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고향 떠난 사람도 붙잡는 갯벌

등록 2005.10.13 15:06수정 2005.10.14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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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해도 북부지역의 토양은 다량의 게르마늄이 포함되어 있다. 게르마늄은 인체의 산소공급 및 두뇌활동 촉진 등의 효과는 물론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고 면역증진에 따른 성인병 예방, 암치료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신비한 광물질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압해도 구릉지의 흙들은 대부분 황토로 갯벌에 끊임없이 흙을 공급해주고 있다. 즉 게르마늄이 함유된 황토갯벌이다 보니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 그래서인지 풍부한 영양염류의 공급에도 불구하고 바다에 적조피해가 없는 청정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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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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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봄철이면 분주한 갯마을

봄철이면 압해도는 바다와 들 곳곳에서 움직이는 생명들로 분주하다. 하루가 다르게 구릉지를 하얗게 색칠해가는 배꽃을 손질해 주어야 하고, 바다와 갯벌에서는 갯일이 시작된다. 농사일은 농사일대로 준비해야 하고, 소금을 거두는 사람들은 염전을 둘러보고 한 해를 준비해야 한다.

봄에 피는 배꽃은 압해도의 또 다른 자랑거리이다. 붉은 황토밭에 배꽃과 함께 어우러진 무꽃, 유채꽃, 갓꽃, 민들레, 탱자꽃 등은 압해도 구릉을 온통 꽃밭으로 바꿔놓는다고 한다. 가을철에 단풍이야기가 아닌 꽃 이야기를 하는 것이 격에 맞지는 않지만 내년 봄엔 꼭 압해도를 가보시길 권한다. 어쩌면 그때는 배를 타지 않고 자동차를 타고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압해도에 배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197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문태중학교 재학중 가정 사정으로 귀향해 생활하던 한 독농가가 교회 목사님의 권유 배농사를 시작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압해지역은 배농사가 불가능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김씨가 배농사에 성공하면서 복룡마을 중심으로 확산되어 마침내 작목반을 조직하기에 이르렀다. 1994년에는 영농조합법인을 만들었으며, 1999년부터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는 고향사람 주선으로 수출하고 있으며, 그 양이 최근에는 540여t에 이르고 있다.

현재 290여 농가가 배농사를 하고 있다. 지금이야 섬에서도 배, 사과, 포도 등 과수재배를 볼 수 있지만 과거에는 섬에서 과일을 생산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손가락질을 했다. 배외에도 압해도에는 사과, 단감, 포도, 양다래가 재배되고 있다.


압해도 갯벌이 만들어낸 것 중에 또 다른 걸작이 소금이다. 비금이나 증도 그리고 신의에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육지와 가깝기에 물류비용이 적고, 지난 염전 감단정책에 힘입어 남아 있는 염전에서 나는 소금은 그래도 벌이가 된다. 한때 소금은 '백금(白金)'이라 했다. 육지에서 황금이 나지만 갯벌에서는 '백금'이 난다는 이야기이다. 그만큼 돈벌이가 대단했다는 것이다. 오죽 했으면 자유당 시절 정치인, 깡패들도 주먹과 권력을 가지고 염전을 가지려 했겠는가.

압해도에는 장감리와 분매리에 소금밭이 있다. 장감리에 있는 소금밭은 소규모로 개인 소유이지만 분매리에 있는 소금밭은 광주에 모 학교법인이 소유한 비교적 규모가 크다. 이것도 지금은 대부분 분양을 해서 개인들이 운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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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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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감리에서 4정 약 1만2000평의 소금밭을 운영하고 있는 신광 염전주인은 80여 마지기의 농사도 겸하고 있다. 농사와 소금 중 어느 쪽이 더 수지가 더 나은가라는 질문에 주저하지 않고 '소금으로 먹고 산다'고 답한다. 나락수매도 이제 끝나버리고 작년에 5만4천여 원까지 하던 나락도 금년에는 4만 원대로 떨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소금은 봄에 30kg에 6천 원 하던 것이 날씨가 고르지 못해 가을철에는 오히려 8천원까지 올랐다. 농사지어서는 밥 먹고 살기 힘들지만 '소금이 있어 입에 풀칠이라도 한다'는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정부는 수입대책으로 소금밭을 줄이는 감단정책으로 추진해왔다. 이로 인해 충남지역의 염전은 거의 사라졌고, 전남의 소금밭도 큰 폭으로 감소했다. 폐전한 사람들이나 양식장이나 논으로 소금밭을 전환한 사람 중 많은 사람들이 지금 후회를 하고 있다. 소금만큼 숱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신광염전 주인의 경우 3월 22일 첫 소금생산을 시작으로 10월 말까지 소금을 생산할 계획이라고 한다. 보통 1년이면 인건비 등을 제하고 7-8천여만 원의 수입을 올린다. 소금가마니로 한다면 1만 5천여 개를 생산하는 셈이다. 소금의 생산량은 전적으로 날씨에 매여 있다. 설령 날씨가 좋더라도 일기예보에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온다고 하면 소금을 앉힐 수 없다.

