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청계천과 '개털' 상인들

[현장 탐방] 개통식 D-2, 22개의 청계천 다리를 걷다

등록 2005.09.29 07:17수정 2005.09.29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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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27일 오후 4시30분에서 밤 9시30분까지 청계천을 미리 가봤다. 광통교에서 바라본 청계천.

27일 오후 4시30분에서 밤 9시30분까지 청계천을 미리 가봤다. 광통교에서 바라본 청계천. ⓒ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대도시의 중앙,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물길이 뚫린다.

서울 종로구 태평로 동아일보사 앞 청계광장부터 마장동 신답철교까지(청계 1가에서 9가) 5.84km를 흐르는 '청계천'이 그 주인공. 이틀 뒤(10월 1일)면 매일 한강으로부터 끌어올린 12만톤 물이 깊이 40cm, 폭 6~8m의 물길을 따라 흐르게 된다.

기자는 27일 오후 4시30분부터 약 5시간 동안 전 국민의 관심 속에 열리게 되는 청계천을 걸어봤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밝은 표정으로 새롭게 맞이할 서울의 명물을 보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쏟아지는 찬사 "물길 뚫리니 속이 다 시원"

a 28일 오후 한 시민이 좁은 청계천 주변 인도를 걸어가고 있다.

28일 오후 한 시민이 좁은 청계천 주변 인도를 걸어가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청계천의 물길은 태평로 '청계광장'부터 시작한다. 돌 조각으로 포장된 광장은 청계천의 상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곳엔 10월 1일 개통식 '청계천 새물맞이' 축제의 무대 준비가 한창이다. 행사 총연출을 맡은 한중구 하나로기획 전무는 "역사적인 행사를 맡게 돼 영광"이라며 "다른 행사와 달리 청계천이 마르지 않는 한 (누가 행사를 기획했는지) 기억될 것이기 때문에 자부심을 더 느낀다"고 활짝 웃었다.

물줄기의 흐름을 따라 발을 내디디니 상쾌한 물내음이 느껴진다. 조금 걸어 내려가니 첫번째 다리인 모전교가 보인다. 이곳에서 40여명의 시민들이 신기하다는 듯 청계천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광진구 구의동에서 청계천을 보기 위해 왔다는 연세가 지긋한 김흥기(73)씨는 '옛날의 청계천'에 대해 "주로 빈민촌이 즐비했던 기억"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그 이후 고가도로가 세워져 보기 흉했는데 이렇게 물길이 뚫리니 속이 다 시원하다"며 "청계 4가부터 걸어왔는데 기분이 좋다"고 밝혔다.

곧 신덕왕후의 옛 무덤 터에 있던 돌들을 옮겨 만들었다는 '광통교'에 다다랐다. 서울시가 22개의 청계천 다리 중 단연 눈에 띈다고 강조하는 광통교는 원래 있던 자리에서 150m 정도 옮겨졌다. 이 때문에 "문화재 훼손" 논란이 일었던 것도 사실.


오후 4시55분, 세번째 다리인 광교 옆에는 청계광장 이후 처음으로 청계천으로 내려가는 진입계단이 설치돼 있다. 아직까지는 청계천 변에는 내려갈 수 없도록 돼 있다. 하지만 막힌 진입로를 넘어 내려가는 시민들도 많이 보였다. 김영철(43·은평구 불광동)씨는 "위에서만 볼 수 없어 내려왔다"며 "시간나는 대로 자주 놀러올 것 같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규모인 길이 186m를 자랑하는 도자벽화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를 지나 도착한 장통교 위에서 연인인 듯한 젊은이들이 사진찍기에 한창이다. 근처 외국어학원을 같이 다닌다는 윤석(23)씨와 김아람(22)씨는 "학원 끝난 뒤 솔직히 갈 곳이 한정돼 있었는데 이제 청계천에 올 수 있겠다"며 활짝 웃었다.

