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원
억새 너머로 하얀 구름이 드넓게 펼쳐졌습니다. 새하얀 억새처럼 바람 따라 흔들리긴 마찬가지입니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억새와 구름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 보기 좋은 풍경을 만들었습니다. 억새와 구름이 연출한 풍경을 보며 흔들리는 것들도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에 흔들리는 게 억새와 구름만은 아닙니다. 흔들리며 사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들의 애잔한 삶을 한 시인은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추수 끝난 강둑에 무리지어
다 끝나가는 한 생을 마저 살려고
마구 흔들어대는 저 으악새는
어떻게 내 마음을 통째로 뒤흔들지 않고
내 곁을 지나친단 말인가
성주 가천 닷새장 파장에 부는 소슬바람도
대가천 식당 할매가 말아내는 돼지국밥도
정류장 둘레에 퍼질러 앉아
금방 밭에서 뽑아온 무 배추 몇단 놓고
국수 말아먹는 아낙의 등 굽은 가계도
어찌 나와는 아무 상관없다 지나치리
그 모습에서 감동을 찾아가기도 하고
그 웃음에서 가버린 세월을 되감아오기도 하고
하다못해 연민의 눈길이라도 욕심껏 퍼붓고 갈 일이니
세상에 저 홀로 흔들리는 것 무엇 있으리 - 배창환, '흔들림에 대한 작은 생각’ 전문
찌든 때 훌훌 털고 가려면 억새 숲에 몸 담그고 바람결에 흔들리는 억새가 되어 함께 흔들리며 오래도록 머물러야 하겠지만 지는 해가 우리의 등을 떠밀었습니다. 무언가 중요한 걸 두고 오는 이들처럼 뒤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세상으로 내려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