지금이야 일기예보가 있어 의지하지만 옛날에는 전적으로 육감에 의존했다. 바람, 달무리, 저녁노을, 새들이 나는 것 등등. 5월과 6월 소금이 최고로 좋지만 장마철이 닥치면 한 달 정도 소금생산을 할 수 없다. 그리고 8월부터 9월에 소금이 많이 난다. 머리가 벗어지도록 내려쬐는 햇볕에도 염부들은 소금밭으로 나가야 한다. 바닷가의 강력한 햇볕, 여기에 비닐로 입혀진 소금밭 바닥과 하얀 소금에 반사된 햇볕은 강력하다 못해 살인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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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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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낙지잡이 미끼로 사용할 시렁게(칠게)를 잡는 어민

낙지잡이 미끼로 사용할 시렁게(칠게)를 잡는 어민 ⓒ 김준


고향 떠난 사람도 붙잡는 가을 낙지잡이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갯벌이 다시 술렁거린다. 낙지잡이 때문이다. 여름철 내내 주낙을 손질하며 어구를 준비해 놓은 이들은 작은 달배(오리배)를 끌고 잠방잠방 물이 찬 갯벌 위로 낙지를 찾아 나선다. 압해도 갯일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것이 낙지잡이이다. 압해도의 낙지잡이는 주낙이 대부분이며 일부 주민들이 가래(삽)를 이용하거나, 밤에 불(충전용 전등 사용, 과거에는 횃불 사용)을 비춰 잡기도 한다.

낙지주낙은 봄철과 가을철로 나누어 잡는다. 봄철은 4월부터 7월까지, 가을철은 9월 찬바람이 나기 시작하면 시작해 10월까지 한다. 낙지는 5월이나 6월경에 산란을 하기 때문에 여름철 낙지는 맛이 없고 가을철 낙지를 최고로 친다. 압해도는 송공리처럼 안강망어업을 많이 하는 경우에는 봄철에 낙지잡이보다는 고기잡이를 많이 하지만 복룡을 비롯해 학교나 장감리처럼 고기잡이를 많이 하지 않는 마을은 봄철에도 낙지잡이에 나선다.

30여 년 전만 해도 압해도에서는 낙지잡이가 성하지 않았다. 겨우 가을철에 한 두어달 반짝 낙지잡이를 했지만, 지금은 철을 가리지 않고 낙지잡이를 하고 있다. 세발낙지의 원조로 알려진 영산호 일대가 방조제가 막히면서 낙지 서식지가 사라져 무안과 압해도 일대의 낙지가 미식가들 사이에 호평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어민들이 너도 나도 낙지잡이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압해도 인근의 갯벌은 서식환경이 좋아 인근 깊은 바다에서 생활하던 놈들도 때가 되면 낮은 갯벌로 올라오는데 철을 가리지 않고 잡아대는 통에 미처 산란을 하지 못하고 잡히기도 해 낙지가 옛날처럼 많지 않다고 한다.

압해도에서 낙지를 많이 잡는 마을들은 대벌, 수락, 상촌 등 송공리와 학교리이며 복용리와 장감리 등에서도 낙지잡이에 나서는 어민들이 있다. 낙지잡이는 주낙을 이용해 가을철에 많이 잡는다. 송공리처럼 안강망어업과 김양식을 많이 하는 경우 봄철에는 낙지주낙을 하지 않고 학교리를 비롯해 다른 마을에서는 봄철과 가을철에 낙지잡이에 나선다.

낙지가격과 잡는 양에 따라 다르지만 가을철 서너달 낙지잡이에 나서면 3000여만 원의 소득을 올리기 때문에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철이 되면 내려와 낙지잡이를 하는 젊은이도 간혹 있다. 그렇다고 낙지잡이가 수월한 것만은 아니다. 밤에 낙지잡이에 나서야 하기 때문에 낮과 밤이 바뀌며, 농사까지 겸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여간 힘들지 않다.

