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내게로 오다> 책 표지눈빛
일상이 내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제멋대로 굴러갈 때 저는 구본창, 배병우, 정주하 등 스물아홉 명의 사진가들이 건져올린 바다 사진들과 김경미 시인이 쓴 산문들을 한데 묶은 포토 에세이 <바다 내게로 오다>를 읽곤 합니다.
김경미 시인은 198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비망록'이 당선되며 문단에 등단한 이후 <쓰다 만 편지인들 다시 못 쓰랴> <이기적인 슬픔들을 위하여> <쉬잇, 나의 세컨드는> 등의 시집을 낸 중견 시인이지요.
우리는 종종 사진집을 읽을 때 글이 사진의 깊이를 못 따라간다거나 글이 사진과 따로 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그러나 이 책은 적어도 그런 점으로부터는 비껴나 있는 듯합니다.
시인은 일부러 특정 사진에 맞추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려 들지 않고 그저 그의 개인적인 삶을 차분하게 이야기해나갈 뿐이지만, 그녀의 글은 절대로 사진가들이 찍은 사진들과의 유기적인 협동 관계를 흐트러트리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그만이 가진 은밀한 경험을 이야기하고, 때로는 한 편의 시를 들어 이야기합니다. 그의 삶의 한 자락을 깊은 바다에 담그고 스스럼없이 자신의 삶의 빛깔을 바다에 풀어 버립니다.
짙은 하늘 파랑, 밝은 하늘 파랑, 옅은 푸른빛 녹색, 짙은 검은 빛을 띤 남빛, 푸른빛 회색 파랑, 옥수수꽃 파랑 등 온갖 바다색에 맞추어 이야기도 갖가지 빛깔로 변주돼 갑니다.
바다는 일탈하는 자에게 주어진 선물 같은 것
책의 첫머리에서 시인은 우리가 왜 그렇게 바다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는가를 얘기합니다.
일상이 십 원짜리 동전처럼 구차하고 초라할 때, 사랑이 단지 상처이거나 모욕일 때, 마음만큼 잘 안 되는 일과 칫솔컵만한 인간관계가 절망스럽고 쓸쓸할 때, 그럴 때면 언제나 문득 바다가 그리워지곤 합니다. 보들레르가 "자유인이여, 언제나 너는 바다를 사랑하리"라고 노래했다면, 우리는 "일상인이여, 나는 언제나 바다를 그리워하리"인 것입니다.
어쩌면 바다는 일탈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런 저런 계획을 세우고 떠나는 자의 것이 아니라 말 없이 훌쩍 떠나는 자에게 주어지는... 시인은 늦은 밤 많은 사람들이 같은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정류장에서의 일화를 얘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