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 발가락만 호강했네

[바다... 해안선를 따라가며 보다 3]

등록 2005.08.27 13:09수정 2005.08.28 20:49
0
원고료로 응원
포항 호미곶 일출
포항 호미곶 일출김용완
여행 3일째. 휴대폰 알람이 목이 터져라 울어대는데도 못 일어나고 늦잠을 자버렸다. 호미곶 광장에서의 일출을 촬영하기 위해 알람을 새벽 5시로 맞춰 놓았는데 끄지도 못하고 일어나지도 못한 걸 보면 많이 피곤한 모양이었다. 하긴 어제 저녁 자정을 넘긴 시간에 도착했고, 거의 18시간 가까이 운전하며 돌아다녔으니 그럴 만도 했다. 영덕에서 게로 몸보신(?) 했다지만 효과는 별로 없어 보였다.

해가 동해에서 갓 떠오르려는 순간 눈을 떴다. 부랴부랴 장비를 챙기고, 모자며, 신발을 신고 광장으로 뛰어나갔다. 이곳에서 일출을 감상하지 못하면 어제 저녁 힘들게 찾아온 노력이 물거품이 될 상황이었다. 카메라와 트라이포드를 어깨에 짊어지고 저 멀리 보이는 바다속 손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아침 일출을 보기 위해 광장에 나와 있었다.


가족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는 사람들, 연인과 함께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까지 아침에 꽃단장들은 언제 했는지 모르게 세련된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반면 허름한 반바지에 검에 타버린 얼굴 위로 덥수룩하게 난 수염, 푹~ 눌러 쓴 벙거지 모자까지 카메라만 들고 있지 않았다면 기자의 행색은 꼭 그것(?) 같아 보였다.

강렬한 빛을 발하며 떠오르는 태양이 광장의 조형물들과 조화를 이루며 호미곶에서의 아침은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힘차게 떠오른 해는 잠깐 동안의 일출 공연을 마친 뒤 무대 뒤, 구름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아쉬워하는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렸지만 그래도 기념사진에 여념이 없는 피서객들의 셔터 소리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아쉬워야 또 오지 않겠습니까?

포항 호미곶 항구 풍경 ll
포항 호미곶 항구 풍경 ll김용완
엄지 발가락만 호강했네?

해수찜 사우나! 바닷가에 있는 사우나 치고는 가장 흔한 이름이지만 반면 가장 소비자를 현혹하는 간판이다. 수염도 깎고 뜨거운 욕탕에서 피로를 풀어야 남은 이틀간의 여행이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닷가 사우나 치고는 시설도 괜찮고 탕도 여러 가지를 만들어 놓았다. 이탕저탕 다 들어가 봤지만 정작 해수찜 사우나는 엄지발가락만 호강을 해야 했다. 기자뿐 아니라 탕안의 많은 사람들도 너무 뜨거운 물에 들어갈 엄두를 못 내고 발가락만 담그고 있는 게 아닌가. 사우나에 와서 탕에 못 들어가 본 황당한 경험이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사우나에서 나왔더니 깨끗해진 몸에 시원한 바닷바람이 상큼하게 와 닿았다. 바로 옆 흰색 등대가 있는 방파제를 산책하면서 오늘 어디로 가야할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했다. 저 멀리서 파도를 헤치며 들어오는 고깃배에 수십 마리의 갈매기 떼가 까악~ 까악~ 소리를 내며 달려드는 모습과 한가하게 정박해 있지만 고기를 배에서 내리는 분주한 모습이 활기찬 아침 항구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포항 호미곶 항구 풍경 l
포항 호미곶 항구 풍경 l김용완
갈매기 떼가 몰려든 고깃배를 보고 있자니 문득 어렸을 적 보았던 애니메이션 <미래소년 코난>이 생각났다. <미래소년 코난>에 나오는 여자주인공 나나 곁에는 항상 갈매기들이 따라다녔다는 것과 유난히 갈매기 모습이 많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반면 수염을 깎기 전 기자의 모습에서는 코난의 친구 포비가 떠올랐는데, 마침 근처에 사우나가 있어 말끔하게 달라진 모습으로 남은 여행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포비의 이미지는 좀 그렇지 않은가!(웃음)

할머니 이 이른 시간에 사과 팔러 나오셨어요?


포항 호미곶을 떠나 31번 국도를 따라 감포로 향했다. 몸은 조금 피곤했지만 아침 일출도 감상하고, 조용한 바다와 활기찬 항구의 모습에서 동해바다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어서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게다가 오늘은 남해바다로 접어든다는 생각에 차는 더욱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 서둘렀더니 감은사터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8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감포 감은사지 3층 석탑.
감포 감은사지 3층 석탑.김용완
우선 감은사터에 들러 멋스럽게 서 있는 탑이 보고 싶어졌다. 몇 년 전 찾아 왔을 때 무더웠던 생각이 잠깐 스쳤는데 이날 역시 만만치 않은 더위가 시작될 기세였다. 오전인데도 차에서 내리는 순간 이마와 등에서 땀이 차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감은사터를 향해 막 오르려는데 조용한 목소리 하나가 귓가로 다가왔다.

