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정치인 등을 대상으로 불법감청을 지시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김은성 국정원 2차장이 8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구치소로 수감되고 있다.연합뉴스 황광모
- 그러면 그 다음에 권 고문 집으로 찾아온 것이 두번째 만남인가.
"그렇다. 나중에 2000년 7월에 우리 집에 올 때도 나한테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왔다. 7월 17일 제헌절과 18·19일 3일간 연휴였는데 그때 김영배·안동선·이해찬 의원과 나, 이렇게 넷이서 용평에서 운동(골프)하기로 돼 있어 그날 골프웨어를 입고 모자까지 쓰고 나오는데 김은성이가 우리집 응접실에 앉아 있었다. '웬일이냐'고 물으니 '잠시 드릴 말씀이 있어 왔다'는 거야. 서류봉투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일단 앉으라고 하고 김은성이한테는 커피를 주고 난 죽을 먹었다. 그러면서 무슨 일인지 얘기 해보라고 하니 서류봉투에서 뭔가를 꺼내길래 '나는 원래 보고서 이런 것 안보는 사람이니 그냥 말로 하시오'라고 만류했다. 미리 약속도 안하고 불쑥 찾아온 데다 용평에 가려고 나가려던 참이라 시간도 없었지만 나는 원래가 보고서 같은 것을 안보는 체질이다."
- 그러면 서류를 보거나 받지도 않았던 말인가.
"그렇다. '그냥 말로 하시오' 그랬더니 김은성이 서류를 꺼내려다가 말고 다시 넣었다. 그러면서 '최규선이하고 홍걸이 부분입니다'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래서 내가 화를 내면서 '당신네들 나쁜 사람들이야, 국가의 방대한 예산을 쓰는 사람들이 시중의 유언비어 같은 것을 취합해 대통령에게 엉터리보고서를 올리기나 하고, 당신들이 대통령의 부자(父子) 관계를 나쁘게 할 만한 구체적인 증거가 있으면 내놔라' 이렇게 막 나무랬는데 아무말도 못했다. 그래서 '나는 약속이 있어 나가야 한다'고 집을 나선 뒤로 한번도 김은성이를 본 적이 없다. 그렇게 우리 정부(김대중 정부)에서 딱 두 번 봤을 뿐이다."
- 김은성 차장이 '홍걸이와 최규선 문제로 왔다'고 했다면 당시 알 왈리드 사우디 왕자의 투자를 끌어내 국제금융벤처사업을 구상한 것에 대해서도 얘기했나.
"그 얘기는 안했다. '홍걸이와 최규선이가 이권에 개입해 둘이서 대통령에게 상당히 누를 끼칠 것 같다'고 얘기했다. 그래서 증거를 대라고 하니 말을 못하더라."
- 대통령 친인척 관리를 국정원에서도 해왔으니까 김은성 차장이 '예방정보' 활동 차원에서 그런 보고를 대통령에게 했다는데, 그렇다면 대통령이 그 보고서를 보고 권 고문을 불러 무슨 얘기를 했는가.
"김대중 대통령이 나를 불러 청와대에 갔더니 '홍걸이하고 최규선이 어떤 관계냐'고 물었다. 그래서 '지금 깊은 관계는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최규선이 홍걸이를 사우디 왕자에게 소개해 국제금융사업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니 둘이서 사우디에 함께 가는 것까지는 괜찮다고 봅니다, 대신에 돌아오면 그때는 두 사람을 떼어놓겠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대통령이 '홍걸이와 최규선이 문제는 안좋은 얘기가 나오지 않도록 권 고문이 알아서 처리해라'고 하셨다."
- 청와대에 다녀온 뒤에 두 사람 문제를 어떻게 처리했나.
