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에서 정말 거창하게 장을 보다

나이 사십에 도전했던 백두대간 연속 종주이야기

등록 2005.08.17 10:44수정 2005.08.18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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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가는 버스에서 나물하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연세는 꽤 있어 보이는, 옆 자리에 앉아 "백두대간 하냐"고 묻는다. 놀란다. 평범하게 농사짓고 나물하시는 분인 줄 알았는데, 백두대간을 묻는 건 알고 있다는 뜻이다.

"어떻게 아시냐"고 되묻는다. 배낭 보고 알았고, 표정에서 백두대간 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한다. 그리고 대뜸 하시는 말씀이 백두대간에 쓰레기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종주하는 사람들 쓰레기를 너무 많이 버려 쓰레기 산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쓰레기 있는 곳에는 벌레도 많고 나물도 없다는 것이다.


부끄러웠다. 나도 버렸다. 무거우니까 버렸고 산에 내려가 버릴 수 없으니 버렸다. 변명도 못하고 있으려니, "젊은이는 그럴 사람 아닌 것 같으니 하는 말인데" 하시면서 말씀을 이으신다. 해마다 산으로 나물을 하러 가는데, 해마다 산이 변한다는 것이다. 나는 잘 모르겠는데 그 분은 산이 변하는 것까지 느끼는 분이다. 산을 사랑하는 분이다. 그분의 산 사랑의 깊이에 조금은 그 깊이를 느끼는 것처럼 생각했다.

그 분은 내 배낭보다 더 큰 산나물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내렸다. 젊은 아들이 좀 모자란다나, 늘 돌보아 주어야 하기 때문에 나이 먹고도 이렇게 일을 하신다는 그분의 약간은 굽은 등에 얹힌 나물 보따리가 슬퍼보였다. 거창까지는 사십여 분 갔다. 가는 길 내내 산과 산으로 둘러싸인 풍경이 낯설다. 산 위에서 산을 보다 산 아래서 산을 보니 산이 정말 낯선 공룡의 등뼈처럼 느껴진다. 산 아래서 산을 보니 두려운 마음이 생긴다.

버스에서 내내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저 삼봉은 방금 내가 걸었던 길이고, 저 봉우리는 저 봉우리는..."하면서 끊임없이 산을 생각한다. 산이 마치 살아있는 무언가 처럼 느껴진다. 산 모양만 보아도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진다. 낮고 둥그스름한 봉우리는 누이 같이 느껴지고 크고 뾰족한 산은 이 악다물고 덤비고 싶은 한 판 싸움의 대상으로 생각된다.

능선과 능선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그곳으로 난 길이 연상이 된다. 그 길을 내려선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백두대간을 끝내고 나면 저 모든 능선을 저 모든 산길을 걸어가고 싶다는 욕심, 강한 욕망이 든다.

거창에 도착한다. 도시는 생각보다 크다. 우선 여관에 배낭을 풀고 빨래를 했다. 오랜 시간 빨지 않아 냄새 나고 끈적끈적했던 옷들과 발바닥에 달라 붙을 만큼 절어 버린 양말들을 죄다 꺼내 빨래를 한다. 빨래비누가 없어 여관에 있는 세수비누 샴푸 다 동원해서 빨래를 한다. 빨래를 널고 샤워하고 오래간만에 머리 곱게 빗고, 거창 시내 나들이 간다. 따뜻한 물로 빨래하고, 씻고 나니 기분이 무어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좋다.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저녁 밥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는다. 식당이 여러군데 눈에 띈다. 중국집, 찌개집, 삼겹살과 갈비집. 어딜 가야할지 선택할 수 없다. 가장 먹고 싶은 걸 생각하니 하나 둘이 아니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식욕과 입맛이 한꺼번에 되살아나는 것 같다. 선택하려면 결정해야 한다. 산에서 가장 못 먹었던 것을 먹기로 한다. 고기로 결정하고 정육점과 함께 운영하는 식당에 갔다.

삼겹살을 시켜놓고 밑반찬으로 나온 김치, 간장에 버무린 일종의 야채 샐러드, 계란말이, 순두부...... 아, 얼마나 황홀한 식사이던가. 고기를 굽기도 전에 밑반찬을 다 먹어 치운다. 그리고 미안한 얼굴로 다시 또 달란다. 종업원이 배시시 웃어 준다. 내가 먹는 모습이 신기했나 보다. 삼겹살이 채 익기도 전에 먹어치운다. 얼마나 볼이 터져라 요란하게 먹었는지, 나중에는 종업원과 손님들이 힐끔힐끔 보다, 아예 내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구경한다.


입안 가득히 담긴 쌈과 고기들이 드러나 보이는데도 히이~하고 웃어주고 다시 먹는 일에 열중한다. 혼자서 삼 인분을 먹었으니 사람들이 구경할 만할 것이다. 어느 정도 고기로 배가 채워지자, 종업원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고백한다. 사실 산에서 지금 내려왔다고, 한 일주일 넘게 산에서만 지냈더니 고기가 너무 먹고 싶어 이랬다고.

거창 시내를 돌아다닌다. 재래시장이 정겹다. 가장 필요한 것부터 사기로 했다. 건전지, 쌀, 부탄가스, 산에서 먹을 각종 부식과 일회용 소시지 묶음, 등등 무지 샀다. 비닐만 몇 개인지 모른다. 그리고 여관 들어가기 전 과일 파는 노점에서 참외를 잔뜩 샀다. 물론 수박도 샀다.

