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직 국정원장 4시간 면담, 무슨 말 오갔나

전직 원장들 강한 유감 표명... 국정원, 전직들 언론접촉 말려

등록 2005.08.23 13:52수정 2005.08.23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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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김승규 국정원장, 이종찬·임동원·신건 전 국정원장. 네명은 22일 국정원에서 만나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DJ 정부 하의 불법도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왼쪽부터 김승규 국정원장, 이종찬·임동원·신건 전 국정원장. 네명은 22일 국정원에서 만나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DJ 정부 하의 불법도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오마이뉴스

이종찬·임동원·신건 전 국정원장은 어제(22일) 오후 국가정보원에서 김승규 국정원장을 만나 "지난 5일 국정원이 명확한 증거자료도 없이 서둘러 졸속으로 불법감청을 고백해 파문이 생겼다"며 강한 유감을 표명한 것으로 복수의 전현직 국정원 관계자들에 의해 확인됐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 국정원장을 지낸 이들은 또한 "합법감청과 불법도청을 명백히 구분하지 못한 것 아니냐"면서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전직 국정원장들이 국정원을 방문해 현직 원장에게 유감을 표명한 것은 국정원 역사에서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어제 국정원 관계자가 "김승규 원장이 전직 원장들의 요청으로 오늘 오후 시내 모처에서 만났으며 김 원장은 이 자리에서 지난 5일 불법감청을 고백하게 된 취지와 배경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다"다고 밝힌 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이어서 전직 국정원장들의 대응이 주목된다.

'시내 모처'가 아닌 국정원... 4시간동안 만나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23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전직 국정원들과의 면담내용에 대해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시내 모처에서 만나 배경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다'고 언론에 비공식적으로 밝혔으나, 실제로는 전직 원장들을 국정원으로 초청해 4시간 동안 만났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당초에는 면담시간을 오후 3시부터 2시간 정도로 예상했으나 예상과 달리 지난 5일 국정원 발표에 대한 전직 원장들의 질의와 추궁이 쏟아지는 바람에 면담 시간이 길어져 김만복 기조실장이 주최한 만찬으로 이어졌다"고 밝혀, 전직 원장들이 국정원측의 설명을 듣고 양해했다는 국정원 해명과 달리 국정원의 5일 발표에 대한 불신과 의혹이 해소되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국정원의 또다른 관계자도 "오후 3시 면담이었는데 전직 원장들이 '궁금'해하는 것이 많다보니 질문이 많아졌고 그에 따라 실무자들의 설명도 길어져 면담 시간이 길어지는 바람에 예정에 없던 만찬까지 이어졌다"고 밝혔다.

또한 김승규 원장은 이날 4시간 동안 이어진 면담 및 만찬에 처음부터 참석하지는 않고 국정원 서대원 1차장(해외)·이상업 2차장(국내)과 김만복 기조실장이 설명하는 중간에 참석해 전직 원장들과 대화를 나누고 50여분 뒤에 다시 자리를 뜬 것으로 알려졌다.


김승규 원장은 이날 시내 모처에서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오충일 위원장) 위원들과의 만찬 약속이 있어 거기에 참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기조실장, 1·2차장 참석

따라서 전·현직 국정원장의 '이례적인 면담'을 복기하면, 우선 국정원 1·2차장과 기조실장이 전직 원장들에게 30여분 동안 국정원의 5일 발표에 대한 배경설명을 한 뒤에, 김 원장이 참석해 간부들 배석하에 1시간 동안 면담시간을 가졌고, 그래도 전직 원장들의 의구심이 해소되지 않자 기조실장 주도로 실무자들까지 불러서 2시간 반 동안 거듭 해명을 하면서 저녁 7시 무렵까지 만찬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의 국정원 관계자는 이와 관련 "전직 원장들이 가진 가장 큰 불만은 '왜 이 시점에 부실한 조사결과를 공개했느냐'는 것이었고 당연히 질문과 답변도 거기에 집중되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정원 관계자도 "국정원측이 어제 '전직 원장들이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도 충분히 대화를 나누고 원장들이 양해를 했다'고 설명한 것과 달리 전직 원장들이 끊임없이 질문을 해서 해명시간이 엄청 길어졌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쪽은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8일 중앙언론사 정치부장단 오찬에서 해명한 대로 '정권 차원'의 도청이 아닌 '실무 차원'의 불법감청이 일부 있었음을 고백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측은 또 5일 발표에 대해서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전직 원장들은 불법 도감청 근절을 위한 실질적 조치를 많이 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하며 이해를 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국정원측은 천용택 전 원장이 미림팀 테이프를 회수하는 과정에서 자신과 관련된 테이프 2개를 전달받는 등 직접 개입해 검찰 출두가 불가피하지만, 천 원장을 제외한 전직 원장 3명은 검찰에 출두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국정원이 천용택 전 원장에 대해서는 이미 검찰에 출두해 과거 직무 사항에 대해 진술할 수 있도록 사전허가 조처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전직 원장들의 가장 큰 불만, '왜?'

그러나 전직 원장들은 이같은 해명만으로는 '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불법 도감청이 있었다'는 오해를 불식시킬 수 없다고 판단해, 김 원장에게 국정원법에 따른 언론접촉 허가를 요구했으나 국정원측은 이를 만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행 국정원 직원법은 '전직 국정원 직원이 언론을 접촉하거나 검찰에 출두해 과거 직무와 관련된 사항을 진술할 때는 현 국정원장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김승규 원장이 지난 5일 국정원이 자체개발한 이동식 휴대전화 감청장비인 '카스'의 제원과 성능 및 '사용후기'까지 상세히 공개한 것 자체가 국정원 직원법 위반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어 이 또한 쟁점으로 남아 있다.

따라서 전직 원장들이 향후 어떤 입장을 취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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