청계천 상권이 뜬다?

a 28일 오후 청계천 복원공사 마무리 작업이 한창인 가운데 잠자리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28일 오후 청계천 복원공사 마무리 작업이 한창인 가운데 잠자리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오후 6시, 여섯번째 다리인 수표교를 지나 관수교로 향하고 있다. 최근 청계천 상권이 살아난다는 기사들이 연일 나오고 있다. 과연 그럴까?

"청계천은 좋다. 하지만 우린 죽어간다. 임대료조차 못 번다. 예전엔 직원이라도 썼는데 지금은 엄두도 낼 수 없다. 공무원들은 책상에 앉아 일해서 실제로 뭐가 문제인지 모른다. 차조차 주차할 수 없으니…."

30년 동안 공구상을 해왔다는 임아무개(64)씨의 볼멘소리다. 그는 "데모를 해봤자 우리만 힘이 빠진다"며 "사실 협조를 잘 해줬는데 아무래도 서울시에게 당한 것 같다"고 흥분했다. 그는 업종을 바꾸지 않는 한 앞으로도 희망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인사를 하고 나가는 기자에게 "아침부터 두세시까지 천원 한 장 못 버니…"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처음에는 공구상이라는 특성 때문이겠지 싶었다. 하지만 이후 만난 상인들도 하나같이 "청계천 상권은 죽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서울시에서 2007년까지 완공하겠다고 준비하고 있는 '문정동 대체상가'에 대한 불안함도 크다. 계속해서 상가에 대한 협상이 늦어지고 있다는 것.

한 상인은 "이러다가 2009년 넘어서까지 완공이 안될 수도 있다는 소문이 돈다"고 말했다. 그나마 이주대상은 청계천변 전체 상인 중 10%에 불과하다.

오후 6시30분, 30여분 전부터 청계천변에 노을이 지기 시작하더니 제법 어두워졌다. 청계천의 야간조명이 하나 둘씩 들어오기 시작한다.

상인들을 만나다보니 열세번째 다리인 전태일다리(버들다리)에 도착했다. 전 열사가 몸을 불살랐던 평화시장 입구가 눈에 들어온다. 전태일다리와 그 주변에 꾸며질 '전태일거리' 준비가 한창이다.

a 28일 오후 복원공사 마무리 작업이 한창인 청계천. 왼쪽으로 청계천의 명물 중 하나인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가 보인다. 이 벽화의 길이는 무려 186m로 도자 벽화로는 세계 최대 규모라고 한다.

28일 오후 복원공사 마무리 작업이 한창인 청계천. 왼쪽으로 청계천의 명물 중 하나인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가 보인다. 이 벽화의 길이는 무려 186m로 도자 벽화로는 세계 최대 규모라고 한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어서 가본 헌책방. '청계천 뚫리니까 좀 나아지지 않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35년 간 헌책방 운영한 임원영(57)씨는 "개털이지… 먹고살기 힘들어"라며 "(고가도로 허물어지기 시작한 뒤) 지난 3년간 굶었다고 보면 된다"라고 강조했다.

모두들 나아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의류상가조차 사정은 마찬가지. 광장시장과 평화시장 등에서 8년간 옷가게를 운영하다가 현재는 점원을 한다는 정윤아(28)씨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며 "두산타워나 밀리오레같은 대형 쇼핑몰은 모를까, 시장엔 파리만 날린다"고 하소연했다.

물론 청계천변에 새로 둥지를 튼 외식업체나 카페, 술집들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며 손님맞이를 준비에 한창이다. 청계천 주변의 지가가 급상승하는 가운데 청계천 특수를 선점하기 위해 업체들의 경쟁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영세상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하류 쪽, 주민들의 휴식처

a 청계천 변의 황혼녘 모습.

청계천 변의 황혼녘 모습. ⓒ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저녁 8시20분, 동대문시장을 등뒤로 보낸 뒤 만물 '도깨비 시장'으로 유명했던 황학동에 도착했다. 왁자지껄한 노점상과 북적이던 사람들은 다 어디 갔는지, 대부분 상가의 셔터는 내려져 있다.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도깨비 시장.

