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지친 당신을 위해 뭘 해줄까

대한민국 여성분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등록 2005.09.18 07:14수정 2005.09.18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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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추석입니다. 아내는 어제 하루 종일 큰집에서 일을 했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돌본다는 핑계로 집에서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었습니다. 이런 저를 아내는 속으로 욕께나 했을 겁니다.


아내는 어제 늦게야 집에 돌아왔습니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오자마자 주방부터 찾던 아내는 순간 깜짝 놀랍니다. 주방이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무엇보다 제가 한 설거지가 맘에 든 모양입니다. 피로에 찌든 얼굴이 활짝 펴집니다.

벼룩도 낯짝이 있다고 했던가요? 제가 꼭 그런 경우였습니다. 솔직히 아내에게 미안했거든요. 우리 집은 대가족인데도 올해 음식 준비하는 사람이야 뻔했죠. 큰 형수님과 아내, 이렇게 둘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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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찬

둘째 형수님은 방앗간을 하기 때문에 명절이면 오히려 더 바쁘십니다. 셋째 형수님 내외분은 고향인 충청도에서 깻잎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깻잎 농사가 얼마나 힘듭니까. 잠시만 비워도 싹이 너무 솟아 깻잎이 못쓰게 되거든요. 그런데다 셋째 형님까지 몸이 좋지 않으신 모양입니다. 일을 하다가 가슴을 다쳤다고 하시거든요.

넷째 형수님은 한 달 전에 수술을 받았습니다. 넷째 형님 말로는 괜찮다고 하는데 지난 5월달에 뵌 형수님 안색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섭니다. 그것도 모르고 아이들이 말썽만 피워댔으니 미안할 뿐입니다.

어제 이른 새벽에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어머니는 넷째 형수님의 수술 소식을 며칠 전에야 알았다고 하셨습니다. 하긴 누가 어머니에게 동기간의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해주겠습니까. 어머니도 무척 편찮으시거든요. 바깥출입을 못하신 지 벌써 몇 달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아직도 집안 걱정뿐입니다. 아주 사소한 일까지 제게 말씀하십니다. 벌초 때문에 셋째 형님이 고생했다는 둥 휴가 나온 조카가 벌초하다가 왕벌에 쏘였다는 둥 이런저런 말씀을 하십니다. 저는 가슴이 뜨끔합니다. 이번 추석에는 벌초하러 가질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큰 형수님 말씀도 하십니다. 형편도 어려운데 뭘 그렇게 많이 준비하냐는 것입니다. 나물 한가지면 족하다는 게 어머니 생각이십니다. 날씨가 더울 때는 특히 더 그렇다고 했습니다. 모두 낭비라는 것입니다. 근검절약해서 어떻게든 잘 살아야한다고 하십니다.


어머니께서는 제 걱정도 빼놓지 않으십니다. 아파트 분양대금은 잘 들어가고 있느냐, 새끼들은 잘 크고 있느냐, 무엇보다도 건강을 잘 챙겨야 한다…. 어머니의 말씀은 언제 끝날지 모를 정도로 길게 이어집니다. 저는 어머니에게 최대한 다정스럽게 말합니다.

"어머니, 우리들 걱정은 하지 마세요. 어머니만 건강하시면 돼요. 우리 형제로서는 그보다 더 큰 기쁨이 없어요."

어머니가 그제야 전화를 끊습니다. 저는 한동안 멍하니 서 있습니다. 마음이 여간 애잔한 게 아닙니다. 평생 호강 한 번 해보지 못한 어머니이십니다. 어머니께서는 병든 지아비와 자식 7남매를 키우기 위해 갖은 고생을 다하셨습니다. 그런 어머니였건만 아직도 저는 불효자로 남아있습니다.

이번에 음식 만들면서 아내가 고생을 많이 했나 봅니다. 손등을 제게 보여줍니다. 오징어튀김을 하다가 손등을 데었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자기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큰 형수님은 얼굴에 기름이 튀어서 제법 상처가 크다고 했습니다. 아내는 큰 형수님과 약속을 했다고 합니다. 내년부터는 절대 오징어튀김은 만들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저는 아내가 가지고 온 검은 비닐봉지를 열었습니다. 송편과 시루떡, 튀긴 음식 등이 가득 들어있습니다. 이 많은 음식을 만드느라 큰 형수님과 아내가 고생을 했습니다. 어디 큰 형수님과 아내뿐이겠습니까. 대한민국 여자들이라면 모두 이런 고생을 했을 겁니다.

오늘 저녁 때는 지친 아내를 위해 뭐라도 해주고 싶습니다. <오마이뉴스> 가족 여러분, 대한민국 여성 여러분,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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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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