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이치 깨닫고 실천하는 게 유기농"

김경석·장상희 부부의 유기농 배농장 주원농장서 농민의 철학을 배우다

등록 2005.08.15 21:58수정 2007.06.15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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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주원농장 전경

주원농장 전경 ⓒ 김영조

우리는 8월 둘째 주에 휴가를 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휴가를 좀 의미있게 써볼 데가 없을까?’라며 여기저기 알아보았습니다. 물론 목표는 예전처럼 문화답사나 농촌체험이었습니다. 준비 부족으로 조금 허둥대다 가장 큰 유기농단체인 ‘한살림’ 누리집을 통해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다 찾은 것은 충남 아산에 있는 유기농 배농장인 ‘주원농장’이었습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유기농을 하는 농민은 모르는 사람이라도 따뜻하게 맞을 것이란 생각으로 무작정 전화를 했습니다. 농장주 김경석씨는 흔쾌히 내려오라고 했습니다. 생면부지의 농민을 만나면서 설레기도 하고 ‘혹시 폐를 끼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했습니다.

a 이야기하는 농장주 김경석씨

이야기하는 농장주 김경석씨 ⓒ 김영조

농장에 도착하자 농장주 김경석씨와 부인 장상희씨가 반갑게 맞습니다. 배와 복숭아를 먹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김경석씨는 말합니다.

"유기농에 대한 철학이 있어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농약에 중독되는 것이 싫었고, 하다 보니 좋았으며, 해가 지나면서 신념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 유기농은 저희를 철학자로 만듭니다. 자연, 농작물 그리고 병충해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듭니다."

유기농을 하는 농민 중 일부는 유기농에 대한 대단한 철학을 가진양 좀 으스대는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는 유기농에 대한 자연스런 접근을 강조하고, 겸손한 자세를 잃지 않습니다.

"과일나무에 영양분을 지나치게 공급하면 나무가 오히려 연약해집니다. 비료를 많이 주면 뿌리가 뭉쳐지고, 나무가 게을러지기 때문입니다. 죽기 전의 소나무에 솔방울이 많이 열리는 것처럼 배나무도 줄기나 잎만 무성해지고, 배는 크지만 볼품이 없어 상품성이 떨어집니다. 농사도 경지에 오르면 지나친 간섭이 아니라 나무가 알아서 하도록 놔두는데, 먼저 적당히 굶기면 나무가 야생성과 병충해에 대한 저항성이 강해집니다. 나무와 농민이 서로가 편하고 좋은 결과입니다."


a 복숭아를 따고 있는 김경석, 장상희 부부

복숭아를 따고 있는 김경석, 장상희 부부 ⓒ 김영조

사람도 소식하면 건강하다고 의사들은 말합니다. 배나무도 사람과 같은 자연의 일부이기에 역시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놔두는 것이 유기농은 아닙니다. 옛날 농민들이 썼던 석회유황합제나 석회보르도액 따위를 쓰는데 이는 옛날 농법을 이용한 안전하면서도 첨단농업이 되는 것입니다. 현대 과학이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오히려 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농약과 비료가 없으면 농사가 안 된다는 생각은 농약기업과 정부가 잘못 가르친 결과에 의한 강박관념일 뿐입니다."


유기농 중에서도 배는 가장 어려워 아직 확실하게 성공한 곳이 없다고 하는데 이곳은 벌써 4년째로 이제 거의 완성단계에 왔다고 합니다. 친환경 유기농산물은 유기농산물, 전환기유기농산물, 무농약농산물, 저농약농산물 등으로 나누는데 그중 1년 이상 유기합성농약과 화학비료를 일체 사용하지 않고, 재배한 전환기유기농산물 인증을 받은 것입니다.

주원농장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도 농사가 싫어서 처음엔 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농장을 물려받지 않으면 팔아버리겠다는 아버지의 협박에 어쩔 수 없이 물려받았는데 지금은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고백합니다.

a 다정스런 김경석, 장상희 부부

다정스런 김경석, 장상희 부부 ⓒ 김영조

"앞으로 우리 농업은 희망이 별로 없습니다. 우루과이라운드로 인해 농업시장도 열어야 하는데 다국적 농산물기업의 위세에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다만 유기농이라야 조금의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는데 이도 뼈를 깎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봅니다.

