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알에서 고라니 똥까지 품다

생명의 보고, 기록의 창고 '시화호 습지'

등록 2005.10.06 14:42수정 2005.10.06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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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도까지 이어진 12km의 시화호 방조제 위 도로 1차선은 토요일 오전인데 벌써 주차장이다. 인도에는 인라인을 타는 사람과 자전거를 타는 사람 그리고 걷는 사람 등 분주하다. 시화방조제가 막아지면서 이곳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으며, 주말이면 양쪽에 차를 대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바닷물이 시화호로 통하면서 수질이 개선되고 고기도 찾고 철새도 찾고, 사람도 몰리고 있다.

배수갑문만 열면 될 일을 왜 수십억 원을 들여 되지도 않는 수질개선대책을 만들고 세금을 낭비하였는지 모를 일이다. 이 덕에 시화호 남측에는 넓은 간석지가 형성되어 갈대를 비롯한 습지식물들이 자라고 있고, 북측에는 초원을 방불케 하는 초지(갈대, 염생식물 등)가 조성되었다.

잃는 것도 많지만 불행 중 다행이라던가, 얻은 것도 일부 있다. 안타까운 일은 이렇게 형성된 공간을 쓸모없이 '방치한 땅'으로 보고 '개발'을 하려는 측과 다시 '제2의 시화호'꼴을 만들지 말자면 새로 형성된 자원을 시민들에게 돌려주자 측 등 시화호에 형성된 습지에 대한 다른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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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적게 먹고 적게 싸는 방법밖에 없는가?

시화호그린투어링 참여자들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시화호를 한눈에 바라 볼 수 있는 곳은 반월공단 내 전망대이다. 시화호그린투어링은 맑고 푸른 생명의 터전 시화호 건설을 위해 시민들을 대상으로 월 1회 시화호, 인근 섬(어촌, 지금은 육지), 습지식물과 동물, 공룡알 화석지 등 시화호 일대를 탐사하는 프로그램이다.

전망대에서 시화호 북측 반월공단과 간석지는 물론 북측 화성 측 습지, 이제는 뭍이 되어버린 음도와 형도, 그리고 시화호가 한눈에 바라보인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자 초기 멀리 반월천과 인근 고층아파트가 공장굴뚝에서 내뿜는 연기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시화방조제를 지나 대부도 방아머리 선착장에 이르렀다. 이곳 방아머리 배수갑문은 죽음의 호수 시화호에 매일 2회씩 생명의 바닷물을 소통시키고 있다. 이곳에서 배를 타고 시화호를 가로질러 형도까지 갈 계획이다. 도중에 시화호 하류와 중류쯤에서 바닥에 갯벌을 채취해 상태를 살펴볼 것이다. 이번 9월 그린투어링에는 모두 20여 명이 참가했으며, 특히 원곡중학교에서 야생화 관찰을 비롯해 환경활동을 하는 학생들이 김혜경 선생님을 포함해 8명이나 참여했다.


갯벌상태를 조사하는 것은 아주 단순하다. 닻을 바닥에 집어넣은 후 끌어 올려 끝에 묻어 있는 갯벌의 상태를 보는 것이다. 전문시설을 갖추고 갯벌조사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참가자들이 시화호의 변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방아머리 선착장에서 출발해 10여 분 갔을까, 배를 세우고 선장은 5.5m의 수심에서 노련한 솜씨로 바닥에 갯벌을 긁어 올렸다. 연안의 갯벌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지만 지표면에서 깊이 들어갈수록 색깔이 검은색으로 변했다.


다시 한참을 올라와 중류쯤 수심 8.5m에서 긁어 올린 갯벌은 냄새가 심하게 나기 시작했다. 참가자들은 저마다 갯벌을 손을 찍어 냄새도 맡아보고 문질러도 보고, 학생들 중에는 열심히 기록을 하는 녀석들도 있다. 긁어 올린 뻘을 앞에 두고 뱃머리에 쪼그리고 앉아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열심히 기록하는 녀석들이 대견스럽다. 뭐라고 적었는지 살짝 훔쳐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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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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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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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상류)지면에서 1cm 뻘은 밝은 회색을 띄며 옛날의 뻘에 비해 깨끗한 갯벌이고 위쪽으로는 갯지렁이도 산다. 냄새도 나지 않는다. 30-40cm의 뻘은 어두운 색을 띄며, 위쪽 뻘보다 썩었으며 점차 깨끗해질 것으로 예상한다. 냄새는 나지 않는다. (중류)지면 70cm의 뻘은 어두운 색을 띠며 ②번 뻘보다 썩은 정도가 심하다. 이 뻘은 냄새가 난다.'

