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보다는 처방을 내리는 책

서민의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을 읽고서

등록 2005.08.25 16:40수정 2005.08.26 12:48
0
원고료로 응원
내가 아는 친구는 정말 말을 잘 한다. 단 둘이 있을 때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청산유수처럼 거침이 없다. 발음이나 받침도 틀리지 않고 정확하다. 그가 하는 말을 듣고 있는 나나 친구들은 그저 떡하니 입을 벌리고 있어야 한다. 절로 감탄사가 나오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그는 그렇게 말을 잘 했을까. 내가 그 친구한테 언젠가 물은 적이 있는데, 그가 한 대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어렸을 때는 말만 하려고만 하면 발부터 떨어야 했고, 당연히 말도 멈칫멈칫했다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친구들 사이에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는데, 그것 때문에 피나는 노력을 했고, 지금은 어엿한 말솜씨도 자랑하게 됐다고 한다.


a 책 겉그림

책 겉그림 ⓒ 리브로

어렸을 때는 흠이 되는 것 같지만 커가면서는 아무렇지도 않는 것, 그것을 의학용어로는 '틱(Tic)'이라고 하는 것 같다. 그런 말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겠지만, 그런 것들은 우리 곁에 너무나 흔하다. 아이들이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하다든지, 괜히 얼굴을 긁적인다든지, 말을 하려면 먼저 한쪽 다리를 한 두 차례 움직여야 한다든지, 눈을 깜빡거리거나 크르렁 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들이다.

그게 병이 아닌데도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들은 대부분 과민반응을 한다. 병원에 데리고 가서 전문가 진단을 받아 보고, 괜한 약물까지 먹인다. 게다가 먹기 싫어하는 아이를 꼼짝달싹 못하게 하고서 입을 벌린 채 약을 쑤셔 넣기까지 한다. 그 때문에 낫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 대부분 한 해 두 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것들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약물이 아니라 자연발생적으로 그냥 살다 보니까 낫게 되는 것이다.

그렇듯 병이 아닌데도 병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경우라든지, 육식은 하지 않고 채식만 하는 것이 과연 옳은 건강법인지, 위염이나 위궤양을 일으키는 것이 꼭 '헬리코박터'때문에 그런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해 준 책이 나왔다. 의사면허 46663을 가지고 있는 서민의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다밋.2005)이 그것이다.

"상업적 목적에 의해 위협이 과대평가된 것이 어디 헬리코박터 뿐일까. 세포의 필수적인 성분인 콜레스테롤은 악의 화신으로 인식되고, 육식은 요절의 지름길로 여겨진다. 암 예방에 좋다는 음식들이 난무하고, 비타민은 안 먹으면 큰일 날 것처럼 선전되고 있다. 이런 혼란 속에서 건강한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 보자는 것, 그게 이 책을 쓴 목적이다."(책을 펴내며)

이 책에서 의사 서민씨는 세 가지 틀로 재밌는 의료 이야기를 엮어내는데, 병원과 의사에 관한 수요와 공급 이야기가 그 첫째이고, 둘째는 감추고 싶은 질환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 셋째는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으로 건강하게 사는 길인지에 대한 것이다.


우선 병원과 의사에 관한 수요와 공급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요즘 유행하는 병원과 어떤 분야에 전문의가 몰리고 있는지를 밝혀주고, 그 밑바닥에는 아무리 의사라 할지라도 '돈'과 '취직'과 '3D'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는 실제적인 이야기도 덧붙여 준다.

아울러 증상에 따라 어떤 병원을 찾아가야 할지도 기록해 주고 있고, 콜레스테롤이나 골다공증 같은 증세는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것들인데도 그것에 대해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은 제약회사와 의사 그리고 언론 등 '광고 놀이'에 춤추는 격이 될 수 있다고 꼬집기도 한다.


음지 질환, 이른바 감추고 싶은 질환에 대한 이야기가 그 둘째인데, 거기에는 참 재미난 이야기들이 꽉 들어 차 있다. '방귀'를 비롯해, '발 냄새', '입 냄새', '코 골이', '탈모', '대머리', '침 흘리기', '이 갈기' 등 숨기고 싶은 질환들에 대한 이야기가 잔뜩 담겨 있다.

그 가운데 '위 대장 반사'는 나 자신과 관련된 일이라 그런지 정말로 꼼꼼히 그리고 두 번 세 번 더 읽게 됐다. '위 대장 반사'란 아침에 일어나서 변을 한 번 보고, 아침을 먹고 또 보고, 점심을 먹고 또 보고, 저녁을 먹고 또 보는, 그리고 하루 나절 동안 다른 무엇을 좀 많이 먹었다면 곧바로 변을 봐야 하는 증상이다.

나로서는 그게 수치스러운데다가 생활에서도 불편하다. 그런데 이 책을 쓴 서민씨는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옮기거나 대물림하는 병이 아니기 때문에 수치스럽게 여길 게 아니라고 한다. 더욱이 자주 변을 보는 것이 정작 자신에게는 불편할 수 있겠지만, 변을 보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을 생각한다면 그 또한 고마운 일이 아니겠느냐며 귀띔해 준다.

그리고 이 책 마지막 부분에서는 어떻게 사는 것인 진정 건강하게 사는 길인지 밝혀 주고 있다. 그동안 많은 논란을 불러 왔던 채식만 하는 게 좋은지 육식도 곁들이는 게 좋은 것인지를 비롯해, 포경수술을 하는 게 좋은지 하지 않는 게 좋은지, 비타민 C를 꼭 먹어야 하는지 먹지 않아도 괜찮은지 등을 알려준다. 그 외 정력제에서 뱀이나 장어보다도 가장 좋은 것은 '우리 것 두엄'이라는 사실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곁들여 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비타민을 먹고야 말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이것만은 알아두자. 당신이 먹는 비타민 한 알 한 알은 어쩌면 당신 건강에 해로울 수 있으며, 안 그래도 부자인 비타민 제조 회사들을 더 부자로 만들어 준다는 것을."(284쪽)

건강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먹고 또 뭐든지 하겠다는 요즘 세상이다. 그걸 말릴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건강을 고집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이야기를 늘어놓아도,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법이다. 그 약이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해도, 그 약이 오히려 건강을 해친다고 해도 결코 통하지 않는다.

더욱이 약보다는 잘 먹고 잘 자고, 적당히 걷고 또 운동도 하면서 맘 편히 살아간다면 그보다 더 좋은 건강이 어디 있겠냐며 이야기를 해도, 그 사람에겐 결코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변명과 같은 이야기가 참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뭐든지 먹고 뭐든지 애쓰면서 살았는데, 그게 잘못된 일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 변명이 참된 약이었음을 나중에서야 깨닫지 않겠는가. 그런 뜻에서 이 책은 변명하는 것 같지만 꼭 필요한 처방전 같은 책이다.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서민 지음,
다밋, 2005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2. 2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3. 3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4. 4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5. 5 "이러다 임오군란 일어나겠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통령 "이러다 임오군란 일어나겠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통령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