“사과 하나 사 가세요~”

이마에 주름이 깊게 패인, 70세는 족히 넘어 보이는 할머니께서 이 이른 아침에 물건을 팔려고 좌판을 벌여 놓으신 게 아닌가. 사과와 미숫가루, 각종 나물과 농산물 등 몇 개 되지 않는 물건이 좌판의 초라한 구색을 보여준다.

“할머니 뭐라고요?”
“내가 직접 따가지고 온 거야, 사과 하나 사 가지고 가 ~”

기자의 질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사과를 사라고만 하신다.

“이 아침에 이 걸 팔려고 나오신 거예요? “
“집에 있으면 뭐해? 아직 생생한데……. 하하하”

나이에 비해 정정하신 모습이 참 정겨워 보였다. 내후년이면 100세가 되는 기자의 외할머니 생각에 그냥 지나치지 못한 것 같다.

감은사터 주차장 할머니에게서 구입한 사과 3알
감은사터 주차장 할머니에게서 구입한 사과 3알김용완
웅장하게 서 있는 탑 주변을 돌아보고 또 감은사터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아직도 미궁 속에 있는 이 문화유적에 대한 수많은 생각을 해보게 된다. 왜 이곳에 이런 절터가 있는지부터 시작해 이 절은 누가 지은 것이며, 지금은 왜 이렇게 흔적만 남게 됐는지까지…. 또 역시 확인하지 못한 많은 역사가 남아있는 문무대왕릉과 함께 이곳에 올 때마다 묘한 기운을 느끼게 된다.

감은사터를 돌아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기자의 손에는 ‘흐뭇한 사과 3알’이 담겨 있다. 감은사터를 나와 문무대왕릉을 거쳐 차는 서둘러 남해를 향해 달리기 사작했다.

경주 봉길리 앞바다 문무대왕릉
경주 봉길리 앞바다 문무대왕릉김용완
‘이럴 줄 알고 부산에 안 들어간 거야’

혼자 중얼거리는 와중에도 옆 차선에서는 차들이 머리를 들이댄다. 감포를 떠난 여정은 부산으로 들어가지 않고 울산, 언양을 거쳐 남해고속도로에 들어서 있다. 부산에도 들러서 번화한 해변도 구경하고 몇 해 전 부산영화제 때 맛보았던 부산오뎅도 먹고 싶었는데 우려는 현실로 나타난다고 부산 주변도시에 있는 데도 교통체증이 엄청나다. 차는 느릿느릿 동김해를 지나 마산, 통영을 향해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가고 있다. 여행 3일째를 맞이하면서 서울에서 출발할 때를 제외하곤 가장 곤혹스런 시간이었다.

한 시간 동안 서행과 지체를 반복하다가 마산에서 통영으로 가는 14번 국도로 들어서자 차량의 흐름이 조금 원활해 졌다. 그런데 이 도로의 특징은 감시카메라가 너무 많다는 것. 도대체 몇 대의 카메라가 있는지 확인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이 곳은 세금을 도로교통 범칙금으로만 충당하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생겨날 정도. 지나가는 나그네에게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도로다.

통영항에 배들이 정박해 있는 풍경
통영항에 배들이 정박해 있는 풍경김용완
썩 유쾌하지 않은 도로를 한 시간여 달려 공룡발자국으로 유명한 고성을 지나 통영에 도착했다. 아름다운 섬과 바다가 있는 천혜의 해양휴양지 통영. 저 멀리 서울 사람들에게는 드라마 촬영지였던 외도나 소매물도 그리고 충무김밥으로 불리는 통영김밥으로 잘 알려져 있고, 또 이순신 장군이 큰 전과를 올린 한산도대첩의 장소로도 유명한 곳이다.

통영에 도착해 바로 점심을 먹어야 했다. 배가 고팠고 통영김밥으로 유명한 이곳만의 별미를 본고장에서 먹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행에 대한 사전준비 없이 무작정 내려온 상황이여서 관광안내소의 도움을 받아야했다.

““근처에 맛있게 하는 ‘충무김밥’집이 어딘가요?“ 라고 물었더니 안내소 직원 왈 “저기 여객터미널 뒤편으로 가면 한일김밥이라고 있어예~ 거기한번 가보이소.”

감사의 말을 전하고 혼자 중얼거리며 여객터미널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필 기자가 찾아간 날 통영에서 축제가 열리는 기간이었다. 비좁은 항구 옆 도로는 축제 행렬과 피서 인파에 오고가는 차량들까지 뒤섞여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여객터미널 인근의 다른 원조(?) 집을 찾아 들어가야 했다. 한편 터미널 인근에는 통영김밥을 판매하고 있는 김밥집들이 수십 곳 성업 중이며 어느 곳을 들어가더라도 맛있는 김밥맛을 맛볼 수 있다.