선장의 이야기에 의하면, 시화호 바닥에서 갯지렁이 등 저서식물들이 발견되기 시작한 것은 2년 전부터라고 한다. 해수유통후 2년 정도 지난 시점이다. 처음 해수가 유통되면서 시화호에 쌓인 흙(슬러지)과 섞이면서 시화호는 더욱 악화되었지만 점차 안정화되면서 하류쪽의 갯벌 표면에는 거의 정상상태로 회복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1시간 이상 배를 타고 올라간 상류 쪽에는 아직도 80cm 정도의 슬러지들이 쌓여있다고 한다. 갯벌상태를 한참 설명하던 선장이 갑자기 옆에 있던 학생들에게 물었다.

"너 어디 살아?"
"안산에 살아요."

"네가 먹고 싼 것들이 전부 시화호로 오는 거야."
"그럼 어떡해야 하지."

"적게 먹고 적게 싸면 돼, 바다는 정화능력이 있어, 엄마에게 세제 쓰지 말고 비누 사용하시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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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시화호 안에는 음도, 형도, 어도 등 3개의 유인도가 있다. 물막이 공사가 완료되면서 이름만 섬일 뿐 뭍에서 차를 타거나 걸어서 들어갈 수 있다. 이들은 낙지도 파고, 조개파고 물이 들면 고기를 잡던 갯벌이 죽음의 호수로 변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막힌 물길을 뚫리면서 다시 찾아오는 고기들도 봤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물을 들고 다시 시화호로 갈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났고, 어구들도 망가졌다. 더 근본적으로는 시화호에서 어로행위를 할 수 없다. 불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먹고살 만큼 마땅한 땅이 있는 것도 아니다.

형도는 우리말로 풀어본다면 '저울 섬'이라 한다. 안산을 비롯한 인근 주민들이 형도가 바닷물에 드러난 정도를 보고서 때(물때)를 가늠하고 갯일과 바닷일을 가늠했다고 한다. 그 형도가 지금은 채석으로 몰골이 험하게 속살을 드러내며 무너지고 있다. 멀지 않아 형태가 사라질지 모를 정도로.

지역 시민단체의 조사에 의하면, 시화호 남측 간석지에는 국제보호조인 검은머리갈매기와 장다리 물떼새를 포함해 연간 530여 종 17만여 마리가 도래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노루, 고라니, 멧돼지, 너구리, 족제비, 오소리, 토끼, 맹금류 등이 발견되고 있다.

이번 투어링에서도 습지 곳곳에 고라니 발자국과 똥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라니 이름을 듣고 날아다니는 새로 생각했던 한 아이에게 고라니의 모습을 말로 설명하던 어머니와 안내자는 '시화호생태전시관'에 전시된 박제 고라니를 보여주고서야 해방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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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공룡알 발견 '우연'일까?

형도에서 나와 개답공사가 한참 진행 중인 북측 간선지와 탄도호를 바라보며 이동해 포도로 유명한 화성시 송산에 이르러 각자 마련해온 점심을 먹었다. 오후 일정은 공룡알을 보러가는 일이다. 아이들이 가장 신나는 시간이다.

시화호 공룡알 발견의 일등공신은 시화호지킴이 최종인님과 한국해양연구소 정갑식 박사라 할 수 있다. 시화호를 사랑하는 사람들 입장에서야 일등공신이지만 북측간석지를 개발하려던 관련부처의 입장에서는 480만 평이 천연기념물로 묶였기 때문에 이들을 '공공의 적(?)'으로 낙인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개발과정에서 지역토호(지역 언론을 가지고 있는 경우 많음)와 건설업체, 대기업, 지자체, 관련부처 등으로 강한 연결고리(이를 '성장연합'이라고 칭하기도 한다)를 형성한 집단이 종종 '공공'과 '국민'을 팔아먹는 진정한 '공공의 적'을 많이 보아왔다.

시화호가 만들어지고 난 이후 1999년 4월 북측간석지의 생태계의 변화와 지표조사를 하던 이들이 작은 섬에 엉덩이를 걸치고 '담배'를 피우며 쉬다가 풍화와 침식으로 깎여 나간 표면에 노출된 알을 발견했다는 전언이다. 이후 이 지역은 검증을 거쳐 2000년 3월 천연기념물 212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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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공룡이 확인된 곳은 경남 하동, 전남 보성, 경남 고성 등 대부분 남해안 일대인 점을 생각하며 중부지방인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고정리(시화호) 일대에서 발견된 공룡알은 지질학적 측면에서도 큰 의미를 갖는다. 심층 발굴을 하지 않고 지층에 드러나 지표조사만을 통해서 30여 개 둥지에 10-15cm의 공룡알 화석인 200여 개 발견되었고, 한 둥지에서 12개까지 발견된 곳도 있다.

