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연인들, 뭐하는지 다 보이거덩?"

잠 못 드는 한강시민공원 청원경찰 24시

등록 2005.08.05 00:00수정 2005.08.05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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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한강 둔치에서 바라본 한강의 야경.

한강 둔치에서 바라본 한강의 야경. ⓒ 조현재

"부릉부릉, 부르릉~" "빠라빠라 빠라밤~"


7월의 마지막 주 토요일 밤, 한강시민공원 여의도지구 어디선가 불길한 소리가 들려온다. 매일 밤 한강다리 아래서 만나자고 굳게 맹세한 건지 밤만 되면 하나 둘씩 모여드는 오토바이족들. 잠깐 사이 원효대교 아래에는 얼추 20여대 정도의 오토바이가 출동했다. 이들이 나타나면 재빨리 레이더를 가동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한강시민공원의 청원경찰들.

"다들 피서 간 건가? 저번 주에는 오토바이가 한 40대 정도 와서 '웽웽웽' 거리며 난리를 피우더니. 오늘은 진짜 휴가 갔나 보네."

그래도 오늘밤은 조용한 거라는 호성수(51) 팀장은 이제 '척 보면 알' 정도로 베테랑이 됐다. 한강시민공원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청원경찰들에게 오토바이족들은 그리 반가운 존재가 아니다. 경적소리가 시끄럽기도 하거니와 사고위험도 늘 따르기 때문이다.

"경찰들도 사고 나면 자기네들이 책임져야 하니깐 과감하게 단속을 못하는 걸, 우리라고 어쩌나. 경찰들도 못 막는데 우리가 무슨 재주로 막겠어요. '스피드를 위해서는 죽음도 불사한다'는 친구들인데."

한여름밤 한강둔치로 향하는 사람들은 누구?


a 밤 9시경 원효대교가 보이는 곳. 많은 시민들이 더위를 식히기 위해 한강시민공원 여의도지구에 나왔다

밤 9시경 원효대교가 보이는 곳. 많은 시민들이 더위를 식히기 위해 한강시민공원 여의도지구에 나왔다 ⓒ 안윤학

여름이 되면 서울 시민들의 사랑을 넘치게 받다 못해 몸살을 앓는 한강시민공원. 열대야에 시달리는 가족들부터 호젓한 데이트를 꿈꾸는 연인들, 질주본능의 오토바이족들, 그리고 주먹깨나 쓰는 깡패들까지….

그러나 청원경찰들에게는 오토바이족이든 깡패든 한강을 찾는 사람 모두가 그들에게는 안전을 책임져야 할 '선량한 시민'일 뿐이다.


"조폭, 깡패요? 그런 분들도 '시민'이기 때문에 이곳에 놀러올 수는 있죠. 어떤 특수한 '목적' 때문에 오지 않는 이상 그분들에게도 친절해야 합니다."

서울에는 총 12군데의 한강시민공원이 있다. 잠실, 광나루, 뚝섬, 잠원, 반포, 이촌, 여의도, 선유도, 양화, 난지, 망원, 강서. 그 중에서도 여의도지구는 여름밤이면 인파로 뒤덮이는 '야간개장' 전문 공원이다. 이 외에도 서울 도심에서 텐트를 치고 캠핑을 즐길 수 있는 '난지캠핑장'과 '윈드서핑의 메카' 뚝섬지구, 국내 최초의 '환경재생 생태공원'인 선유도지구도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음수대에서 빨래하고, 수도꼭지 빼가고...

한강시민공원의 야간 치안은 각 지구에 소속된 청원경찰들이 담당한다. '기초질서 유지'라는 아주 기본적인 임무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다. 청원경찰들이 해야 할 일은 끝이 없다. 이륜차 단속, 도로변 무단 주차 단속, 야외 예식장·낚시터·놀이기구 등 각종 공원 내 시설물을 순찰·관리하고 불법 상행위도 단속해야 한다. 간혹 공원 내에서 운전 연습을 하거나 골프 스윙 연습을 하는 '못 말리는' 시민분들이 납시기도 한다.

a 주차장 입구에 길 양 옆으로 주차한 차량 때문에 소통이 어려웠다. 딱지를 붙이기 시작하자 차량이 하나 둘씩 사라졌다.

