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야 낮이야... 거대한 광양제철소와 맞닥뜨리다

[바다... 해안선을 따라가며 보다 4]

등록 2005.08.30 22:50수정 2005.08.31 11:40
0
원고료로 응원
밤이야? 낮이야? 놀라운 풍경의 광양제철소.
밤이야? 낮이야? 놀라운 풍경의 광양제철소.김용완
삼천포대교에서 석양 본 적 있으세요?

통영에서 굴국밥까지 먹어 속이 든든해진 기자는 곧바로 사천시로 향했다. 원래 목적지는 남해의 다랭이마을인데 지도상에서 볼 때 통영에서 남해로 들어가는 가장 빠른 길이 사천시로 들어가 삼천포대교를 건너 들어가는 길이기 때문에 사천시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오늘 아침 포항에서 출발한 시간이 이른 아침이었는데 어느새 해가 서쪽 바다를 기웃거리는 것이 오늘의 목적지인 여수까지의 여정이 까마득해 보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정까지는 들어가야 하는데…"하는 혼잣말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사천으로 향하는 길.
사천으로 향하는 길.김용완
이런 상황에서도 지금까지 길을 나선 이후로 힘겹게 목적지를 향해 달려갈 수 있었던 것은 가는 곳마다 펼쳐지는 멋진 풍경들에 감탄하게 되고, 다음 여행지가 보여줄 또 다른 모습에 대한 설렘 때문이었다. 또 그 지역만의 별미를 맛보면서 원기(?)를 충전할 수 있었던 것도 기자가 의지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었다. 지난 이틀간의 시간이 그랬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도 이같은 상황의 연속일 것이라는 기대 속에 길 위에서의 여행은 계속 이어졌다.

사천시로 들어와서 남해로 향하는 도중 이같은 생각에 잠시 잠겨 있는데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눈앞에 삼천포대교의 모습이 나타났다. 대교로 들어가는 다리 초입에 차들을 세워 놓고 남해바다를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들 휴가를 왔다가 대교를 지나가는 길인 모양인데, 때마침 해가 바다로 떨어질 무렵이라 기념 사진도 찍고 일몰을 감상하는 데 여념이 없다.

삼천포대교의 모습.
삼천포대교의 모습.김용완
기자도 차를 세워놓고 삼천포대교에서 일몰을 바라보았다. 다리 위에서의 일출은 처음이었는데 조그마한 섬들 사이로 저무는 일몰의 풍경이 참 좋다. 특히 다리 위로 불어오는 바닷바람과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이름 모를 섬 사이로 지나가는 고깃배의 풍경은 남해바다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혹시 삼천포대교를 지나갈 일이 있으면 꼭 내려서 남해바다의 모습을 감상할 것을 추천한다(참고로 차는 다리 위에 세우면 안되고 지정된 장소에 세워야 합니다).

삼천포대교에서 바라본 일몰.
삼천포대교에서 바라본 일몰.김용완
삼천포대교를 건너 1024번 지방도를 타고 30여 분 달려가면 창선교가 나오는데, 그냥 지나치기 아까운 풍경이 여행자의 발길을 붙잡는다. 바로 다리 아래 남해바다의 명물이 된 죽방렴이 그것이다. V자 모양의 대나무발 그물들이 촘촘히 쳐져 있는 죽방렴은 원시어업 형태의 하나로 물살이 세고 폭이 좁은 남해 지족해협과 같은 바다에 설치하기 좋은 어구라고 한다. 해가 질 무렵에 창선교를 지났으니 남해 다랭이마을을 들렸다 여수로 가는 길은 더욱 더뎌지고 있었다.

남해안 해안도로의 풍경은 아기자기하고 심심하지 않다.
남해안 해안도로의 풍경은 아기자기하고 심심하지 않다.김용완
해는 져서 어둡고 초승달이 마을을 바라보듯 떠있는 저녁. 뿌연 안개는 저 멀리 바다를 감싸 안아 포근한 느낌의 배경을 만든다. 어렵게 어렵게 해안도로와 언덕을 넘어 달려온 기자에게 다랭이마을은 그렇게 멋진 풍경 사진 하나를 선사하고 있었다.


다랭이마을은 남해군 남면 홍현리에 위치한 바닷가 마을이다. 인근의 다른 마을과 다른 점은 깎아지른 산비탈에 계단식 논들이 인상적인 곳이라는 점. 경작할 논이 부족한 마을에서 산을 깎아 논을 만들다 보니 현재와 같은 독특한 형태의 논 구조가 됐다. 다랭이는 산비탈에 층층이 만든 계단식 논을 일컫는다.

이 마을은 논과 관련된 얘기 말고도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농촌체험 마을 중 한곳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물론 이점이 기자가 이 마을을 찾아가게 한 이유였다. 최근 주5일제 근무가 시행되면서 주말 여가를 보내는 이들에게 좋은 대안관광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농촌체험관광.


