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 부호가 된 '마오쩌둥'

[데일리차이나] 마오쩌둥 사망 29주년에 부쳐

등록 2005.09.09 11:30수정 2005.09.09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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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상징 톈안먼(天安門)에 걸려 있는 마오쩌둥(毛澤東) 사진 좌우로 걸려 있는 '중화인민공화국만세'와 '세계인민대단결만세'의 문구는 마오가 사망한 9월 9일을 기념하여 아홉 글자씩 되어 있다.

덩샤오핑(鄧小平)은 한 영국기자의 질문에 톈안먼의 마오사진은 영원히 그곳에 걸려있을 것이라고 대답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마오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톈안먼에 걸려 있는 마오쩌둥 사진. 그 옆의 글자 수가 그가 죽은 9월 9일을 알려주고 있다.
톈안먼에 걸려 있는 마오쩌둥 사진. 그 옆의 글자 수가 그가 죽은 9월 9일을 알려주고 있다.김대오
톈안먼에서 광장을 가로지르면 마오 주석 기념관이 있는데 그곳 매표소에는 사시사철 마오를 기리는 중국 인민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서양열강의 침탈과 일제의 반식민 지배체제를 극복하고 중국 인민에게 통일된 조국을 다시 건설해준 지도자로서 마오쩌둥은 중국인들에게 여전히 위대한 인물이다.

1949년 10월 1일 마오가 떨리는 음성으로 톈안먼 위에 우뚝 서서 건국을 선언했을 때 광장에 모여 선 수많은 군중들이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던 그날의 감동과 환희는 여전히 중국인들의 가슴 속에 남아 있는 듯하다.

'10년 동란'이라 불리는 문화대혁명(1966-1976년)의 끝 자락인 1976년 9월 9일 0시 10분, 마오쩌둥은 파란만장한 83세의 인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그 소식이 그날 오후 4시쯤 알려졌을 때 많은 중국인들이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의 의미는 마오쩌둥에 대한 평가만큼이나 대단히 복잡한 것이었다.

장기간 개인숭배 분위기 속에서 맹목적으로 눈물을 흘린 이도 있었을 것이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공포정치 하에서 자신의 변함 없는 계급성을 증명하기 위해 과장된 울음을 터뜨린 이도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진정한 슬픔보다 잔혹한 정치적 억압에 놓인 사람들의 본능적인 정치적 자기방어 행위였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 울음소리는 한 달 동안 이어졌으며 그 한 달 동안 모든 오락행위가 금지되었다. 심지어 예정된 결혼식이나 연회들도 10월 9일 이후로 다 미뤄졌다.


가장 큰 울음소리가 중국을 진동시킨 날은 전국적으로 마오쩌둥의 사망 추도대회가 열린 9월 18일이었다. 이 날 오후 3시 톈안먼광장에서 거행된 추도대회는 전국에 생중계되었으며 각 성, 시, 현급의 군부대, 공장, 학교, 병원들도 추도회장을 만들고 추도행사에 동참했다.

뜨거운 가을 햇살 아래 몇 시간이나 거행된 추도회에서 열사병으로 쓰러지는 이들도 많았다. 이날 모든 공장, 학교, 상점은 문을 닫았고 텅 빈 거리에는 무거운 장송곡만이 울려 퍼졌다.


전국 곳곳에 마오의 영혼을 기리는 예배당이 수도 없이 들어섰으며 그곳은 홍위병들이 24시간 교대로 보초를 섰다. TV와 극장에서는 마오의 업적을 기리는 역사 다큐멘터리가 연일 방영되었다.

그렇게 한 달 동안 계속된 추도행사는 전제시대 황제가 지하궁전과 호화로운 자신의 사후세계를 준비했던 것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마오쩌둥은 과학기술의 힘을 빌어 지금도 마오 주석 기념관에 방부처리되어 누워 있다.

마오쩌둥은 중국인들에게 여전히 애증이 교차하는 인물로 남아 있다. 중국공산당 창당과 항일투쟁에서부터 건국까지의 위대한 정치적 업적은 여전히 높게 평가받지만 사회주의 초기 인민공사와 대약진운동의 실패와 문화대혁명의 광기로 인한 파괴는 경제적으로 중국을 20-30년 후퇴하게 했다는 지적도 많다.

"공(功)이 여섯, 일곱이고 과(過)가 셋, 넷이다"는 것이 마오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지만 베이징에서 만난 한 택시기사는 마오를 '정신분열자'라고 신랄하게 비판한 반면 공원에서 만난 한 노인은 "가난했지만 마오의 시대가 좋았다"며 지금도 마오쩌둥 어록을 읽으며 존경심을 갖는다고 할 정도로 평가가 엇갈린다.

베이징 따산즈(大山子)의 전시관에서 만난 현대미술작가는 이렇게 마오를 평가했다.

"마오쩌둥은 이제 중국인에게 하나의 부호로 남아 있다. 대외적으로는 중국을 상징하고 중국인들에게는 힘들었던 지난 시련의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부호다. 좌우 논리 혹은 경제와 정치의 논리로 마오쩌둥을 재단하는 것에 반대한다. 환희, 설움, 우상숭배, 굴욕, 비겁 등 수많은 메타포들이 '마오쩌둥' 이라는 부호 속에 녹아 있다."

덧붙이는 글 | [데일리차이나]는 그날 그날의 중국 근현대 소사(小史)를 전하며 중국 역사 속의 오늘의 의미를 되새겨 보려고 합니다. 이 글은 국정넷포터에도 함께 실립니다.

덧붙이는 글 [데일리차이나]는 그날 그날의 중국 근현대 소사(小史)를 전하며 중국 역사 속의 오늘의 의미를 되새겨 보려고 합니다. 이 글은 국정넷포터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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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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