가을철 낙지는 한 접(20마리)에 산지에서 소매로 5만원에 거래되고 있지만 잡기가 바쁘게 목포를 비롯한 인근 상인들이 기다렸다 수거해 버린다. 압해도는 목포와 7분 정도의 가까운 뱃길이기 때문에 신선도가 탁월하여 낙지를 비롯해 보리새우(오도리), 그리고 생선 등 소매로 구하기 쉽지 않다.

낙지를 잡기 위해서는 주낙과 서렁게(칠게)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낙지는 한 구멍에 한 마리씩만 살며 밤이면 구멍에서 나와 서렁게를 잡기 위한 먹이활동을 한다. 이런 탓에 낮에는 가래로 구멍을 파서 잡는 '가래낙지'를 하지만 밤이면 미끼를 놓아 낙지를 유인해 잡는 '주낙'으로 낙지잡이에 나선다.

낙지잡이가 쏠쏠한 소득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서남해 어민들이 너도나도 낙지잡이에 나서면서 죽어나는 것이 '서렁게'였다. 서렁게는 1kg에 7천원에서 8천원에 거래된다.

가룡이와 학교 갯벌에서 칠게를 잡는 사람들을 만났다. 가룡리 갯벌에서는 칠게를 잡는 두 사람은 목포 죽교동에 사는 50대와 60대의 여성들로 사흘째 이곳에 온 것이라고 했다. 첫날은 한 물때에 2만5천원 벌이를 했고, 두 번째 날은 4만원 벌이를 했다고 한다. 나를 만난 셋째 날은 새벽에 나와 택시타고 이곳까지 들어와 4시 무렵까지 잡았는데 7-8kg는 될 성 싶었다. 배 삯 왕복 2천원, 택시비 9천원을 제하고 나면, 오늘은 벌이가 좀 될 것 같다고 했다.

갯벌에 처음 들어오는 탓에 욕심을 부리다 갯벌에 빠져 죽을 뻔했다고 한다. 다행이 물이 많이 들지 않는 물때라 겨우 화를 면하기 했지만 '이렇게 죽을 수도 있구나'하며 두려웠다고 한다. 칠게잡이는 맨손으로 하는데, 먼저 칠게 구멍을 발견하면 한쪽 발로 칠게가 구멍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밟아 길을 차단하고 미처 들어가지 못하고 낮은 구멍에 갇힌 칠게를 손으로 잡아낸다.

이것도 상당한 기술을 필요로 한다. 이들처럼 외지인들이 갯벌에 들어가는 것을 마을(어촌계)에서 막는 경우도 있다. 갯벌에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지만 바지락이나 굴 혹은 고막 등의 종패(씨앗)을 뿌려 놓은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육지에서 나락 심어 놓은 '논'에 미꾸라지나 우렁을 잡는다고, 콩 심고 깨 심어 놓은 밭에 방아깨비 잡는다고 밟고 다닌다면 어찌되겠는가. 갯벌은 어민들에게 '논과 밭'인 것을 육지사람들은 잘 모른다.

압해도 앞 바다는 무안과 연해 있는 넓은 갯골로 물때 따라 농어, 숭어 등이 많이 나는 곳으로 유명하다. 작은 갯골에는 숭어, 여름에는 병치, 민어, 보리새우에서부터 전어에 이르기까지 맛 좋은 '뻘'고기들이 많다. 황토밭에서 나는 농산물로는 브랜드를 형성한 '압해배'가 유명하며, 고구마, 마늘, 고추 등도 많이 난다. 황토밭과 황토 게르마늄 갯벌은 압해도에 주민들의 생활터전이고 희망이다. 연륙과 개발이 가져다줄 새로운 희망이 이보다 나을지 궁금하다.

a 시렁게를 주낙에 끼우는 작업, 해가 지면 낙지를 잡기 위해 갯벌로 나간다.

시렁게를 주낙에 끼우는 작업, 해가 지면 낙지를 잡기 위해 갯벌로 나간다. ⓒ 김준


a 낙지주낙을 만들고 있는 어민

낙지주낙을 만들고 있는 어민 ⓒ 김준


겨울철에도 갯일은 계속된다

압해도는 일제강점기에 송공에 시험양식을 할 정도로 일찍부터 김양식의 적지였다. 지주식양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완도 사람들이 1960년대 이곳에 들어와 김양식을 하기 시작하면서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지주식 김발은 지금처럼 망홍(그물)이 아니라 대나무를 엮어서 만든 소규모의 죽홍이었다. 당시 죽홍은 대나무를 쪼개서 만들었기 때문에 손으로 훑어서 채취해야 했으며, 잘 뜯어지지 않으면 가위질을 해서 뜯기도 했다고 한다.

