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 정승도 저 비둘기 모녀 보면 웃을까?

[사진] 반구정과 모녀 비둘기

등록 2005.10.03 21:48수정 2005.10.0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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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임진강이 내려다 보이는 반구정의 절경은 아름답습니다.

임진강이 내려다 보이는 반구정의 절경은 아름답습니다. ⓒ 한성희

황희 정승이 말년에 임진강으로 날아드는 갈매기를 벗삼아 시를 짓고 여생을 보냈던 반구정(파주시 문산읍 사목리)에 갔습니다. 임진강과 어우러지는 절경에 자리잡은 정자지요.


a '반구정 중수기'를 무심히 읽고 있었습니다.

'반구정 중수기'를 무심히 읽고 있었습니다. ⓒ 한성희

반구정에서 임진강을 내려다보며 일요일(2일) 한때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신발을 벗고 정자에 들어가 '반구정 중수기'를 올려다 보고 있을 때였습니다.

"아, 저기 비둘기 봐라!"

a 어미 비둘기가 나타났습니다.

어미 비둘기가 나타났습니다. ⓒ 한성희

나도 모르게 소리쳤습니다. 비둘기 한 마리가 중수기 편액 뒤에서 고개를 내밀고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비둘기가 설마 편액 뒤에 집을 짓고 있을 거라고 생각을 못했습니다.

잠시 후에 비둘기는 고개를 돌리더니 옆에 있는 누구를 부르는 듯했습니다. 이윽고 고개를 빼꼼이 내밀고 나타난 것은 아기 비둘기. 귀여운 눈망울을 또릿또릿 돌려댑니다. 정자 안의 사람들은 환성을 지르고 사진을 찍느라고 바빠졌습니다.

a 호기심이 가득한 아기 비둘기가 눈망울을 굴리며 고개를 내밉니다.

호기심이 가득한 아기 비둘기가 눈망울을 굴리며 고개를 내밉니다. ⓒ 한성희

a "엄마! 나도 볼래."

"엄마! 나도 볼래." ⓒ 한성희

제 어미를 한 번 쳐다보고 겁도 없이 사람을 귀여운 눈망울을 굴리며 내려다보는 아기 비둘기는 앙증맞기 이를 데 없었지요. 편액 뒤로 비죽비죽 나온 검불들을 보니 비둘기 모녀는 반구정에 걸린 편액 뒤에 집을 지은 것 같습니다.


a 아무 걱정 없이 사이좋게 내려다 보는 비둘기 모녀가 예쁘죠?

아무 걱정 없이 사이좋게 내려다 보는 비둘기 모녀가 예쁘죠? ⓒ 한성희

모녀 비둘기 두 마리가 맘 놓고 사람 구경을 합니다. 수컷인지 암컷인지 확신도 없이 모녀 비둘기일 거라고 믿어 버립니다. 문득 황희 정승이 저 비둘기 모녀를 보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종들의 싸움에 하소연하는 종에게 "네 말도 옳다, 네 말도 옳다" 말했다가 지켜보던 부인이 기가 막혀 "다 옳다 하면 어떡합니까?" 항의하자 "부인 말도 옳소" 했던 분입니다.

a 돌계단을 딛고 반구정에 올라서면 임진강이 밑에서 흐르지요.

돌계단을 딛고 반구정에 올라서면 임진강이 밑에서 흐르지요. ⓒ 한성희

아마도 황희 정승께서 비둘기 모녀를 발견한다면 비둘기를 보러 더 자주 반구정에 올랐겠지요. 아기 비둘기가 자라며 재롱 떠는 모습에 손주를 보는 것처럼 너그러운 웃음을 짓고 즐거워하는 노정승의 모습이 보입니다.


a 한참 동안 비둘기 모녀는 편액 위에 앉아 사람 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참 동안 비둘기 모녀는 편액 위에 앉아 사람 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 한성희

그 모녀 비둘기는 참 명당자리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갈매기가 물을 차고 노닐고 명정승이 시를 읊던 정자에 어떻게 둥지를 틀 생각을 했을까요. 도시의 비둘기처럼 더럽지도 않고 깨끗한 걸 보니 공기 좋은 곳에서 자라는 비둘기 모녀는 참 예뻤습니다.

임진강은 햇볕에 일렁거리며 반짝이는 물비늘을 틀고 있습니다. 임진각 건너는 민통선 지역이라 아직도 여기는 군인들이 초소를 지킵니다. 반구정 앞 임진강변도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지요.

a 정자 바로 밑에 임진강이 흐르고 임진강변은 철조망으로 둘러쳐져 있습니다. 강 건너 민통선 지역도 철조망으로 둘러져 있지요.

정자 바로 밑에 임진강이 흐르고 임진강변은 철조망으로 둘러쳐져 있습니다. 강 건너 민통선 지역도 철조망으로 둘러져 있지요. ⓒ 한성희

모녀 비둘기를 보고 즐거워하다가 철조망과 반구정 밑 초소에 서 있는 군인을 보고 잠시 마음이 흐려집니다. 어려서부터 군부대와 탱크, 군인, 철조망을 보고 자란 내 눈에 아직도 저 철조망을 보면 무언가 속에서 소화가 되지 않은 것처럼 마음이 불편합니다. 이곳 철조망의 의미야 어떻든 철조망을 보면, 단절, 폐쇄, 차가운 공포, 속박 같은 단어들이 먼저 떠오릅니다.

비둘기는 날개가 있지만 인간은 걸어서 이동합니다. 몸 자체로 날아다닐 수 없습니다. 반구정이 세워졌던 그 옛날 500년 전 이곳은 철조망이 없었고 저 건너편에 갈 때 유유자적하게 배를 띄우고 건넜을 것입니다.

a 반구정 추녀 위로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평화롭게 흘러가네요. 아기 비둘기도 자라면 저 창공을 훨훨 날아 다니겠지요.

반구정 추녀 위로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평화롭게 흘러가네요. 아기 비둘기도 자라면 저 창공을 훨훨 날아 다니겠지요. ⓒ 한성희

굳이 지금 이 비둘기와 분단의 아픔을 거창하게 연관시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철조망과, 정자, 고요한 강물, 그리고 비둘기를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오른 것뿐이지요.

맑은 가을 하늘의 구름이 곱게 떠 있고 비둘기는 평화롭게 이곳에서 잘 자라겠지요. 일간 다시 한 번 와서 아기 비둘기가 얼마나 자랐는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저 예쁘고 귀여운 눈망울이 발길을 잡고 놓아 주기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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