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풀 '진지리'를 우습게 보지 마라

바다 속 인큐베이터 '잘피밭'

등록 2005.09.06 00:37수정 2005.09.06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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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의 어느 섬에 갔을 때, 갯가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풀더미를 보고, 마을이장에게 왜 청소를 하지 않고 저렇게 쌓아두느냐며 물어본 적이 있었다. 육지 것의 눈에는 바다쓰레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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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이장은 지금이니까 저렇게 쌓아두지, 20~30여 년 전만 해도 서로 가져가려고 싸움이 났던 것이 저 '진지리'라는 것이었다. 진지리, 처음 들어본 이름이다. 어디 바다와 섬에 와서 처음 들어 본 것이 이것뿐이겠는가. 처음에는 몰라서 물어보질 못했고, 좀 알고서는 명색이 어촌연구를 한다는 놈이 그것도 모른다 싶어 물어보질 못했다. 지금은 모르면 바로 물어본다.

"진지리가 뭡니까."
"바다에 나는 풀이여."

"옛날에는 저것으로 퇴비도 하고, 말려서 아궁이 불쏘시개도 하고 그랬어."
"그럼, 육지에 볏짚하고 비슷하네요."

진지리는 해산현화식물인 거머리말속(잘피)으로 거머리말, 애기거머리말, 수거머리말, 포기거머리말 등이 있으며, 연안의 사질과 사니질에 생육한다. 군집을 이루며 생육하는데 조간대와 조하대에 침수 혹은 노출되어 자라면서 영양염과 중금속 순환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많은 어류들이 연안의 잘피밭에 산란을 하며, 깨어난 작은 새끼고기들은 잘피밭이나 해조밭에 몸을 숨기거나 부착하여 식물성 플랑크톤을 잡아먹으며 자란다.

잘피밭은 일종의 바다 인큐베이터와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특히 잘피밭은 어린 고기들이 쉽게 몸을 숨길 수 있어 큰 고기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어 더욱 좋다. 최근 서남해 일부지역에서 그 동안 사라졌던 잘피밭이 다시 형성되는 것을 보고 생태계가 복원되고 있다는 기사도 보이기도 했다.


어느 지자체에서는 연안환경오염으로 잘피가 사라지자 인공이식을 하기도 했다. 잘피가 산란장과 서식지는 물로 적조오염 방지에도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1㎡의 잘피가 연간 34t의 물을 정화하는 것으로 연구되어 친환경수산생물로 밝혀지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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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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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어촌마을의 '진지리' 공동체


언제부터인가 섬에 있는 것들을 보면 육지 것과 비교하는 버릇이 생겼다. 옛날 낫으로 나락을 베고 난 볏짚은 볏가리를 해 보관했다가 찬바람이 날 무렵에 지붕을 이었고, 겨울철 소먹이 여물로 사용했고, 소막, 돼지막 등 축사에 넣어 퇴비로도 이용했다. 나무대신 짚불로 밥을 짓기도 하고, 콩나물을 놓을 때도 이용했었다. 이런 육지의 볏짚과 같은 역할의 일부를 이 '진지리'가 한 것 같다. '진지리'는 어민들이 부르는 이름이고, 학술적인 용어로는 '거머리말속'이라고 하는데 '잘피'라고 부른다.

잘피가 모든 어촌에 있는 것은 아니다. 같은 섬이라도 잘피가 밀려오는 마을이 있고, 그렇지 않는 마을이 있다. 잘피가 밀려오지 않는 마을은 몰래 훔쳐오든지 아니면 허락을 받고 걷어 와야 한다. 근데 어디 자기 갱번에 밀려온 보물을 맘대로 내줄 마을이 어디 있겠는가. 양식지라도 좀 내주든지, 지선어장의 갯벌낙지라도 잡을 수 있는 기회라도 주든지 해야 할 형편이었다.

같은 동네에서도 진지리를 걷는 일은 엄격하고 균등하게 나눈다. 어촌마을의 조간대 관리조직인 '갱번'('주비' 혹은 '단'이라고도 함)별로 진지리를 거두어 가는 것이다. 같은 마을이라도 진지리가 많이 밀려든 곳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는 곳도 있다. 그래서 역시 매년 돌아가면서 장소를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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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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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척박하기로 하면 제주밭과 견줄 만한 곳이 없을 것이다. 그곳에서도 서남해안처럼 '바다풀거름'이 일찍부터 발달해왔다. 고광민의 연구(제주도의 생산기술과 민속)에 의하면, 제주의 전통배 테우(떼배)를 타고 '줄아시'라는 낫으로 거름용 바다풀을 채취해 거름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제주에서 이용한 바닷풀은 '실갱이'로 한척의 떼배에 세 사람의 남자가 타서 한 사람은 노를 젓고 나머지 두 사람은 '줄아시'(낫)로 바닷풀을 베었다. 나머지 두 척은 각각 두 사람이 타서 한 사람은 노를 젓고, 한 사람은 '공젱이'라는 갈퀴로 바다풀을 건져 배에 싣고 뭍으로 나른다.

제주의 일부 지역에서는 서남해역의 도서지역처럼 바람에 밀려온 바다풀을 채취해 거름으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바람에 밀려왔다고 해서 '풍태'(風苔)라고 하는데 주로 봄에 많이 채취를 한다. 마을 사람들끼리 동아리를 이루어, 일정한 비용을 마을에 내고 채취권을 얻는다. 이렇게 채취한 풍태는 보리파종이 끝난 밭이나 고구마 모종을 놓는 밭 위 여기저기에 깔아 거름으로 사용한다.

진지리나 풍태를 이용한 거름은 1960년대 외화를 얻어다 지은 충주비료공장, 호남비료공장, 칠비공장 등에서 화학비료가 생산되면서 사라졌다. 경제성장의 상징으로 방학숙제를 하면 늘 도화지에 오려붙여 갔던 그 연기 나는 굴뚝이 등장하면서 진지리와 풍태는 더 이상 어민들의 관심거리가 되지 못했다.

그 결과 땅은 산성화되어갔고, 바다에서 진지리는 사라져갔다. 숲이 살아야 강이 살고, 강이 살아야 바다가 사는 것처럼 생태계는 순환되어야 한다. 갯가의 진지리와 풍태를 둘러싼 마을공동체의 순환적인 삶이 결국 바다를 지켜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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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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