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니 이 비둘기도 집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해 헤맨 적이 있다더군요. 서로의 은밀한 자아를 드러내는 시간은 즐겁습니다.김유자
쉬지 않고 흘러가는 제 생각을 멈추게 하려는 듯 어디선가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와 파닥거립니다. 저 새도 레인 독처럼 길을 잃은 걸까요? 비 오는 날 뿐만 아니라 지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바람 한 점 없는 청명한 날에도 길을 잃곤 합니다.
그렇게 모든 존재에는 허점이 있고, 그 허점으로 사랑이, 깊은 연민이 파고드는 것이지요.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자만이 연민을 압니다. 아마 새도 저에게 알게 모르게 연민의 감정을 보내고 있겠지요.
강아지도 집을 찾아가버리고, 저도 집으로 돌아옵니다. 우린 둘 다 레인독처럼 굴었지만, 진짜 레인독은 아니었던 셈입니다. 레인독도 아닌 것들 끼리 만나서 그냥 청승 한 번 떨어본 것이지요.
삶은 언제나 규격이나 방편만을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 줌도 안 되는 분별이 순간 순간 우리를 머뭇거리게 하지만 때로는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더군요.
다시 비가 내립니다. 빗방울 수를 손가락으로 일일이 헤아려 봅니다. 한 방울, 두 방울… 그러다가 끝내는 빗방울의 수를 다 헤아리지 못합니다. 그래도 그렇게 숫자를 세다 잃어버리고 나면, 어느 새 무심의 경지에 다다른 나를 느끼곤 합니다.
방안에 갇힌 가엾은 존재를 위하여 톰 웨이츠가 다시 노래를 불러줍니다. 존재의 본능적인 쓸쓸함을 자극하는 목소리가 빗속에 젖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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