압해도는 지형이 배의 모터에 달린 프로펠러처럼 3개의 날개 모양을 하고 있다. 북쪽으로 복룡리, 동남쪽으로 장감과 신장리, 서쪽으로 송공리가 반도처럼 바다로 향하고 있다. 이런 탓에 송공리는 삼면의 해안에서 2500m에 이르는 마을어장을 가지고 있다. 압해도에서 가장 좋은 마을어장을 가지고 있으며, 대표적인 양식어업이 김이다. 지금은 5-11m의 지주를 박고 그곳에 김발을 달아 양식하는 '지주식망홍'으로 김을 양식하고 있다.

압해도와 연해 있는 무안의 복길마을도 1980년대 초까지 일대에서는 김양식을 많이 하기로 알려진 곳이다. 송공리가 김의 포자배양에 성공하기 전까지는 복길에서 가져와 양식을 하였지만 1982년 마을주민의 포자번식 성공으로 김양식은 대규모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최근 송공의 김양식은 1만5000여 책(40여m의 김발을 1책 혹은 1때라고 한다)이 이르고 있다. 한참 김양식이 성할 때는 마을 내에 20여개의 김 가공공장이 가동되었지만 지금은 단 2개만 가동되고 있다.

김양식장은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이용하기 때문에 추석 전에 마을총회에서 추첨을 통해서 분배한다. 토지와 마찬가지로 바다도 조류의 소통과 해양환경에 따라 잘 되는 곳과 잘 되지 않는 곳이 있기 때문에 일정한 기간마다 추첨을 한다.

어촌에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고 김양식이 생계에 큰 비중을 차지할 때는 매년 추첨을 했지만 시설비용과 노동력 문제 등으로 어장 하는 장소가 고정되어가고 있다. 송공리의 김 양식 어장도 모두 고정화되어 개인의 양식지가 정해져 있다.

이렇게 어장이용방식이 변하고 나서부터는 갯벌에 박아 놓은 김양식을 위한 말목은 한 번 박아 놓으면 거의 뽑지 않고 그물만 걷어내고 다음해 다시 설치되고 있다. 시설비용과 노동력의 절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시사철 박혀 있는 경우 조류소통에 큰 영향을 미치며 바닥에 펄이 쌓여 갯벌을 노화시키고 썩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a 겨울 김양식을 위해 김발을 설치하는 어민, 이르면 12월 햇김을 내놓을 것이다.

겨울 김양식을 위해 김발을 설치하는 어민, 이르면 12월 햇김을 내놓을 것이다. ⓒ 김준


압해도 송공리과 무안 복길의 김양식은 김양식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곳이다. 완도에서 김양식에 성공한 사람들이 새로운 양식장 즉 신천지를 찾아 서해해역으로 올라오면서 일차적으로 기술보급을 한 곳이 이곳이기 때문이다. 이후 영광과 부안 그리고 선유도 일대를 거쳐 충남지역으로 확산되어 갔다.

압해도 갯벌은 펄갯벌, 모래갯벌, 자갈갯벌, 혼합갯벌 등 그 형태가 다양하다. 압해도에서는 해안선에서 제일 가까운 찰진 갯벌을 낙지와 망둥어가 서식하는 '참', 그 다음의 뻘은 등이 높아 잘 빠지지 않는 '된뻘'로 농게(꽃게)가 서식한다. 다음 뻘은 굴, 바지락, 뻘떡기 등이 많이 나는 '쩍등'이 있으며, 그 다음은 조금때 물에 잠기는 민그지로 김양식을 한다.

이런 다양한 갯벌에 가무락, 통죽물, 피뿔고동, 물레고동, 홍합, 진주, 담치, 밴댕이, 망둥어, 붕장어, 낙지, 운저리, 굴, 꼬막, 해태와 감태, 서렁게, 농게 등 셀 수 없는 갯 것들이 서식하고 있다.

참에서 민그지까지 걸어서 가는 것은 매우 힘들어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송공리 일대에는 사구가 발달해 있어 학술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머지않아 육지와 다리가 놓이고 '체험관광', '갯벌체험' 등 다양한 이름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 그때도 갯벌이 온전할지 벌써 걱정이다. 갯벌이 무너진 어촌이 온전할 걸 보지 못했기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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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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