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한가운데 7일장이 서다

매주 한 번, 그곳에선 사람의 정이 피어난다

등록 2005.09.10 15:27수정 2005.09.10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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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아파트의 느낌은 현대적이다. 그곳에선 도시적 세련미가 넘친다. 그 아파트가 고층 아파트이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에 비하면 5일장이나 7일장과 같은 우리의 장터는 그 느낌이 전통적이다. 그곳엔 시골스런 인간미가 넘친다.


언뜻 보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그 둘이 일주일에 한번씩 나란히 함께 자리를 한다. 내가 사는 곳에서 지척의 거리에 있는 서울 천호동의 우성아파트가 바로 그런 곳 중 하나다. 매주 토요일이면 아파트의 한가운데 시장이 둥지를 틀고 좌판이 펼쳐진다. 토요일인 바로 오늘, 9월 10일에도 그 둘이 함께 하는 시간은 예외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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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동과 동 사이를 오가는 길목에 시장이 자리를 잡는다. 아파트가 내려다보는 아스팔트길엔 일주일 내내 무심히 오가는 자동차가 그곳의 주인이었지만 토요일이 되면 그곳에선 시장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삶이 피어오른다. 오늘따라 하늘이 유난히 맑고, 구름도 싱그럽다. 장사가 잘 되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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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사이엔 물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장은 세련미는 없지만 대신 인간미를 갖추고 있다. 사람들이 물건을 사이에 놓고 주고받는 대화를 듣다보면 그 사이에 삶의 훈기가 가득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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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어물전이다. 파는 아저씨와 사는 사람들 사이에 싱싱한 바다가 한가득 펼쳐졌다. 아저씨가 그 바다를 손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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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아저씨가 생선을 다듬을 때 젊은 아낙은 머리를 더 잘라내도 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아저씨는 머리를 요만큼 넣어야 맛있다고 한다. 아저씨는 그냥 생선을 다듬어주는 것이 아니라 맛까지 챙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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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한쪽 곁의 포장마차에선 부부가 손님 맞을 준비에 한창이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사람들에게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을 한다. 은행잎이 노랗게 익어가는 가을에 맞춘 듯, 포장마차도 가을색으로 치장을 하고 있었다. 포장마차의 부부는 오늘 가을을 파는 것이며, 사람들은 그곳에서 가을의 맛에 취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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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아이는 시장에서 아주머니가 챙겨준 돈가스를 먹는다. 아주머니의 돈가스엔 엄마의 사랑이 녹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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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더덕은 강원도에서부터 이곳까지 사람들을 찾아왔다. 오늘 이 더덕을 사간 사람은 더덕을 먹는 것이 아니라 강원도의 힘을 먹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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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아저씨는 이렇게 외쳤다. "자, 살아 숨쉬는 오이요. 살아 숨쉬는 오이!" 오이를 건네든 아주머니는 오이를 살펴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어머, 싱싱하기도 해라. 정말 오이가 살아 숨쉬네." 신이 난 아저씨는 다시 이렇게 말했다. "그럼요. 아직 꼬다리도 떨어지질 않았잖아요. 오늘 새벽에 따서 갖고 나온 거예요." 오늘 이곳에서 오이를 사간 사람들은 그냥 오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오이를 호흡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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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잠시 손님이 뜸한 사이 담배 한대를 피워 문다. 손님이 오면 신나고, 잠깐 잠깐의 휴식에 한대 피는 담배는 그것대로 꿀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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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우리의 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팔고 사는 거래의 장소가 아니다. 그곳은 도란도란 얘기를 주고받으며 정을 나누는 곳이다. 파를 다듬는 두 할머니의 사이에서 따뜻하게 정이 피어오른다. 갑자기 아파트 전체에서 정이 넘쳐나는 느낌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동시에 게재했습니다. 블로그-->김동원의 글터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에 동시에 게재했습니다. 블로그-->김동원의 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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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갖고 돌아다니면 세상의 온갖 것들이 말을 걸어온다. 나는 그때마다 사진을 찍고 그들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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