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강산', 설악산 대청봉에 오르다

등록 2005.10.16 15:59수정 2005.10.17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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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설악산 걸음은 한계령에서 시작되었다. 몇번 속초를 내려간 적은 있었으나, 설악산은 항상 먼발치에서 내 시선을 채워준 것이 전부였다. 그리하여 올해는 꼭 설악산 대청봉에 오르리라는 막연한 결심 같은 것을 하고 있었다. 지난 10월 15일 토요일 아침 5시 30분에 집을 나서 동서울터미널에서 한계령 가는 6시 28분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는 중간 정도 사람들이 차 있었다.

한계령에 도착한 것은 9시 30분쯤이었으며, 내가 끝청, 중청, 대청봉을 거쳐 오색의 남설악으로 내려왔을 때 시계는 저녁 6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산술적으로 꼽아보니 9시간을 걸은 것이었다. 환한 아침 햇볕 속에서 시작했던 설악이 완전히 칠흑의 어둠 속에 묻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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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나무는 하늘을 향하여 뻗어나간다. 꽃이 없었던 나무는 아마도 단풍에 그의 마음을 담고 싶었을 것이다. 하늘이 나무의 마음을 받아주었을까. 가끔 하늘이 뚝뚝 흘리는 가을 빗줄기는 나무의 마음에 감동한 하늘의 감격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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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왜 우리 땅을 가리켜 '화려강산'이라고 하는지 충분히 알 만하다. 우리의 자연은 너무 사치스러울 정도로 화려하다. 그런 땅에 사는 것도 큰 복이 아닐 수 없다. 내설악 쪽을 내려보고 있노라니 구름이 저곳으로 내려앉아 가부좌를 틀고 설악이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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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이날 설악은 하늘과 구름을 담은 커다란 그릇이 되었다. 그러니까 설악에 오른 사람들은 하늘과 구름 위로 오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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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설악을 오르면서 만나는 그 거대한 바위들이 빚어내는 형상은 그것이 우연히 형성된 자연의 결과라고는 믿기질 않는다. 게다가 하늘과 구름, 그리고 계절에 따라 그 느낌을 달리하고 있으므로 어찌보면 설악은 살아있는 작품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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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저 위가 바로 대청봉. 구름이 먼저 대청봉에 올라있었다. 나의 걸음은 더디고 느렸으므로 먼저간 구름을 탓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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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내가 대청봉에 다녀왔다는 명백한 증거. 1708미터를 가리키는 숫자가 분명하게 보인다. 63빌딩이 249미터라고 하니까 그것의 7배 높이에 오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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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오색으로 내려가는 길에 내내 쓰레기를 주으며 내려가는 사람이 있었다. 함자를 물었더니, 권주연이라고 하셨다. 올해 연세가 69세인 안동분이다. "이렇게 주으며 내려가도 봉지 하나가 안되요. 그런데 설악은 좀 쓰레기가 많네요"라고 말씀하셨다. 설악의 단풍이 아름답기는 해도 그것보다 사람이 더 아름다울 때가 종종 있다. 산의 아름다움을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지켜가려는 사람의 마음은 자연보다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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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우리는 흔히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앞에 장미를 내밀지만 이제부터는 단풍이 익을 때쯤 그 사람을 데리고 산으로 가라. 그리고 그 붉은 단풍을 일년내내 그 사람을 바라보며 농익은 당신의 마음이라고 말하라. 덧붙여 당신의 마음이 그처럼 붉지 않았다면 단풍도 없었을 것이라고 박박우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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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붉은 빛은 얼마나 가슴 뛰는 색깔인가. 그러니 그 앞에서 당신의 사랑을 열어보이면 그 사람의 가슴도 붉게 뛰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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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혹시나 그 사람이 그 붉은 단풍 앞에서도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태도를 내비친다면 당신의 마음 속에 박힌 그 사람의 기억을 하나하나 끄집어 내어 말하라. 그때 당신을 만났을 때, 이쪽의 한 잎이 물들고, 저때 당신을 만났을 때, 또 저쪽 끝의 한잎이 물들고. 그렇게 그 사람에 대한 당신의 하루하루가 쌓여 오늘에 이르렇기에 이제 이 계절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듯이 당신들 둘의 사이도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이라고 강변하라. 잘만하면 단풍에 설악이 물들듯 당신들도 그 속에서 사랑에 물들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동시에 게재했습니다. 블로그에선 좀더 많은 사진을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블로그-->김동원의 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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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갖고 돌아다니면 세상의 온갖 것들이 말을 걸어온다. 나는 그때마다 사진을 찍고 그들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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