장난에 시달리고 여고생들의 매서운 주먹에 멍이 들기도 하고. 이젠 아예 '동네 북'이 되어버렸다나. 그러나 그런 그들에게 때때로 행운이 찾아올 때도 있단다.

"물론 이쁜 여고생이나 대학생들이 와서 같이 사진찍자고 하면 기분 좋죠. 나도 남잔데. (웃음) 용돌이 귀엽다고 막 끌어안고 팔짱끼고 하면 가면 안에는 씨익 웃고 있는 거죠. 아 이거 어떻게 해야돼 하면서…."

연중씨와 수항씨는 장애인 어린이들과 놀아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마스코트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기뻐하는 그들을 볼 때는 정말 가슴이 찡해진다고.

힘든 아르바이트에 공부도 열심히, 새벽엔 어머니 일을 돕기도

경기장에서 힘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지난 학기 장학금을 거머쥐게 되었다는 오연중씨. 그는 피곤한 일과를 마친 후에도 호프집을 운영하시는 어머님 일을 도와드리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설계사였던 아버님이 병으로 누우신 지 1년, 어머님 혼자 가계를 꾸려나가시기가 무척 힘들기 때문이다. 한창 놀고 싶기도 할, 이제 대학에 갓 들어간 스무 살 청년치고는 무척이나 바쁜 일정. 그래도 그는 일이 힘들다고 느낀 적이 없다고 한다.

"돈을 힘들게 벌다 보니 아무래도 돈 쓸 때 두세 번 생각하게 돼요. 그렇게 절약하는 장점도 있는 것 같고…, 무엇보다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잖아요. 저는 아직 어리니깐 힘들다는 게 별로 느껴지지 않아요."

a 티셔츠 발포용 가스총(?)에서 새어나오는 바람으로 더위를 식히고 있는 용순이 신수항씨.

티셔츠 발포용 가스총(?)에서 새어나오는 바람으로 더위를 식히고 있는 용순이 신수항씨. ⓒ 안윤학

20살 어린 청년임에도 그의 경력은 화려하다. 막노동, 뷔페 서빙 등 힘든 아르바이트만 골라 해 보았다는 것. 뜨끈뜨끈한 옷 속에서 더위만 참으면(?) 되는 마스코트 일은 오히려 쉬운 거라나? 꼬맹이들만 없으면 정말 환상적인 아르바이트라고.

"흔히 친구들은 무슨 일을 하기 전에 따지고 고민만 해요. 아, 이거 하면 놀 시간도 안 되고, 힘들고, 뭐 이런 식으로. 근데, 지금 뭐 그런 거 따질 땐가. 나라면 다 해요. 지금 알바고 뭐고 일자리 구하기가 얼마나 힘든데."

더위를 참는 것이 그들에겐 쉬워 보인다. 19일 경기부터는 마스코트 옷을 입은 채 춤까지 출 예정이라고 한다. 벌써 2주 전부터 맹연습을 해 왔다고. 가만 있어도 더운 판에 할 일이 더 생겨 귀찮아지지 않겠냐는 질문에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일이 있으면 오히려 마음이 더 편해요!"

더위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 일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 곧 피서인 사람들. 땀과 일을 즐기는 그대들이 진정한 챔피언이다.

"너무 더워 벗고 춤추고 싶을 정도예요"
[인터뷰] 삼성 라이온스 캐릭터 김상헌·권봉욱씨

▲ 왼쪽부터 삼식이 권봉욱, 헌사마 김상헌씨.

2005 프로야구 올스타전, 치어댄스 경연대회에서 두터운 캐릭터 옷을 입고도 화려한 춤동작을 보여줬던 김상헌(24), 권봉욱(25)씨. 자신들은 대구구장의 '헌사마(김상헌)'와 '삼식이(권봉욱)'라고. 그들은 대구의 한 이벤트 회사 댄싱팀에 소속되어 있다고 한다. 캐릭터 일은 98년부터 했다고.

- 춤이 전공이라 했는데, 캐릭터 일만 하나?
"캐릭터 일할 때는 캐릭터 일하고, 또 단상에 올라 갈 때도 있다. 대구구장에서는 얼마 전부터 남자 치어리더 한 명이 여자 치어리더들과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다."

- 캐릭터 일을 하며 가장 힘든 점은?
"덥다는 게 가장 힘든 점이다. 캐릭터 일 많이 하다 면 정말 '벗고' 춤추는 게 꿈일 때가 많다. (웃음)"

- 캐릭터 일 중 무엇이 가장 마음에 드는가?
"얘(가면)는 귀엽다. 난 안 귀여워도. (웃음) 그게 제일 마음에 든다. 우리들이 가면을 벗는 순간 아이들의 꿈은 깨지는 거다. 절대로 가면을 벗으면 안 된다."

- 일을 하며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
"캐릭터 의상 입고 뮤지컬을 하거나 CF 패러디를 할 때 관중들이 많이 웃어준다. 그럴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관중이 기쁠 때 우리도 기쁘다. 가장 기뻤을 때는 뭐니뭐니 해도 2002년 시즌 삼성이 우승했을 때였다. 모자 안에서 울기도 했다."

- 아이들이 많이 많이 괴롭힌다던데...
"관중석에서 모자를 벗기려는 아이들이 제일 골치다. 화도 못 내고, 그런 아이들 근처는 가지도 못하고 도망만 다닌다."

한편,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는 기아 타이거즈 캐릭터 김현웅(27)씨도 관중이 호응할 때가 가장 기분 좋다고 말했다. 춤출 때는 너무 덥고 호흡도 제대로 할 수 없어 힘들지만, 팬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힘을 낸다고. / 안윤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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