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나이다, 저도 예쁜 아기를 갖게 해주세요

[페루 이야기 17] 쿠스코-푸노 여행기,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 포인트들 ⑦

등록 2005.09.09 07:16수정 2005.09.12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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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탁트이는 우마요(Umayo) 호수, 눈이 예쁜 비꾸냐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 일행은 푸노(Puno)를 향한 마지막 여정을 위해 다시 차에 올라탔다. 이제 남은 곳은 아이마라 족의 사원이 있다는 추꾸이또(Chucuito). 푸노에서 1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위치한 이곳은 남성의 성기 모양을 닮은 남근석(男根石)들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사원 입구에 들어서자 널따란 벌판에 돌을 쌓아 올린 담벼락이 보인다. 잉카문명의 거대한 유적지들만 본 탓에 너무나 작게만 보이는 추꾸이또. 하지만 사원 입구에는 추꾸이또를 보기 위해 모여든 관광객들과 현지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a 추꾸이또 사원의 전경

추꾸이또 사원의 전경 ⓒ 배한수


"도대체 무엇이 있기에…."

궁금한 마음에 좁은 입구를 막아선 사람들을 헤치고 안으로 들어서자 버섯 모양의 돌들이 땅에 수십여 개 박혀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예닐곱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가 내게 달려오더니 돌과 내 하체쪽을 번갈아 가리키며 "이것은 남자의 성기 모양이다"라고 설명해준다.

a 사원의 내부 전경, 남자 성기모양의 돌들이 땅에 수십개 박혀있다.

사원의 내부 전경, 남자 성기모양의 돌들이 땅에 수십개 박혀있다. ⓒ 배한수


동행한 페루 친구들이 꼬마와 나 사이에 벌어지는 광경을 보더니 한바탕 배를 잡고 웃는다. 이 꼬마아이는 자기가 이 사원에 대해 설명해 주겠다며, 나중에 설명이 괜찮으면 팁을 달라고 했다. 동행한 친구들이 그렇게 해보라고 권유한 탓에, 나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땅에 박힌 돌 위에 걸터앉았다.

그런데 친구들이 또 한바탕 깔깔대며 웃는다. 왜 그러냐고 이유를 물었더니 남자는 이곳에 앉으면 안 된단다. 이유인 즉슨, 바닥에 박힌 바위에는 여자들만 앉는 것이라고 한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꼬마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잉카문명의 발상지인 티티카카(Titicaca)호수의 북쪽 지방에 살았던 아이마라족이 세웠다는 추꾸이또 사원은, 옛부터 결혼 후에도 장기간 아이를 갖지 못하는 여성들이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여인들은 이곳에 찾아와 이 바위에 걸터앉아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소원을 빈다고. 이제야 비로소 방금 전 왜 친구들이 나를 보고 웃어댔는지 이해가 갔다.


땅에 박혀 있는 이 남근석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한다. 뾰족한 머리 부분이 하늘을 향해 박혀 있는 것은 "신에게 감사한다(Gracias a dios)"는 의미이고, 뾰족한 머리 부분이 땅으로 박혀 있는 것은 "땅에게 감사한다(Gracias a tierra)"는 의미.

아이마라족은 자신들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해주는 태양과, 곡물을 생산할 수 있게 해주는 땅에게 감사하기 위해 이 남근석들을 사원 내에 박아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돌들은 남근을 닮았다는 이유로, 세월이 흐르면서 아이를 갖게 해달라는 소원을 비는 용도로 변형돼 사용되고 있다고.


a 머리부분이 하늘을 향한 "신에게 감사한다(Gracias a dios)"는 의미의 돌들

머리부분이 하늘을 향한 "신에게 감사한다(Gracias a dios)"는 의미의 돌들 ⓒ 배한수



a 머리부분이 땅을 향한 "땅에게 감사한다(Gracias a tierra)"는 의미의 돌들

머리부분이 땅을 향한 "땅에게 감사한다(Gracias a tierra)"는 의미의 돌들 ⓒ 배한수


그런데 설명을 듣고 있자니 한 가지 궁금한 게 떠올랐다.

감사의 의미로 만들었다는 돌이 왜 하필이면 남자의 성기모양을 닮아 있을까?

궁금한 마음에 꼬마에게 물어보니, 아이마라 족은 남자가 인류의 중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이렇게 이 돌은 "인류는 신과 땅에게 감사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들의 남성숭배 사상이 엿보인다.

그런데 보자보자 하니 나이도 어린 이 꼬마아이가, 오래 전 문명 이야기부터 이곳의 유래까지 줄줄 외고 있다. "너는 어떻게 이런 걸 다 아냐?"고 물었더니, "나는 친구들이랑 1년 전부터 관광객들한테 이곳을 소개해주는 일을 많이 해봐서 그렇다"고 한다. 세상물정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꼬마아이가 이곳에서 이렇게 푼돈을 벌고 있는 게 안쓰럽긴 했지만, 굉장히 똑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서 설명을 듣던 페루친구들이 설명 중 빠진 게 있다며 한마디 거든다. 아이를 갖기 원하는 여성들이 이곳에 오면 모두들 바위에 걸터앉아 소원을 비는데, 그중에서도 최고는 중앙에 있는 저 큰 돌이라고.

a 사원 중앙에 있는 최대 크기의 남근석(男根石)

사원 중앙에 있는 최대 크기의 남근석(男根石) ⓒ 배한수


믿거나 말거나한 이야기지만 돌의 크기가 클수록 그 소원이 이루어질 확률이 높다고 한다. 그래서 사원 내에서 가장 큰 이 돌은, 방문하는 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다고.

그리고 친구들은 사원 내에서 바라보이는 성당의 종탑 가장 꼭대기를 가리키며, "저기에도 이 돌과 같은 모양의 돌이 있다"고 말했다. 신기한 마음에 종탑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정말 가장 꼭대기에 작은 크기의 남근석이 있는 게 보였다.

a 성당 종탑에도 사원의 것과 같은 모양의 남근석이 있다 (왼쪽 위 확대사진)

성당 종탑에도 사원의 것과 같은 모양의 남근석이 있다 (왼쪽 위 확대사진) ⓒ 배한수


어찌 보면 보기에 부끄러운 모양을 한 사원 내의 돌들. 추꾸이또는 이렇게 특이한 볼거리로 이미 관광명소가 되어 있었다. 기자가 사원 내에 있는 30분여의 짧은 시간에도 수많은 외국 관광객들과, 돌의 효과를 체험하기 위한 현지인들이 수없이 이곳을 드나들었다.

이렇게 사원을 구경하고 밤늦게 최종 목적지 푸노에 도착한 일행. 허기진 우리는 숙소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3일 동안의 여행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다.

사람들이 흔히 찾는 유명 관광명소 이외에도,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재미있고 신기한 볼거리들이 도처에 산재해 있는 곳이 이곳 페루. 여유가 있다면 아름다운 안데스 산맥의 경치를 구경하며, 남들이 해볼 수 없는 3일간의 기행을 해보는 건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쿠스코-푸노 여행기는 총 8부로 연재됩니다. 

현재 페루에 체류 중입니다. 

본 기사는 중남미 동호회 "아미고스(http://www.amigos.co.kr)에 칼럼으로도 게재됩니다.

덧붙이는 글 쿠스코-푸노 여행기는 총 8부로 연재됩니다. 

현재 페루에 체류 중입니다. 

본 기사는 중남미 동호회 "아미고스(http://www.amigos.co.kr)에 칼럼으로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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