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여태 무얼 보고 절했나"

충남 서산 해미향교에서 유가전통에 따른 초례 열려

등록 2005.08.22 16:27수정 2005.08.23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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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식(舊式)결혼식으로 불리는 전통혼례가 충남 서산 해미향교(전교 이현웅)에서 열렸다.


남들이 다하는 신식(新式)을 마다하고 나이 든 어르신들조차 절차가 복잡하고 고리타분, 번잡스럽다며 손을 휘휘 내 젓는 구식으로 혼례를 치른 신랑 신부는 김용근씨(30·충남 서산시 석림동)와 심윤정씨(25·충북 단양군)다.

친구의 소개로 만난 이들은 장래를 다짐한 다음 결혼식은 전통혼례로 올리자고 약속했고 그 약속은 해미향교 측의 도움으로 이뤄지게 됐다. 택일(擇日)도 향교에서 잡아주었다.

이현웅 전교는 "젊은 사람들이 우리 것을 아끼는 마음이 가상해 향교에서 유가(儒家)의 예법으로 혼례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목안(나무 기러기)에 절을 하는 신랑
목안(나무 기러기)에 절을 하는 신랑안서순
초례청에 들어선 신랑이 신부의 얼굴을 보지않기 위해 초례상을 등지고  동쪽으로 서있다
초례청에 들어선 신랑이 신부의 얼굴을 보지않기 위해 초례상을 등지고 동쪽으로 서있다안서순

혼례가 열린 22일 오후 2시 향교 대문 옆으로 돗자리가 깔리고 전안상(奠雁床)이 놓여졌다. 우리 전통혼례는 초례(醮禮)라 부르며 먼저 신랑이 나무기러기에게 절을 하는 전안례(奠雁禮)를 시작으로 신랑 신부가 서로에게 절을 하는 교배례(交拜禮)와 신랑신부가 백년가약을 다짐하고 위미에서 서로 술을 나눠 마시는 합근례(合巹禮)로 이어지며 모든 절차는 집사의 홀기(笏記)에 따라 진행된다.

집전을 하는 집사가 초례홀기(醮禮笏記)를 부르기 시작했다.
"신랑을 밖으로 데리고 나오시오."
사모관대를 차려입고 쓴 신랑이 싱글거리며 문밖으로 나온다.
"신랑은 머리 숙여 절하시오."
신랑은 연신 고개를 꾸벅거렸다.

"이런 고개만 까닥거리지 말고 팔을 모으고 앞으로 내면서 해야지."
집사의 지적에 따라 신랑은 그대로 하며 돗자리위에 올라섰다.
"신랑은 존안상 앞으로 나오세요."
신랑이 상 앞으로 다가섰다.
"신랑에게 목안(木雁)을 주시오."
홀기에 목안을 받아든 신랑이 무릎을 꿇고 목안을 상위에 내려놓고 엎드렸다 일어나서 뒤로 세 발짝 물러난 후 두 번 절했다.

이때 신부댁에서 온 사람이 신랑이 두 번째 절을 하는 사이에 목안을 가져갔다(집사가 미리 시킨다). 절을 하고 나서 전안상위에 있던 목안이 없어진 것에 어리둥절해 하는 신랑에게 홀기를 부르던 집사가 "이 사람 어디다 대고 절을 한게야"하며 다소 핀잔 섞인 말을 하자 주변에 둘러섰던 사람들이 웃어대었다.


몸을 정갈히 한다는 의미에서 신랑이 깨끗한 물에 손을 닦고 있다.
몸을 정갈히 한다는 의미에서 신랑이 깨끗한 물에 손을 닦고 있다.안서순
신랑에게 재배를 하는 신부
신랑에게 재배를 하는 신부안서순

전안례다. 엄숙한 예식이지만 즐거운 날이므로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서하는 것일 게다. 싱글벙글하며 걷는 신랑에게 뒤따라가던 집사가 '계속에서 선 절을 하며 가라'고 주의를 준다.
초례청 밖에는 수탉과 암탉이 새끼줄에 날개와 발이 묶여 바동거리고 있다.

