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었다, 왜 '출산 애국'하지 않느냐고

[인터뷰] 출산율 1.16%, 세계 꼴찌되던 날 만난 오마이뉴스 직원들

등록 2005.08.25 14:38수정 2005.08.26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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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통계청에서 올해 출산율이 1.16명으로 OECD 국가 중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국가경쟁력에 심각한 타격을 준다고 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사람들을 직접 만나 얘기를 들어보려 했습니다. 그러나 멀리 갈 것이 없었습니다. <오마이뉴스> 직원들 역시 '결혼'과 '출산'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편집자주>
취재: 강이종행 안윤학 하성태 기자

"사회가 나에게 시간과 돈을 보장하면 결혼도 하고 애도 낳겠다."

비혼인 한 여기자의 농담 섞인 말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가시'가 담겨 있다. 옛날같으면 벌써 만혼을 넘긴 30대 중반의 나이지만 바쁜 일상 때문에 결혼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부 기자인 그는 "2년 뒤면 대선인데 지금부터 결혼 준비를 한다고 해도 한참 바쁠 때 결혼과 출산이 겹치게 될 것"이라며 "기자로서 이 기간이 고비일 수 있는데 출산 때문에 공백을 가진다면 재복귀할 수 있을까라는 공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주변에서 보면, 남자와는 다르게 여자들이 결혼에 관심이 없다"며 "결혼이 주는 이익이 줄어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직장 여성일수록 결혼은 2·3 순위로 미뤄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a 통계청이 24일 발표한 <2004년 출생ㆍ사망 통계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합계 출산율은 1.16명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24일 발표한 <2004년 출생ㆍ사망 통계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합계 출산율은 1.16명으로 나타났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결혼 안 하는 사람들] "정부가 아이낳게 해준다면야..."

80여명의 <오마이뉴스> 구성원들 중에는 '출산율' 평균치를 떨어뜨리는 사람들이 많다. 대체로 젊기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았을 뿐더러 이른바 '혼기'를 지나고도 결혼하지 않은 사람, 결혼을 했어도 자녀를 두지 않았거나 기껏해야 1명만 낳은 구성원이 대부분이다.


24일 오전 통계청이 발표한 '출산율 1.16%, 세계 꼴찌'는 일종의 쇼크였다. 이제 "출산은 애국이다"는 말이 나올 정도인데, 그렇다면 대한민국 성인들은 왜 '출산애국'을 하지 않을까? 25일 10여명의 <오마이뉴스> 식구들과 이야기를 나눠봤다.

비혼인 A(37·여)씨는 "현재 생활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결혼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정부가 아이를 키워준다면 결혼도 하고 열 명이라도 아이를 낳겠다"면서 웃었다. 사회구조적으로 결혼과 출산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


그는 "아이를 가진 친구들 중에 일과 양육을 병행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출산율을 여성 개인과 가정의 책임으로 돌리는 게 더욱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세계 최저 출산율'은 결국 사회구조의 문제임을 거듭 강조했다.

올해 28세인 비혼남성 B씨는 "앞으로 노동인구가 많이 필요하지 않은 산업구조가 될 것이기 때문에 출산율 저하가 국가경쟁력 저하로 직접 연결되지 않을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한 아이만 낳은 사람들] "하나도 힘든데 둘은 엄두 안나"

고1짜리 아들 1명만 둔 C(46·여)씨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아이 키우기가 힘들었다"며 "그 시기에는 아이 하나 낳기가 유행이었다"고 덧붙였다.

후회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그는 오히려 "한 아이에게 관심과 사랑을 온전히 기울일 수 있었다"고 강조했지만 "그러나 아이 입장에서 보면 형제가 없어 외로울 것 같아 안타깝고 미안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출산율 저하 이유에 대해서는 역시 "출산 뒤 여성이 맘 편하게 사회생활을 하기 어렵기 때문인 것 같다"며 "사회구조적인 보완 없이 여성들과 단순한 출산율만 문제 삼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결혼 4년만에 딸을 낳은 D(31·남)씨는 "다시 사회생활을 준비하는 아내를 위해 올해 초 육아휴직을 해야만 했다"며 "아이가 한 명 있어도 부부 중 한 명이 온전히 24시간을 바쳐야 하는데 아이를 더 낳는다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이 안 낳는 사람들] "내 인생 의미 찾는 것도 중요"

아예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결혼 5년차 E(35·남)씨는 "아이를 안 낳고 사는 것도 좋은 삶"이라며 "자기 인생의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꼭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생각 자체도 문제가 있다는 것. 그러나 그는 "가끔씩 주변 사람들 시선 때문에 고민도 되고 흔들린다"고 말했다.

