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산수유 열매가 익어가는 계절

<바위나리와 떠난 여행 - 13> 때가 되면 피고, 때가 되면 익어가는 것을

등록 2005.10.01 23:11수정 2005.10.02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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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갠 뒤 카메라를 들고 찾아간 공원에서 빨갛게 익어가는 산수유 열매를 만났습니다. 빗방울을 하나씩 매달고 있는 모습이 참 앙증맞게 생겼습니다. 이른 봄부터 성급하게 꽃부터 피우던 모습과는 달리 꽤나 늦었습니다.


가을비 내린 뒤 산수유 열매1
가을비 내린 뒤 산수유 열매1이기원
겨울의 찬바람이 사라졌다 싶은 이른 봄을 제일 먼저 알리는 전령사가 산수유 꽃입니다. 누굴 닮아 성질이 그리 급한지 잎이 돋기도 전에 꽃부터 피어납니다. 산수유가 앞장서 꽃을 피운 한참 뒤에야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도 피어납니다.

가을비 내린 뒤 산수유 열매2
가을비 내린 뒤 산수유 열매2이기원
하지만 그 뿐입니다. 꽃이 먼저 피었다고 먼저 열매 맺고 먼저 익어가는 건 아닙니다. 뒤늦게 핀 복숭아꽃 살구꽃이 여름나기를 하면서 탐스럽게 살이 붙어 달콤하게 익어간 지 꽤나 긴 기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이제야 산수유 열매가 녹색에서 노란색으로 노란색에서 빨간색으로 조금씩 익어갑니다.

그렇다고 복숭아나 살구처럼 탐스러운 열매도 아닙니다. 작고 앙증맞기는 하지만 탐스러운 모습과는 영 어울리지 않습니다. 먼저 꽃을 피웠으니 남들보다 더 긴 기간동안 햇빛과 양분을 흡수할 수 있었을 텐데 어째 저리 작은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봄비에 젖은 산수유 꽃
봄비에 젖은 산수유 꽃이기원
사람으로 따진다면 구박받고 손가락질 받기 딱 알맞은 모습입니다. 남들보다 먼저 두각을 나타내서 잔뜩 기대만 부풀게 하다가 조금씩 뒤떨어져 맥 빠지게 하더니, 종국에는 시답지 않은 결과만 가져온 꼴입니다.

꽃 빨리 핀다고 열매가 빨리 익기를 바라는 건 인간의 조급한 마음일 뿐입니다. 꽃 먼저 피웠다고 열매가 먼저 익어야할 이유는 없기 때문입니다. 먼저 하고 빨리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때가 되어 피어나고 때가 되어 익어가는 게 자연의 순리입니다.


문득 우리네 삶을 돌아보면 먼저라는 주술에 얽매어 살고 있는 거 같습니다. 남들보다 먼저 해야 안심이 되는 삶을 사는 이들이 많습니다.

때로는 작고 앙증맞게 익어가는 산수유 열매에 눈길도 주어보고 작고 힘은 없지만 질기게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살가운 눈길을 주어보는 계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힘만 믿고 막말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이들을 보면 더욱 그런 마음이 듭니다.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 http://www.giweon.com 에도 실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제 홈페이지 http://www.giweon.com 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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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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