우리 농촌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직접 확인하고 안전하게 먹을 수 있다는 장점에서부터 자녀들 교육(실제로 전국의 초등학생들은 농촌체험을 단체로 다녀오는 사례가 늘고 있다)과 삭막한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따듯한 고향의 정을 느끼게 해 줄 수 있다는 점 등이 꾸준히 성장해 가고 있는 이유이다. 다랭이마을은 바로 그 농촌체험관광에서 다른 마을들보다 한발 앞서나가고 있다.

농촌체험을 시작하려는 다른 지역의 사람들에게 농촌체험 선진마을 견학지나 교육장소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수많은 언론에도 개성 넘치는 마을의 모습이 보도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이 마을의 논 풍경에서도 알 수 있듯 농촌의 경작 조건만 놓고 보면 매우 열악한 곳이다. 그러나 마을의 독특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농촌다움을 살린 농촌체험의 좋은 본보기 마을로 도시인들에게 우리 농산물, 우리 농촌의 소중함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다.

남해 다랭이마을 풍경
남해 다랭이마을 풍경김용완
어렵사리 도착했는데... 온 세상이 어둠으로 덮여버렸네

아침에 조금 서둘렀으면 다랭이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닐 수 있었을 텐데, 해는 지고 날은 어두워져 마을을 조망할 수 있는 언덕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사진 촬영하기 좋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따뜻한 느낌의 초승달과 하나 둘씩 불이 들어오는 집들의 야경은 기자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차를 세워놓고 트라이포드와 카메라를 설치하고 촬영에 들어갔다. 멋들어진 풍경 앞에서 사진 찍는 재미는 솔솔 했지만 부위를 가리지 않고 물어뜯는 모기와 도로 위 비탈길에서 촬영하는 기자를 발견하고도 라이트를 켠 채 부담스럽게 관심을 보이는 차량들 때문에 촬영은 가끔씩 중단되곤 했다. 촬영과 중단을 반복한 지 한 시간. 시간은 속절 없이 흘러가고 이내 철수해야 할 시간이 다가 왔다. 아쉬움에 발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일정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마을을 지나 남해의 해안을 따라 포장된 1024번 지방도로는 밤에는 위험하다. 가로등이 없는 구간이 많고, 바닷가 낭떠러지가 도로 바로 옆으로 나있는 구간이 많아 조심해서 운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끔씩 라이트 앞으로 돌진하는 개구리나 뱀의 출현은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기에 충분하며, 웽웽거리며 귓가를 맴돌며 기자를 상대로 포식을 하고 있는 모기는 반갑지 않은 또 다른 공포의 대상이었다.

밤이야 낮이야... 탄성이 절로 나오는 광양제철소

거대한 기둥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양의 연기. 남해의 어둠과 대비되는 어마어마한 야경. 광양제철소다. 남해에서 빠져나와 여수로 가는 도중 길을 잃어 버렸는데 우연히 찾아간 곳에 광양제철소의 모습이 보이는 곳에 도착한 것이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강 건너 제철소로부터 느껴졌는데, 대단한 풍경 앞에 한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본능처럼 다시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거대한 기둥과 엄청난 힘의 상징 제철소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촬영을 시작하는데 몇 달 전 관람했던 마이클 케냐(Michael Kenna, 1953~ , http://www.michaelkenna.net))의 사진이 떠올랐다. 산업화시대의 삭막한 모습들을(혹은 대상들을) 아름다운 풍경 사진으로 승화시킨 그의 작품들은 마이클 케냐를 전 세계적에서 가장 사랑받는 사진가로 거듭나게 했다.

자정이 다된 시간. 저 멀리 여수 돌산대교의 야경이 피로에 찌든 기자의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한밤의 제철소 풍경
한밤의 제철소 풍경김용완

관련
기사
- 전국일주도 식후경, 막국수집 찍고 찐빵집 찍고!

덧붙이는 글 | <여행 3일째 경로> 
통영 -> 고성 -> 사천 -> 삼천포대교 -> 창선교 -> 가천 다랭이마을 -> 광양 -> 여수

덧붙이는 글 <여행 3일째 경로> 
통영 -> 고성 -> 사천 -> 삼천포대교 -> 창선교 -> 가천 다랭이마을 -> 광양 -> 여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 "우리 오빠" 후폭풍...이준석 추가 폭로, 국힘은 선택적 침묵 김건희 "우리 오빠" 후폭풍...이준석 추가 폭로, 국힘은 선택적 침묵
  2. 2 박근혜 탄핵 때와 유사...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 박근혜 탄핵 때와 유사...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
  3. 3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4. 4 신체·속옷 찍어 '성관계 후기', 위험한 픽업아티스트 상담소 신체·속옷 찍어 '성관계 후기', 위험한 픽업아티스트 상담소
  5. 5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