통영여객선 터미널 앞에는 수많은 김밥집들이 성업중이다.
통영여객선 터미널 앞에는 수많은 김밥집들이 성업중이다.김용완
기자가 찾아간 곳 역시 십수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곳으로 이미 많은 외지의 피서객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혼자 다니는 여행자에 대한 부러운(?) 시선은 이곳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자의 등장에 혼자라 많이 주문하지 못하는 상황을 직감한 듯 달가워하지 않는 듯한 표정의 종업원, 이 여름에 혼자 돌아다니는 여행객에 대한 다른 여행자의 호기심 어린 눈길까지. 다소 부담스럽지만 “뭐 이 인기는 어디를 가도 식지를 않네!”라고 속으로 되새기면서 종업원에게 한 마디 던졌다.

“충무김밥 1인분요!”

아뿔싸! 통영김밥인데…. 뜨거운 국물 한 그릇과 김으로 잘 말은 따뜻한 김밥에 신 무김치와 오징어볶음으로 구성된 통영김밥은 아주 맛있었다. 지금도 사진을 보거나 그때의 기억을 떠올릴 때면 기자도 모르게 입안에 침이 가득 찬다. 네이버 지식검색을 인용하면 이런 현상은 음식을 보고 자극을 받은 대뇌는 부교감신경계를 자극하고 혀를 담당하는 설인신경을 통해 침이 입안에 머금게 된다는 것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기자의 설인신경이 말할 수 없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듯하다.

통영 해저터널입구
통영 해저터널입구김용완
맛있는 통영김밥에 따듯한 시선까지 한몸에 받은 기자는 본격적으로 통영시내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간곳이 해저터널. 통영관광지도에 해저터널이라고 나오긴 해서 찾아 가긴 했는데 설마 바다 밑으로 터널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은 터널입구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됐다. 길이 수백 미터의 이 터널은 실제로 존재하고 있었는데 일제 때 우리 선조들이 강제로 끌려가 만든 것이라 한다. 신기하고 놀랍기도 하지만 터널 초입에 만들어 놓은 건설사를 읽고 있으면 다시 한 번 일제의 만행에 두 주먹을 불끈 쥐게 된다.

터널을 걸으면서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다음 행선지 통영대교로 향했다. 얼마 전에 개통됐다는 통영대교는 시원한 남해 앞바다를 한눈에 조망 할 수 있는 곳이다. 한려수도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인 통영에서 남해바다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 중 한곳이다. 특히 군데군데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이름 모를 수많은 무인도와 그 사이를 하얀 포말을 내며 가로지르는 고깃배들의 모습은 아기자기하고 정겨운 모습을 선사한다. 동해의 세련되고 시원한 바다와 비교되는 점이다.

통영하면 또 생각나는 것이 시인 유치환과 그의 시 '편지'. 학교 다닐 때 시를 외우기도 하고 시의 배경이 되었던 통영 중앙우체국 우체통에 대한 이야기도 듣곤 했었는데 조만간 시인이 친일자 명단에 포함될 것이라는 소문에 다소 혼란스럽다. 문학적으로 큰 업적을 남긴 시인과 해저터널이 묘한 느낌을 전해주는 곳 통영이다.

통영의 별미 굴국밥~
통영의 별미 굴국밥~김용완
통영을 떠나기 전에 굴국밥과 굴밥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다시 부교감신경을 자극해 입에 침이 머금기 시작했다. 통영굴은 전국적으로 유명해 굴로 만든 음식들이 고장의 음식으로 많이 만들어지고 또 유명하다.

개인적으로 굴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오늘 아침 피곤 때문에 늦잠 잔 것이 맘에 걸리고 길에서 밥이라도 잘 챙겨먹어야 한다는 어머니 말씀이 떠올라 이곳을 빠져나가기 전에 굴국밥집에 들러야 했다. 먹기 위한 사람의 의지는 이렇게 강하다. 저녁식사로는 조금 이른 시간이었지만 기회는 흔치 않은 법. 먹어야 산다. 먹고 죽은 귀신은 땟깔도 좋다. 등등의 문구를 떠올리며 이곳만의 진미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여행 3일째 경로>
포항 호미곶 -> 구룡포 -> 감포 -> 감은사터 -> 문무대왕릉 -> 울산 -> 언양 -> 김해 -> 마산 -> 고성 -> 통영 -> ?

덧붙이는 글 <여행 3일째 경로>
포항 호미곶 -> 구룡포 -> 감포 -> 감은사터 -> 문무대왕릉 -> 울산 -> 언양 -> 김해 -> 마산 -> 고성 -> 통영 -> ?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 "우리 오빠" 후폭풍...이준석 추가 폭로, 국힘은 선택적 침묵 김건희 "우리 오빠" 후폭풍...이준석 추가 폭로, 국힘은 선택적 침묵
  2. 2 박근혜 탄핵 때와 유사...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 박근혜 탄핵 때와 유사...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
  3. 3 사진에 담긴 진실... 이대로 두면 대한민국 끝난다 사진에 담긴 진실... 이대로 두면 대한민국 끝난다
  4. 4 신체·속옷 찍어 '성관계 후기', 위험한 픽업아티스트 상담소 신체·속옷 찍어 '성관계 후기', 위험한 픽업아티스트 상담소
  5. 5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