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린 그림 대로 세상에 나온 손자

등록 2005.09.14 00:47수정 2005.09.14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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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며늘아이 '신지원'이 결혼하고 3년만에 임신했다는 소식 듣고 하도 반갑고, 고맙고, 기특해서 "무슨 선물을 하나 해야 될텐데…" 하고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뭐 마땅한 것이 없더라구요.


어느 재벌 시아버지 같았으면 '현찰' 다발이나 듬뿍 두 팔에 안겨 주었을텐데 기껏해야 '환쟁이' 시아버지라 선물한다는 것이 째째하게 하얀 켄트지 위에 예쁜 남자아이 하나, 계집아이 하나 이렇게 두 장을 그려 멋지게 표구해서 주었답니다.

그래도 내 딴에는 여느 그림보다 더 정성을 다해 예쁘게, 정말 예쁘게 정성을 다해 그렸답니다. 늘상 아이들이 보는 동화책 그림을 그리는 게 제가 하는 일이라 처음에는 쉽게 그릴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출판사에서 청탁 받는 그림 이상으로 신경이 더 써져서 힘들더라구요.

a 사내아이를 그린 그림과 계집아이를 그린 그림.

사내아이를 그린 그림과 계집아이를 그린 그림. ⓒ 강인춘

파스텔로 채색된 사내녀석 그림 한쪽편에다 "요렇게 생긴 꼬마 어떠니? 예쁜 생각 많이 많이 해라. -아기와 함께 있는 지원에게"라고, 또 계집아이 그림 한쪽에도, "요렇게 생긴 계집애 어떠니? 예쁜 생각 많이 많이 해라. -아가와 함께 있는 지원에게" 이렇게 썼습니다.

a 아들과 며누리. 둘 사이가 참 보기좋다.

아들과 며누리. 둘 사이가 참 보기좋다. ⓒ 강인춘

며늘아이는 너무너무 좋아하면서 그림을 받아들고 자기 집에 미리 준비해 둔 아기 옷장 위에다 두 장 모두 나란히 세워 놓았답니다. 며늘아이가 저렇게 좋아하는 걸 보고 저도 마음이 흡족했습니다. 원래부터 심성이 착한 며늘아이 성격이라 그 어떤 선물보다도 시아버지가 주시는 그림 선물이 더 마음에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후 며늘아이는 정말 태교하듯이 매일매일 그림을 들여다보면서 예쁜 아가 낳도록 기원했답니다.

그런데 왜 남자아이, 여자아이 이렇게 두 장을 그렸냐구요? 글쎄 그게 하늘이 점지해주는 거라, 계집애를 줄지, 사내애를 줄지 누가 알겠어요. 그래서 계집아이 그림 한 장, 사내아이 그림 한 장, 이렇게 두 장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하여튼 그 해 12월에 며늘아이는 내가 그린 그림처럼 건강한 사내녀석을 낳았습니다. 지금 벌써 만 3년8개월이나 지났습니다. 제법 자기네 아빠, 엄마한테도 떼를 써보기도하고 서투른 말로 이것저것 귀찮을 정도로 묻기도 한답니다.

a 그림같이 훌쩍 커버린 손자녀석이다.

그림같이 훌쩍 커버린 손자녀석이다. ⓒ 강인춘

"하부지! 할무니! 이 그림 누구예요?"


지금 손자녀석은 제 엄마 뱃속에 있을 때 그려준 자기 그림보고 누구냐고 묻고 있습니다. 참 며칠 전 아들 집에 가서 두 그림 중 계집애를 그린 그림이 이젠 필요 없을테니 도로 가져 가겠다고 하니까 아들녀석과 며늘아이가 결사적으로 내 등을 밀더라구요.

"아버님 안돼요. 그림에 있는 두 아이가 항상 같이 있어야지, 서로 떨어져 있으면 얼마나 외롭겠어요?"

얘들이 또또 무슨 속셈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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