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위한 최적화된 '의학 가이드' 나왔다

서민의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등록 2005.08.19 20:02수정 2005.08.20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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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은 궁금한 것이 생기면 ‘인터넷’에 물어봐야 겠다고 말한다. 하기는 아이만 그러하겠는가.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두가 궁금증이 생기면 인터넷에서 답을 찾고 있다. 직접 전문가를 찾거나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았다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로 치부되고 있는 시대가 오늘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대는 갈수록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전문가를 원하게 됐다. 인터넷 덕분에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가 만천하에 공개됐지만 이것은 오히려 ‘고급’ 정보에 대한 접근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고급 정보뿐 아니라 제대로 된 정보도 마찬가지다. 가령 지나치게 설사가 심한데 병원에 가기는 창피하고 해서 인터넷에서 치료법을 얻으려고 정보검색을 했다고 해보자. 그럼 어떻게 되는가?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엄청나게 거대한 정보들이 서로가 진짜라고 우기며 ‘홍수’처럼 등장한다. 어느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 선택할 수 없는 건 기본이고 심지어 서로 상충된 의견들이 서로 진짜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홍수에 휩쓸려가는 것이다. 그래서 구원해 줄 전문가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a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표지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표지 ⓒ 다밋

그런데 전문가에도 조건이 있다. 과거처럼 핵심을 짚어주되, 과거와 달리 권위적이지 않으며 보는 눈을 대중에게 맞춰주는 그런 전문가가 필요하다. 물론 이런 전문가는 흔하지 않다. 그러나 등장한다면 대중을 기쁘게 해줄 수 있을 텐데 최근에 그런 이가 또 한 명 등장해 화제다. 바로 의사면허 46663이자 딴지일보 기자인 기생충 박사 서민이 그 주인공이다.

그의 신작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은 의학가이드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의학에 관한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기본적으로 ‘환자가 알면 좋은 것들’로 시작해 감기와 독감예방, 설사와 변비, 입 냄새와 발 냄새, 채식과 육식, 포경수술과 제왕절개, 성장클리닉과 비타민 등 저자는 책을 통해 소수가 아닌 다수가 고민을 해봤으며 앞으로도 고민하게 될 내용들을 두루 짚어주고 있다.

특히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이 도움을 줄 수 있는 영역들은 사람들이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알 수 없어 고민하는 것들’에 대한 해석이다. 포경수술과 제왕절개 등이 대표적인 경우일 텐데 지은이의 해석은 명쾌하다. 사실 이제껏 언론을 통해 의사들이 이것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하곤 하는데 그것들은 대부분 두루뭉술했다. 왜 그럴까? 의사들의 자금줄에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헷갈리게 하는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지은이는 다르다.

그 역시 의사지만 지은이는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에서 의사를 위한 의사가 아니라 사람을 위한 의사로 분하고 있다. 포경수술의 경우에도 그것으로 누가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제왕절개도 그렇다. 지은이는 사람들이 짐작하던 것들, 예컨대 의사들의 상업적 목적과 같은 음지에 존재하는 것들까지 양지로 끌어낸다. 같은 의사들이 보면 결코 유쾌할 리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지은이는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에서 이 같은 태도를 버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을 보고 있노라면 '내 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의사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놀라운 일이다. 과연 어느 의사가 이런 생각을 들게 만들었던가?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해 욕할 수도 있는, 권위적이나 독선적이지 않고 대중의 눈높이로 세상을 보고 병을 볼 줄 아는 전문가가 있음을 알려준다.

더불어 책은 의학가이드라는 것이 꼭 병이 생겼을 때만 찾는 것이 아니라 유쾌한 소설책을 보듯이 볼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지식을 얻을 수 있게 해준다는 것도 알려준다. 실상 이것이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이 눈에 띄게 하는 두 번째 이유이기도 한데 이 책은 지은이의 글 솜씨 때문에 의학가이드이면서도 그 정체를 꼭꼭 숨기고 있다.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에서 보이는 지은이의 글 솜씨는 마치 성석제 소설을 보는 듯하다. 이야기가 이야기를 부르고, 그 이야기들의 행렬이 횡설수설하는 것처럼 춤을 추어 정신을 쏙 빼놓지만 결코 핵심은 비껴가지 않는다.

가령 자신이 사각팬티를 입다가 삼각팬티를 입었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콘돔이야기를 꺼내 놓는다거나 설사 때문에 고생하던 경험담을 통해 변비와 설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어 놓고, 달콤한 키스를 운운하며 입 냄새의 원인과 대책을 이야기하는데 그 솜씨가 일품이다. 덕분에 의학가이드로서 반드시 예방해야 하기 위해 외워야한다는 그런 류의 의무감을 들게 하는 대신 ‘알짜’ 정보를 흥미롭고 유쾌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얻게 해준다.

대중의 눈높이에 시선을 맞추고, 시선을 맞춘 정도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대중이 시선을 놓지 않도록 유쾌함을 빌려온 의학가이드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는 한바탕 웃다보면 끝난다. 물론 그냥 끝나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된 건강 상식으로 무장한 채 나올 수 있다.

이것은 결코 흔하게 볼 수 있는 의학가이드가 아니다. 그래서 더욱 반갑다. 특히 오늘의 시대가 기대하는 전문가가 내놓을 수 있는 대중을 위한 최적화된 의학가이드라는 그렇다. 이 책 한권이면 변비나 설사, 정력제나 비타민 때문에 인터넷에서 정보의 홍수에 떠밀려갈 일은 없을 터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도서정보 사이트 '리더스가이드(http://www.readersguide.co.kr)'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도서정보 사이트 '리더스가이드(http://www.readersguide.co.kr)'에도 실렸습니다.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서민 지음,
다밋,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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