닭은 다산의 상징이고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기운이 있어 초례청에 등장하지만 초례상의 좌우로 떨어진 채 장정들에게 예식이 끝날 때 까지 잡혀 있다가 놓여진다. 신랑이 초례청에 들어서자 집사는 신랑에게 동쪽을 향해 서라고 이른다. 이때 신랑에게 동쪽을 향해 서라고 하는 것은 신부의 얼굴을 보지 못하게 하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그러자 구경꾼 중 한사람이 "뭘 이제 와서 내외 헐게 뭐여, 연애하면서 날마다 봤을 텐디" 하자 둘러섰던 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했다.
"유모는 신부를 초례청으로 인도하시오."
다시 엄숙한 집사의 홀기가 떨어지고 족두리에 화려한 원삼을 입은 신부가 시모(侍姆)의 부축을 받으며 초례청에 들어섰다.

"신랑은 신부를 향해 서시오"라는 집사의 홀기에 따라 비로소 신랑은 초례상과 마주선다. "신랑과 신부는 손을 닦으시오"라는 홀기에 따라 손을 닦은 신랑신부는 다시 초례상을 향해 서고 이때 신부는 원삼소매를 내리고 신랑을 마주보게 한다. 이때 신랑, 신부는 처음 배필의 얼굴을 대면하게 된다.

초례상에는 상의 좌우로 큰 소주병에 꽂은 대나무와 사철나무 가지와 촛대 한 쌍, 생밤, 대추, 사과, 배 등이 차려졌다. 다시 집사의 홀기가 이어졌다.

"신랑은 무릎을 꿇고 안으시오." 신랑이 무릎을 꿇고 앉자 "신부는 먼저 신랑에게 두 번 절하시요"하는 홀기에 따라 신부는 시모의 부축을 받으며 두 번 절했다. 이어 이번에는 신부가 무릎을 꿇고 앉아서 신랑으로부터 절 한번을 받았다. 또 다시 신랑은 무릎을 꿇고 앉고 신부는 두 번 절하고 신랑은 다시 답례로 절 한번을 했다. 이렇게 해서 교배례가 끝났다.

신부에게 답배를 하는 신랑
신부에게 답배를 하는 신랑안서순
초례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신랑 신부
초례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신랑 신부안서순

이어 신랑 신부 앞에 잔이 올려진 조그만 상이 놓여지고 집사는 각기상위에 놓인 잔에 술을 따르라고 홀기를 불렀다. 신랑과 신부는 술잔을 상위에 놓고 집사는 다시 신랑을 도와주는 집사와 신부를 부축하고 있는 시모에게 표주박에 술을 따르라고 홀기를 한다.

이때 신랑측 집사와 신부측의 시모는 오른팔에 각기 청실과 홍실을 감고 술을 따른다. 표주박에 따라진 술은 신랑 신부에게 먹인다.

"술 남기지 말고 다 먹여."
"신랑 신부 둘 다 술 잘 허너먼."

둘러선 하객들이 또 한마디씩의 말에 초례청은 다시 웃음소리로 가득 찬다. 초례는 엄숙한 듯 하면서도 부드러웠고 신명과 즐거움이 한데 어우러졌다. 신랑 신부의 교배에 표주박을 이용하는 것은 표주박 두 쪽이 합쳐져야 하나의 표주박이 되듯 신랑신부도 각각반쪽이나 표주박처럼 합쳐져 하나가 되라는 뜻에서 라고 한다.

혼례식의 마지막 순서인 합근례다. 합근례가 끝나고 나서 장정들에게 잡혀있던 수탉과 암탉이 놓여졌다.
혼례는 '신랑신부에게 홍복을 내려달라'는 '고천문(告天文)'을 끝으로 50여 분만에 끝이 났다. 이날 안무춘 해미향교 장의(掌議)는 초례가 시작되고 나서 끝이 날 때 까지 하객들에게 '홀기'와 초례과정을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해 이해를 도왔다.

혼례를 마친 다음 신랑 김용근씨와 신부 심윤정씨은 "날씨가 더워 사모관대와 원삼을 입고 있느라 고생을 했지만 의미 있는 결혼식을 해 즐겁고 행복하다"며 "결혼을 앞둔 친구들에게 적극 권하고 다닐 예정"이라며 행복 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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