"청와대에 다녀온 다음날 내가 홍걸이하고 규선이를 불러 앉혀 놓고 '요즘 혹시 둘이서 아버지를 팔거나 내 말을 하거나 하면서 부탁 같은 것을 한 적이 있냐'고 물으니 둘 다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홍걸이가 '사우디에 좀 다녀오겠다'고 하길래 '사우디 왕자를 만나고 와서는 홍걸이는 돌아오자마자 미국으로 가고, 최규선이는 오늘부터 우리집에 오지 마라' 이렇게 얘기를 했다. 규선이한테는 '너는 내가 아무리 봐도 정치보다는 사업을 해야 성공할 것 같으니 그 방면으로 가라'고 말하고 그날로 내 보좌역에서 내보냈다."
- 그 뒤로는 그 일이 어떻게 마무리 되었는가.
"그때가 6월 중·하순쯤인데 최규선이는 그날부로 보좌역을 못하게 했고 홍걸이도 그 이후로 우리집에 한번도 안왔다. 그런데 7월 17일 김은성 차장이 예고없이 집으로 찾아온 것이다."
권노갑-김은성 문제의 '두번째 만남', 2000년 7월 17일
- 김은성 차장이 왜 찾아왔다고 생각하는가.
"청와대에 불려가서 그런 일이 있고 별로 기분이 안좋아 내가 주변에 '정보부(국정원)의 엉터리 보고 때문에 부자(대통령-홍걸씨)간의 관계가 나빠진다'고 얘기한 것이 임동원 원장에게도 알려지고 자기(김은성 차장) 귀에도 들어갔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 친구(김은성)가 임 원장에게 '권 고문이 우리한테 많은 오해를 하고 계신 것 같으니 제가 가서 해명하고 오해를 풀도록 하겠다'고 보고하고 나한테 전화도 없이 불쑥 찾아온 것이다."
- 대통령을 만나고 나서 임동원 원장한테 '엉터리 보고서를 올렸다'고 항의한 적이 있나.
"나는 안했다. 홍걸이가 했다. 홍걸이가 '국정원이 엉터리보고서를 올려 개인사업마저 못하게 한다'고 임 원장한테 항의하고 김은성이도 직접 만났다고 한다. (최규선이가 시켰는지 모르지만) 난 몰랐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왜 이런 허위보고를 올리냐'고 따졌던 모양이다."(이에 대해 김은성씨는 본인이 김홍걸씨를 만나 최규선과의 관계를 끊으라고 '담판'을 지었다고 얘기함)
- 김은성 차장 얘기로는 당시 권 고문이 임 원장에게 항의하자 임 원장에게 사표를 내기까지 했다던데.
"탄원서에 보니 그렇게 돼 있다만 내가 직접 임 원장에게 그 문제를 항의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얘기한 것이 그렇게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김은성 전 차장은 최근 검찰에 구속되기 전에 '비보도'를 전제로 한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국정원이 김홍걸-최규선의 부적절한 관계와 동향을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전제하고 "김 대통령이 보고서의 '출처'를 밝히지 않았어야 하는데 권 고문을 불러서 '국정원에서 이런 보고가 올라왔는데 어떻게 된 거냐'고 질책하는 통에 권 고문이 나에 대해 안좋은 감정을 갖게 되었다"면서 "그래서 (홍걸이에 대한 동향 보고서를 올릴 수밖에 없는) 대통령에 대한 '충정'을 전하고 권 고문의 '오해'를 풀기 위해 권 고문 집을 찾아간 것이다"고 밝혔다.
김 전 차장은 또 "원래 '대통령 보고서'는 대통령만 보는 것이지만 권 고문의 '오해'를 풀려면 보고서 내용을 있는 그대로 보여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보고서 사본을 가지고 갔을 뿐"이라며 "언론에서 '정권 실세에 대한 정보 보고' 운운하는 것은 대통령의 통치권 보좌를 위해서만 일하는 국정원 간부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엉터리 보도다"고 주장했다.