특히 저희 같이 배를 유기농으로 하는 데는 적정한 소득이 보장되지 못 할 수밖에 없어서 그것이 참 힘듭니다. 국내의 배 생산량은 40만 톤이 적정한데 3~5만 톤만 과잉생산이 되면 배값은 폭락합니다. 그래서 태풍이라도 와서 배가 적당히 떨어지면 오히려 반기기도 하는 형편입니다. 저희는 유기농을 4년째 하고 있는데 지난해는 평균 수확량의 40% 정도를 건졌고, 올핸 60% 정도를 예상합니다."

그는 마음을 비우는 것에 익숙한 듯 말했습니다. 배농사가 전폐하다시피 한 적도 있기에 30~40%만 건지면 만족한다고 말합니다. 배농사의 가장 큰 적은 ‘검은별무늬병(흑성병:黑星病)’이지만 고통을 겪은 뒤엔 결실이 많은데 저항력이 생긴 탓일 것이라며, 자식들도 연약하게 자라지 않도록 하겠다는 생각도 얼핏 내보입니다.

그런데 이 농장은 별스런 특징이 또 있습니다. 다른 농장과 달리 풀을 깎아주지 않는 것입니다. 예전의 어른들은 농사꾼이 풀을 깎지 않고 우거지면 게으르다고 했습니다. 실제 그도 풀을 깎지 않는다고 아버지에게 쫓겨난 적도 있었습니다. 경북 울진의 한 농민처럼 풀도 먹고살아야 한다는 생각일지 도대체 궁금했습니다. 부인 장상희씨는 말합니다.

a 독특하게 배나무 아래의 풀을 베지  앟는다.

독특하게 배나무 아래의 풀을 베지 앟는다. ⓒ 김영조

"농민들은 그동안 대부분 풀이 많으면 병충해도 많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해충들이 나뭇잎보다는 풀을 더 좋아 한다는 걸 알게 된 것입니다. 풀이 나무 밑에 우거지면 응애나 진딧물 등 1차 해충들이 풀에서 머물고 나무로 올라가지 않습니다. 농약을 주지 않아도 되는 것이지요.

또 새들도 과일보다는 벌레를 더 좋아 합니다. 그래서 벌레가 적정하게 있으면 새는 과일을 쪼지 않고, 벌레를 잡아먹게 됩니다. 이런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실천하는 것이 유기농이며, 자연과 모두가 더불어 사는 길이 아닐까요? 새도 싫다, 벌레도 싫다, 나만 배불리 먹겠다는 욕심이 사람까지도 죽인다는 생각입니다.

농사를 지으면서 깨달은 또 한 가지는 인간이 가장 위대한 것처럼 생각들 하지만 단세포 동물들이 잘 사는 것을 보면 오히려 '인간은 보잘것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농사는 그야말로 도를 닦는 심정이 아니면 할 수 없다는 것도 점점 더 크게 다가옵니다."

그들 부부는 유기농업은 안 된다는 잘못된 생각들을 버려주기를 바랍니다. 얼마든지 가능한 데도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어리석음을 버려달라고 강조합니다. 유기농업의 '유'자도 모르던 자기들도 해내지 않았느냐고 말입니다. 그럼으로써 모두가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만들자고 호소합니다.

주원농장에서의 김경석씨 부부와 무려 12시간 정도를 애기했지만 그것으로 우리의 이야기는 끝이 아니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예약합니다. 유기농을 하는 농민의 순수한 철학을 저희는 무한정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10월에 저희는 배를 따러 주원농장에 또 갑니다. 배를 수확하며, 그 보다 더 알찬 그분들의 철학을 수확하러 갈 것입니다.

a 배나무를 돌보는 장상희씨

배나무를 돌보는 장상희씨 ⓒ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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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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