주차장 입구에 길 양 옆으로 주차한 차량 때문에 소통이 어려웠다. 딱지를 붙이기 시작하자 차량이 하나 둘씩 사라졌다. ⓒ 안윤학

"가끔 고스톱 치는 사람들이 있긴 하죠. 근데 요새 젊은 사람들은 거의 안 하더라구요. 적발하면 하지 말라고 얘기하죠. 기분 나쁘지 않게 좋게요. 간혹 음수대에서 빨래하시는 분들도 있어요(웃음). 정기적으로 화장실 상태도 점검해야 돼요. 수도꼭지나 샤워기 등 집에서 쓸 만한 것들을 빼가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으슥한 곳에서 낯 뜨거운 장면을 연출하는 젊은 연인들은 그나마 양반. "이젠 뭐, 하도 봐서"라며 청원경찰 한승희(52)씨는 덤덤하게 반응했다.

요즘 들어 애완동물과 밤바람을 쐬러 나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럴 때는 반드시 애완동물에게 줄을 매고, 공원에서 애완견을 훈련 시켜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한다. 행여 제2의 '개똥녀'가 되지 않도록 배변 봉투를 준비하는 것도 지켜야 할 필수 매너.

"오토바이는 나가 주세요"

오토바이족들이 모이는 원효대교 아래가 요주의 지역이라면 시민들이 강바람을 쐬는 강변은 조용하다.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람들. 늦은 시간에도 자전거나 인라인을 타는 사람들도 보인다. 특히 최근 들어 인라인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덩달아 청원경찰이 해야 할 일이 하나 늘었다. 바로 자전거도로의 이륜차 단속.

a 이륜차 단속에서 그릇을 수거하기 위해 나온 음식점 오토바이들이 적발됐다. "벌금 무는 거 아니죠?" 계도 기간이라 일단 경고만.

이륜차 단속에서 그릇을 수거하기 위해 나온 음식점 오토바이들이 적발됐다. "벌금 무는 거 아니죠?" 계도 기간이라 일단 경고만. ⓒ 안윤학

"이륜차는 밖으로 나가 주세요!"

이헌모(46)씨와 한승희씨가 큰 소리로 이륜차 단속에 나섰다. 인라인이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 붕붕 달리는 이륜차는 무법자나 다름없다. 여의도지구의 자전거도로는 7.2km에 이르는데 이륜차에 의한 사고 위험이 높아지면서 7월 초부터 본격적인 단속이 시작됐다.

"예전에는 퀵 서비스나 음식 배달하시는 분들의 지름길이었지요. 일반 도로로 다니려고 해봐, 그들 입장에선 불편하지. 여기 자전거 길로 가면 시간이 훨씬 많이 절약되니까. 하지만 홍보도 많이 하고 주간에도 계도를 하니깐 그런 분들이 많이 없어졌어요(웃음)."

그렇게 약 2시간 동안 이륜차 단속을 하고 나니 약 20명 정도가 적발됐다. 20대 초반의 한 사람은 단속 일지에 신분 사항을 기재하면서도 "이거, 벌금 무는 거 아니죠?"를 서너 번 연거푸 묻는다. 7월 단속은 홍보·계도 차원이라 과태료를 물지 않는다. 그러나 다음달부터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한밤 오토바이로 한강을 질주하길 즐기는 사람이라면 꼭 알아둬야 할 사실.

한강에 빠져죽는 사람들이 1년에 200여명

여름에는 워낙 날이 덥다 보니 사고가 많을 수밖에 없다. 특히 '술'과 '물'이 만나면 큰 사고가 나기도 한다.

"특히 여름철, 젊은 사람들 중에는 사고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요. 더우니까 술 먹고 혈기로 물 속에 들어가는 거지. 그리곤 그냥 그대로 못 나오는 거죠."

a 한강시민공원 여의도지구 호성수 팀장.