역시 결혼한지 5년 됐는데도 아이를 낳지 않는 F(37·남)씨는 "일단 아이를 낳으면 교육비 등을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출산 계획을 갖지 않았다"며 "문제는 부부 사이보다 양가 부모님들과의 갈등"이라고 밝혔다. 그의 경우 부인이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출산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는 "대부분 출산을 꺼려하는 부부들은 가정적인 문제라기보다 역시 사회구조적으로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출산율 저하 원인을 분석했다.

올해 4월에 결혼한 G(32·여)씨는 "결혼을 늦게 하는 것이 사회적 풍토가 된 것 같다"며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지만 낳을지 여부조차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날 인터뷰에 응한 <오마이뉴스> 직원들은 대안에 대해서는 '결혼과 출산을 할 수 있는 풍토조성이 우선'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직원은 "출산율 저하가 인력감소를 불어온다고 걱정하기에 앞서 사회구조를 변화시켜 인구가 증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밝혔다.

[뒤늦은 결혼, 뒤늦은 출산] "'정상인'으로, 나 돌아갈래"

지난해 결혼해 현재 임신 중인 H(34·여)씨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배려'를 받는다. 특히 '뒤늦은 임신'으로 인해 출장 등에서는 배제가 되는데 "아이에게 안 좋을 수도 있기 때문에 힘든 일은 하지 말라"는 게 주된 이유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가 오히려 그에게는 상처가 된다.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일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노골적으로 '취재기자로서 능률이 떨어진다'는 얘기도 들린다고 한다.

결혼하기 전과 후, 그의 결혼·출산관은 180도 바뀌었다. 그는 "우리 사회는 임신부들을 '배려한다'며 일에서 배제시킨다, 사회나 일로부터 소외감이 커진다"며 "솔직히 비정상인인 것 같은 내가 빨리 정상인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가 크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육아에 대해서는 "일단 낳은 뒤 어떻게 해야할 지 고민하기로 했다"고 말한 뒤 "용인에 사시는 시어머니댁으로 출퇴근해야할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혹시 셋째? 아, 불안해"
<오마이뉴스> '다산' 가족들의 이야기

"두달 전쯤 아내가 셋째 아이를 임신한줄 알고 불안에 떨었다. 테스트해본 결과 임신이 아니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결혼 9년 차로 2명의 자녀를 둔 I씨(35·남)의 경험담이다. 그는 "남매가 같이 놀고 있을 때 가장 흐뭇하다"고 미소지었다. 그러나 또 셋째의 임신 가능성에 대해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원인은 돈 아니겠나. 아이를 키우는 것은 괜찮다. 그러나 40대가 가까이 오는 시점에서 1, 2년을 아이만을 위해 투자한다면 기반 잡는 것은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니겠냐."

그는 둘째 아이 출산에 대해서 "닥치면 하게 된다"고 말했지만 "가끔은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다른 일에 매진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는 심정도 밝혔다.

5살과 2살의 두 자녀를 둔 J(31·남)씨는 하동에 있는 할머니 집에 맡긴 아이들을 한달에 두 번밖에 보지 못한다. 맞벌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는 그나마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들을 찾는다.

첫째 아이를 위해 외롭지 말라고 둘째를 낳았다는 그는 "육아시설의 확충 없이는 출산율 증가는 기대하면 안 된다"며 구조적으로 '출산율'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는 "보육비도 문제지만 아이들을 믿고 맡길만한 탁아시설이 거의 전무하다"며 "국가에서는 생색내기식으로 셋째부터 약간의 보육비를 준다고 하지만 차라리 이 비용으로 탁아시설을 늘리는 게 낫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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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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