여관에 앉아 오랜만에 뉴스도 보면서 수박을 쪼개 먹는다. 이미 배가 불렀는데도 수박을 먹는다. 목구멍까지 수박물이 올라와도 먹는다. 먹는 일에 이렇게 목숨걸 줄 몰랐다는 듯 숨쉬기조차 힘든데 수박 먹은 다음 참외를 깍아 먹는다. 남겨 두었다 내일 먹어도 되는데, 그 자리에 앉아 꾸역꾸역 먹는다. 알 수 없지만 좌우간 계속 먹는다. 다 먹고 나니 배가 임신 8~9개월쯤 된듯 땡땡 하게 불어 있었다. 거울을 보니 우습다. 그래도 조금 있다가 오늘 사온 것 중 맛있어 보이는 것부터 또 먹겠다 생각한다.

여관방에 앉아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사온 물건들의 포장을 다 뜯어 버린다. 쌀을 조금씩 파는 데가 없어 욕심도 조금 섞어 3kg짜리 청결미를 샀다. 물만 부으면 밥을 할 수 있는 쌀을 샀다. 배낭에 쌀을 넣으니 무게가 엄청나다. 하지만 쌀은 매일 먹어치우는 것이기 때문에 처음 배낭은 무거워도 나중으로 갈수록 가벼워질 거라는 위로를 하면서 쌀을 배낭에 넣는다.

한편으로는 미련한 놈이라 자책하면서 말이다. 초콜릿과 사탕도 낱개로 된 소시지는 배낭 옆 주머니에 우겨 넣는다. 김치도 조금 사서 배낭에 넣었고, 고추장도 다시 사서 채워 넣었다. 육포와 말린 대구포도 넣었다. 대구포는 그냥 먹기도 하고 국 끓일 때 넣으려고 샀다. 가능하면 말린 것, 가벼운 것을 산다 했지만 그렇게 되질 않았다.

배낭은 백두대간 처음 출발할 때 보다 무거워졌다. 들어 보았다. 번쩍 들리는 게 신기했다. 그동안 내가 배낭 무게에 적응했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먹고도 많이 남은 참외를 상하지 않게 소중하게 배낭 제일 윗부분에 채워 넣고, 초코파이는 배낭 맨 위에 올려 놓고 끈으로 묶었다.

한 마디로 거창에서 작은 배낭에 매우 '거창'하게 음식이란 음식은 죄다 사 넣었다. 배낭을 보면서 "저걸 저렇게 무거운 걸 지고 어떻게 산에 갈까"라는 걱정보다 산에서 저렇게 맛있는 걸 먹는다는 생각이 앞서 흐뭇했다. 내일 산에 오르는 걸음은 가벼울 것이라는 기대를 하며 잠이 든다. 잠들기 전에 다시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한다. 다시는 못할 목욕처럼 온몸의 구석구석을 다 닦는다.

다시 소사재에 도착한 것은 12시가 조금 안되어서다. 편안한 잠자리였는데도, 산에서의 시원함이 없이 답답한 벽 안에서 자려니 잠이 오질 않아 밤새 뒤척이다 겨우 새벽녘에 잠든게 늦잠을 잤다. 늦은 아침을 버스 터미널 옆 해장국집에서 해결하고 도착한 것이다.

소사재에서부터 시작해서 대덕산을 오른다. 흙이 덮인 육산이다. 길은 뚜렷했고 1250봉을 지나면서 어제 걸었던 삼봉산이 보인다. 느낌이 이상하다. 늘 겪는 일이지만 걷다가 뒤돌아 보면 어느새 이만큼 왔는지 스스로 놀랄 때가 있다. 그래서 걸음이란 행위, 아니 걸음이라는 가장 원시적인 교통수단에 대해 감탄할 때가 많이 있었다.

옛날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던 조상의 걸음도 생각하게 되고, 버스 값 아기기 위해 노량진에서 봉천동가지 걸었다는 어머니의 걸음도 고철을 주워 생계를 이으려 흑석동에서 여의도까지 갔다가 다시 영등포로 해서 매일 다니셨다는 젊은 시절의 아버지의 고단한 걸음도 생각했다. 오르막길이었고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땀과 눈물이 섞여 흐른다.

1250봉을 넘어 대덕산으로 가는 길은 내리막과 오르막의 반복이다. 이미 시간은 3시를 넘어가고 있다. 오늘은 덕산재까지만 가기로 한다. 거기서 텐트 치고 자기로 한다. 그곳에는 물이 있을 듯하다.

길은 늘 그랬다. 확실한 것은 없다. 일단 그럴 것이다 생각하고 가는 것이다. 그리고 걸어가면 그 자리를 걸어서 지나고 나면 확실해지는 것이다. 물이 어디 있고 길 가에 무엇이 있었고 길은 어떤 모양인지 험한지 낮은지 편한지 걸어가기 전엔 확인할 수 없지만 걸어가고 나면 오래전부터 친하게 지냈던 친구처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길처럼 명확하게 알아 버리는 것이다.

그게 백두대간 길이었다. 걸어야만 명확해지는 길. 걷기 전엔 언제나 처럼 망설여야하고 있는지 없는지 조차 알 수 없는 길. 걸어야만 알 수 있는 길, 그래서 나는 걷고 있는 중이다.

덧붙이는 글 | 2004년 5월 16일부터 7월 4일까지 백두대간 무지원 단독 종주 이야기

덧붙이는 글 2004년 5월 16일부터 7월 4일까지 백두대간 무지원 단독 종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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