한강시민공원 여의도지구 호성수 팀장. ⓒ 안윤학

그렇게 강에 빠져 죽는 사람이 1년에 200명을 넘기도 한다. 최근에는 한강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간혹 오래된 익사체가 뜨기도 하는데 그런 사체를 처리하는 것도 청원경찰들의 몫이다.

"한강에는 익사, 자살, 투신사고가 많아요. 오래된 익사체도 많이 뜨고. 그런 거 보면 119나 112에 신고를 해요. 시체 인계하고, 동향 보고 올리죠. 안전사고 나면 119 응급 차량 불러서 후송 시키고…."

호성수 팀장은 무척 담담하게 처리 과정을 설명했다. 매일매일 일어나는 일상의 업무이니 무덤덤해질 수밖에 없는 듯했다.

5명이 37만평 관리한다면 믿겠어요?

하지만 청원경찰에게는 일반 경찰과는 달리 사법권이 없다. 때문에 시민들이 무시하거나 싫다고 버티면 달리 수가 없다.

"고정관념 때문인지 시민들이 청원경찰이라고 하면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백차(경찰차)'를 동원하면 안 그러시고, 혼자서 계도를 하면 잘 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이헌모씨)."

시민들의 '버티기'뿐만 아니라 서울의 자랑인 넓디넓은 한강시민공원도 이들에게는 다소 악재로 작용한다. 여의도지구의 총 면적은 37만1천 평인데 그곳을 담당하는 청원경찰은 고작 5명. 한 명이 7만4200평을 관리해야 한다.

"오늘 밤은 한 7만 명 정도 나온 것 같은데…. 현장에 투입되는 5명이 이렇게 많은 인파를 완벽하게 관리하는 게 가능하겠습니까?"

공원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는데 반해 일손은 그를 따라가지 못한다. 사람들이 이 일을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낮과 밤이 바뀌는 '올빼미 근무' 때문. 토요일(7월 30일) 오후 5시 출근, 밤샘 근무 후 일요일 아침 9시 퇴근, 월요일에는 아침 9시에 출근해 오후 5시까지 근무, 이렇게 3일 단위 일정이 계속 반복된다.

하루 걸러 하루, 낮과 밤이 바뀌니 건강에 빨간 불이 켜지지 않을 수가 없다. 여의도지구만 해도 지금 두 명이 뇌경색으로 병원에 입원 중이다. 이헌모씨는 17년을 근무하는 동안 정년퇴직하지 못하고 병으로 돌아가신 분들만 5명 정도 있었다고 말한다. 그래도 이 고된 한강둔치 청원경찰 일을 계속 하는 건 보람 때문이다.

a 한강대교에서 바라본 여의도. 뜨거운 서울의 밤 한강은 서울 시민의 훌륭한 휴식처다.

한강대교에서 바라본 여의도. 뜨거운 서울의 밤 한강은 서울 시민의 훌륭한 휴식처다. ⓒ 조경국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님이 애타게 울고 계셔서 저희가 대여섯 시간 만에 아이를 찾아드린 적이 있었죠. 그땐 참 뿌듯했습니다. 술 먹고 자살하려고 물 속에 뛰어드신 분 구해드렸을 때도 그랬고 분실한 물건을 찾아드렸을 때도, 비행 청소년들이 으슥한 데서 본드 부는 거 잘 타일러 부모님들께 인계해 드렸을 때도 참 기뻤죠."

호성수 팀장도 일이 힘들어도 '직업 정신' 때문에 견딜 수 있다고 말한다. 호성수 팀장은 낮에 꼭 한 번 더 찾아오라고 신신당부한다.

"밤에야 뭐 재밌는 거 있나, 우리들이 일하는 모습 밖에는 없지. 낮엔 이것저것 행사도 있고 특히… 저기 수영장에 가면 '그림' 되거든."

낮이나 밤이나 한강시민공원의 여름은 뜨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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