특히 일대에서 생물의 서식흔적인 서관화석(棲管化石), 나무화석 등 다양한 생물화석들이 함께 관찰되고 있다. 이 일대의 개발계획을 수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 공룡알이 확인되지 않고 포크레인에 파여 갯골 깊은 곳에 묻혔다면 중생대 백악기 이곳에 공룡들이 알을 낳고 새끼 공룡을 키웠던 '공룡들의 인큐베이터'였다는 사실은 기록되지 않았을 것이다. 대신 높은 아파트가 들어서거나 골프장이 들어섰을 지도 모른다. 1억 년 전의 갯벌과 땅에 묻힌 기록이 '우연'에 의해서 역사에 기록되었던 것이다.

주로 발견된 화석은 공룡알과 뼈들로 개미섬, 닭섬, 한염, 상한염, 중한염, 하한염 등 작은 섬의 침식된 표면 등이다. 이들 화석이 발견은 개발주체들에 의한 현지조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현지 환경운동가들에 의해서였다. 개발주체들이야 왜 운동가들이 발견하기 전에 묻어버리지 못했을까 땅을 치고 후회했을 것이다.

공룡은 알을 낳고 닭처럼 따뜻하게 품어 산란을 했을까? 공룡전문가들은 알을 품고 산란하기에는 너무 약해 오히려 모래를 덮거나 직접 태양에 노출시켜 산란을 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러한 궁금증이 해결된 것은 1979년 미국이 몬타나주에서 발견된 공룡알 둥지를 연구한 존호너 박사의 17여년의 긴 연구결과에 의해서였다.

당시 존호너 박사는 초식공룡(오로드로미우스)의 둥지 안에 12-24개의 알이 나선형 배치되어 있고 그 위에 모래와 나무 등 식물의 잔해가 섞어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즉 알을 따뜻하게 하여 부화할 수 있도록 알을 모래와 식물로 덮어 퇴비더미가 발효될 때 나는 열을 이용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좀 더 과학적인 조사를 해봐야겠지만, 시화호의 공룡알에 주목을 하는 것은 공룡의 산란과 서식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공룡알 화석지는 200여 군데로 추정하는데 이중 300여개의 알이 확인된 곳은 몽고고비사막과 중국 후베이 성 뿐이라고 한다. 시화호 내 화석군들은 중생대 지구의 지배자였던 공룡들의 생태, 먹이, 산란습성, 집단생활, 산란과 서식 등을 확인할 수 있고 복원할 수도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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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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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는 '기록'의 창고

지금까지 간척과 매립을 하면서 갯벌과 바다 속의 문화를 조사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비용이 엄청나게 들고,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말로 면죄부를 받기는 어렵다. 철도와 도로가 놓이고 육상이동로를 이용하기 전에는 모든 문화의 이동로가 바다였다. 중생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고대 무역로는 물론 섬과 섬을 이동하는 작은 뱃길 곳곳에 우리문화가 남아 있다.

풍화와 침식으로 드러난 흔적이 그러할진대 갯벌에는 무엇이 얼마나 묻혀 있을지 모른다. 필자가 그 분야 전문가가 아니어서 단언하기 어렵지만. 과거 토건국가를 방불케 하던 개발국가 시대에는 문화재 및 지표조사를 거치지도 않는 일이 비일비재했지만 지금은 형식상으로 의무화되어 있다.

그리고 고속도로를 놓거나 공단을 조성하거나 택지를 조성하면서 개발주체들에 의해서 발굴용역이 이루어져 왔다. 이러다 보니 용역의 결과는 늘 개발해서는 절대 안 되는 지역도 개발해도 된다는 논리를 뒷받침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것도 육지에 국한된 이야기이다. 바다와 갯벌은 이것마저도 시행하지 않는다.

중생대까지 갈 것도 없다. 불과 몇 백 년 전의 유적들을 우리는 종종 바다에서 발견하곤 한다. 신안의 증도 앞 바다의 중국 고선박과 송원대 유적이 그렇고, 완도 약산면 어두리 앞바다에서 발굴한 고려시대 목선이 그렇다. 이들은 갯벌에 묻혀 있다. 파도와 풍랑에 혹은 태풍에 그 잔해들이 어부들의 그물에 걸려 올라오면서 빛을 보게 된 것이다.

만약 이들이 육상에 있었다면 보다 일찍 발견될 수도 있지만 역사에서 사라졌을 수도 있다. 갯벌에 묻혀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온전하게 원형을 보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갯벌은 생명의 보고만이 아니라 '기록'의 창고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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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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