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설지공'이 그저 옛날 이야기일 뿐이라고?

민족예술단 우금치가 벌이는 신명나는 야외 마당극 <형설지공>

등록 2005.07.24 14:43수정 2005.07.25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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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극은 막을 내렸지만 못다 푼 신명이 남았는지 아이들이 무대로 꾸역꾸역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마당극은 막을 내렸지만 못다 푼 신명이 남았는지 아이들이 무대로 꾸역꾸역 모여들기 시작합니다.김유자
민족예술단 놀이패 '우금치'가 현대문명의 발달로 인한 자연의 훼손과 오염의 심각성을 해학과 풍자로 꾸며낸 환경 마당극 <형설지공>(김인경 작/류기형 연출) 공연이 7월 23일 밤 8시 대전문화예술의전당 야외 원형극장에서 열렸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무더위였지만 아이들의 손을 잡고 앉은 관객들의 표정과 자세는 진지하기만 했습니다.


자연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이야기

공연은 첫째 마당 <자연춤>, 둘째 마당 <강남제비국>, 셋째 마당 <서해용궁>, 넷째 마당 <지구장례식> 이렇게 모두 네 마당으로 나뉘어 진행됐습니다.

개나리와 진달래, 벌, 나비, 소 그리고 주인공인 김선비가 등장해서 관객들과 댓거리를 펼치면서 첫째 마당이 열립니다. 주인공인 김선비가 속세를 등지고 농사를 지으며 황돌이, 진달래, 개나리 등 자연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내용입니다.

김선비는 세상에 있는 온갖 사물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을 만큼 심성이 고운 사람이었지요. 낮에는 부지런히 일을 하고 밤에도 쉬지 않고 공부를 했습니다. 가난한 나머지 등잔에 넣을 기름 살 돈마저 없었던 김선비는 여름에는 반딧불이의 불빛을 등잔불 삼아 책을 읽고, 겨울에는 흰 눈의 빛으로 공부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반딧불이가 사라지고, 흰 눈마저 내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김선비는 더 이상 책을 읽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궁금해진 김선비는 반딧불과 흰 눈을 찾으러 길을 떠납니다.


이야기는 이제 둘째 마당으로 넘어 갑니다. 김선비가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제비나라였습니다. 그러나 김선비가 거기서 만난 제비들은 해마다 봄이 되면 흰 구름 박차고, 검은 구름 무릅쓰고 만 리 조선국을 날아오던 그 제비들이 아니었습니다. 산성비를 맞아 대머리가 되고, 파괴된 오존층에서 쏟아져 나온 자외선을 너무 많이 쐰 나머지 장님이 되어 있는 제비들이었습니다.

셋째 마당은 제비들의 참상을 통해 대기오염의 심각성을 알게 된 김선비가 물속 나라를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아니나 다를까. 물고기들 역시 병 들어 난리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용왕마저 병이 들어 누워있는 형편이었습니다.


이야기는 어느 새 넷째 마당에 다다릅니다. 지구가 처한 상황을 고하러 천상으로 돌아온 풍백과 우사는 옥황상제에게 자연을 살리자면 환경파괴를 일삼는 인간들을 멸하는 수밖에 없다고 진언하지만, 그래도 옥황상제는 지구의 미래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판단에 맡겨두기로 합니다.

그러나 환경파괴를 멈출 줄 모르는 인간들은 결국 지구와 함께 자멸하고 맙니다. 지구의 장례식이 거행됩니다. 그러나 어디선가 들려오는 달구질 소리와 함께 하늘,땅,사람의 새로운 소생의 가능성을 열어두며 마당극은 막을 내립니다.

배우들의 걸쭉한 입담이 만들어내는 해학

"우산 없이 비를 맞고도 괜찮은 그런 날을 기다린다면/언제까지 모른척할 순 없잖아. 내일은 늦으리"

굳이 강산에의 노래 '내일은 늦으리'를 들먹일 필요도 없이 환경문제는 우리 시대의 영원한 현안이 아닐는지요?

마당극 <형설지공>은 인간들의 무분별한 환경 파괴가 어떤 비극을 가져다주는지 몸짓 언어로 보여줍니다. 환경문제라는 소재 탓에 자칫 뻔하디 뻔한 줄거리와 계몽주의에 빠질 수도 있는 위험에서 이 마당극을 구해낸 건 배우들의 걸죽한 입담과 해학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관객과 배우가 함께 호흡하고, 관객을 즐겁게 연극 속으로 끌어들이는 야외공연만의 장점이 한껏 돋보인 즐거운 무대였습니다.

오지 않는 반딧불이를 찾아서 김선비는 강남제비나라로 갔습니다.
오지 않는 반딧불이를 찾아서 김선비는 강남제비나라로 갔습니다.김유자

용왕의 병에 좋다는 토끼로 오인되어 용궁까지 끌려간 놀부가 자신이 토끼가 아니라고 변명하다가 혼쭐이 나고 있습니다.
용왕의 병에 좋다는 토끼로 오인되어 용궁까지 끌려간 놀부가 자신이 토끼가 아니라고 변명하다가 혼쭐이 나고 있습니다.김유자

환경파괴를 멈추지 않던 지구는 마침내 장례식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환경파괴를 멈추지 않던 지구는 마침내 장례식을 치르게 되었습니다.김유자

지구장례식을 치렀지만 그래도 어디에선가 소생의 기운이 움트기 시작합니다.
지구장례식을 치렀지만 그래도 어디에선가 소생의 기운이 움트기 시작합니다.김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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