밤 9시, 마치 가운데 등대가 서있는 듯한 스물한번째 두물다리에 도착했다. 상권이 형성돼 있던 청계천 7가까지와는 다르게 8가부터는 주거지역이 청계천 근처에 형성돼 있다. 한적해 보이는 다리 주변. 산책을 나온 시민들이 꽤 있다.

어두운 청계천가 앞에 환하게 빛나는 곳이 보인다. 바로 '청계천 문화전시관'. 그야말로 청계천의 모든 정보가 담겨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만난 조맹순(55)씨는 지난 1974년 복개공사가 한창일 때 이곳 전시관이 위치한 마장동에 이사와 현재까지 살고 있다.

"그 때 고가도로를 막 올리더니 어느새 이렇게 청계천이 만들어졌다. 사실 이번 여름 피서는 '두물다리' 위에서 보내다시피 했다.(웃음)"

조씨처럼 하류 쪽의 청계천은 주민들의 휴식처가 돼 있었다. 유동인구가 많은 상류와는 사뭇 다른 모습.

스물두번째이자 마지막다리인 고산자교에 다다른 시간은 정확히 밤 9시30분. 청계천 1가부터 9가까지 꼬박 5시간이 걸렸다.

청계 1가~9가, 꼬박 5시간 걸리다

a 청계천의 야경. 두물다리에서 바라본 '청계천 문화전시관'

청계천의 야경. 두물다리에서 바라본 '청계천 문화전시관' ⓒ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이날 만난 청계천은 확실히 아름다웠다. 누가 이런 대도시에 없던 물줄기를 흐르게 할 수 있었겠나. 상인들을 포함해 대부분의 시민들이 '청계천 새물맞이'를 환영했다.

하지만 걷는 내내 좁은 보도, 장애인들을 위한 경사로 등 시설 부족 등은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상인들의 한숨소리도 안타까웠다.

그래서일까. 광화문으로 돌아오는 길, 장통교 위에서 만난 고3 학생 이선재씨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청계천이 만들어진 것은 보기 좋아요. 하지만 가공적이고 인위적이라는 느낌입니다. 예쁘게만 꾸미려 한 것 같죠. 있는 그대로 살릴 순 없었는지. 만약에 외국 친구가 있다면 별로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육교 위 노점상 아주머니는 어디로 갔을까?
오간수교 위에서 떠올린 단상

▲ 지난 2003년 현 오간수교 자리 위에 있던 육교 위에서 만난 한 노점상인.
ⓒ김진석

늘 인파로 붐비는 동대문. 청계천 열네번째 다리인 오간수교 위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본다.

'예전엔 이 위에 고가도로가 있었지!'

바로 오간수교 위에는 육교가 있었다. 그 위에 20여명의 노점상들이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기자는 지난 2003년 여름, 청계고가도로 철거 직전 청계천 근처 취재를 벌인 바 있다. 많은 노점상들을 만났다. 그런데 유난히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오간수교 위 육교에 발 디딜틈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던 노점상인들이다.

"오랜 세월 이곳을 지켰던 나이든 사람들이 당장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죠?"

30년 이상 청계 6가 육교를 지켰다는 한 상인이 눈물 흘리며 말하던 모습. 그 때의 느낌이 생생하다. 이들은 대부분 동대문운동장이나 다른 지역으로 몰린 상황.

35년간 평화시장 앞에서 떡을 팔아온 임상의(72) 할머니는 "육교 위 사람들, 저기 종로통이나 동대문운동장에 갔는데, 굶어 죽어간다고 난리라더라"며 "하루 일해도 돈 만원도 못 가지고 들어가는데…"라고 말했다.

동대문운동장에서 만난 한 노점상인 김기연(52)씨는 "이렇게 운동장 안으로 몰아넣고 나 몰라라 하는 서울시가 원망스럽다"면서도 "어떻게 하겠나, 할 수 있는 게 없으니"라고 한숨 쉬었다.

27일 저녁 오간수교 위, 유난히 떠오르는 그들의 주름진 모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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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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