결국 권 고문과 김은성 전 차장의 얘기를 종합하면, 김은성 차장은 2000년 7월 17일 김홍걸-최규선씨 동향 보고서로 인한 '오해'를 풀기 위해 청와대에 올린 '대통령 보고서' 사본을 갖고 권 고문 집을 찾은 것이다. 그 행위 자체가 오해를 받을 수는 있겠지만, 정보보고를 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또한 권 고문은 그 보고서 사본을 '꺼내는 것'만 봤을 뿐 '보고서 자체'는 보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소장파 의원들에 대한 도청 정보보고는 말도 안된다"
- 언론에서는 계속 김은성 차장이 권 고문한테 잘 보이려고 소장파 의원들을 도청해 정보보고를 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어처구니없는 엉터리 보도다. 우리 정부 5년 동안 단 두 번밖에 만난 적이 없고 그것도 한번은 차장된 직후에 커피숍에서 서서 인사만 했는데 무슨 정보보고냐. 그리고 2000년 7월 17일 서류를 들고 우리집에 찾아온 것이 정보보고 오해를 살 수는 있지만, 논리적으로 말이 안된다.
예를 들어 그해 3~4월에 도청을 해서 7월에 우리집에 왔을 때 무슨 보고를 했다면 혹시 그런 오해라도 생길 수 있지만 민주당 정풍 운동은 그해 12월에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해 9월에 최고위원이 되었다가 12월에 그만두고 해외에 나가버렸다. 그러니 정보보고는 도무지 말이 안되는 얘기다."
권 고문은 김은성 도청 사건이 언론이 보도되자 장성민 의원 등 일부 정치인이 "나도 도청을 당했다"면서 김은성 차장과 당시 민주당 지도부의 합작품인 것처럼 음모론을 제기한 것에 대해서도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라고 일축했다. 김은성 차장이 정치인 도청을 했을 수는 있지만, 정보보고를 받은 일도, 도청정보를 활용해 소장파를 견제한 적도 없다는 것이다.
권 고문은 이 대목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2000년 12월 2일에 청와대에서 정동영이랑 함께 대통령을 만났고, 17일에 최고위원직도 그만뒀다. 나는 피해자다. 그리고 내가 우리 정권에서 뭘 했냐. 국회의원을 했냐, 장관을 했냐. 우리 정부에서 감투 쓴 것은 모교(동국대) 총동창회장 한 게 전부다. 전국구도 지역구도 못나가게 하고, 유일한 자리가 민주당 최고위원인데 그것도 2000년 8월 30일 전당대회 끝나고 9월 1일에 되었다가 12월 17일에 그만뒀으니 네 달도 못했다.
그러고는 전부 '외곽' 일만 했다. 우리 대통령께서 박정희 기념사업회 명예회장이니까 나더러 맡아서 하라고 해서 박근혜 대표하고 나하고 부회장을 하고, 신현확씨가 회장을 하고 청와대에서 기념사업회 회의할 때 고건 서울시장이 참석하고 그랬다. 그래서 고건 시장이 상암동에 기념관 부지를 마련해 주고 국회 예산 200억원 만들고 한 것이 전부다."
- 2000년 총선 전에 '저승사자'로 일을 많이 하지 않았냐.
"그때도 공천 작업을 공개적으로 하기 위해 일부러 호텔에서 했다. 여론조사 기관 사람 불러다 놓고 여론조사 결과 앞에 두고 공천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 설득하고 다독거리고 그런 일을 했다. 내가 이렇게 당을 위해 '악역'을 떠맡은 통에 내가 보자고 하면 사람들이 '저승사자'라며 나를 피했다. 나 자신도 불출마하면서 오로지 김대중 대통령과 당을 위해 일했는데도 불명예스럽게 '인사 전횡'이니 '부통령'이니 '김현철'이니 하는, 이런 누명을 쓰고 12월에 물러났다."
"국정원 도청은 대통령 빼고는 다 한다고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