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밥은 안주나요?"

설악산 단풍 산행의 뒷 얘기

등록 2005.10.27 14:15수정 2005.10.2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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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단풍 사진 촬영을 위해 설악산에 다녀왔다. 설악산을 가기 위한 방법을 생각해 봤는데, 차를 직접 몰고 가는 방법과 기차를 타고 가는 방법, 버스를 타고 가는 방법이 있었다. 하지만, 모두 몸이 지쳐서 사진 촬영도 힘들 듯싶었다. 좋은 방법이 없나 궁리하다가 매주 등산을 다니는 직원에게 물어봤다.


“설악산에 가고 싶은데 좋은 방법이 없나요?”
“인터넷을 찾아보면 등산 모임이 있으니 한 번 알아보죠.”

하면서 찾은 동호회가 ‘자연 보전 산악회’였다.

“토요일 밤 12시까지 무등경기장 건너편으로 나오세요. 대금 4만원은 그때 주시면 되고, 아침·저녁은 저희가 준비할 테니까 점심만 싸오세요. 그리고 온천에서 사우나도 시켜줍니다.”

드디어 출발! 밤 12시에 출발한 버스는 아침 5시 반경 설악산 입구 휴게소에 도착했고, 이어 일행이 준비한 된장국과 주먹밥으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주전골을 향해 출발했다.

“오늘 코스는 오랫동안 휴식년제 실시로 통제가 되었던 곳이며, 훼손이 심해 내년부터 또다시 휴식년제가 실시되므로 오늘이 좋은 기회입니다. 그리고 코스가 짧으니 단풍을 충분히 감상하고 천천히 산행하시기 바랍니다.”


아침 7시 흘림골에서 출발한 산행은 여심폭포, 등선대, 등선폭포, 주전폭포, 12폭포, 용소폭포, 성국사를 거쳐 오색에 도착하였다. 설악산 정상 부근은 이미 낙엽이 떨어졌고, 더구나 전날 눈이 와서 그런지 겨울 분위기가 더더욱 깊게 느껴졌다. 아래쪽으로 내려가자 기대했던 대로 역시 붉은 단풍을 만날 수 있었다.

a 붉게 물든 설악산 단풍

붉게 물든 설악산 단풍 ⓒ 김정철

12시 반 경, 오색에 도착하여 간단히 사우나를 마치고 같이 동행한 분과 함께 도토리묵에 막걸리를 걸치며 산채비빔밥을 배불리 먹은 뒤 2시경에는 귀성하는 차에 올랐다. 이때부터 강원도를 빠져 나오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막걸리 한 잔 걸치고 피곤하여 잠을 자고 일어나니, 버스는 막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옆 동료 왈,

“벌써 광주에 다 왔나요?”


장성터널로 착각한 모양이다. 사실 이곳은 영동고속도로였다. 창 밖을 바라보았더니 웬 차들이 그리 많은지 모두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저녁 7시가 넘자, 차 안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갔다.

“노래 좀 틀어 주세요.”
“불 끄지 말고 켜줘요.”
“아침에 주먹밥 하나 줘놓고 지금까지 탈탈 굶기고 다른 산악회에서는 먹을 것도 많이 주더만. 술 같은 거 없소?”

차 안이 웅성거렸다. 급기야는 산악회를 이끌고 있는 분이 마이크를 잡고 해명에 나섰다.

“여러분 진정하시고요. 옛말에 똥개를 따라 갔더니 똥간으로 갔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오늘 똥개를 따라왔다 생각하고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녁을 횡성 휴게소에서 먹으려고 했는데, 배가 고프지 않다고 해서 그냥 왔는데 이렇게 늦을 줄은 몰랐네요. 다시 한 번 죄송하고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해를 구하는 사이, 저녁 9시경 경부고속도로로 접어들어 첫 휴게소에서 내렸다. 어느새 큰 솥에는 물이 끓고 있고 옆에는 떡국이 대기하고 있었다. 떡국이 끓고 있는 동안 준비한 소주에 홍어회와 돼지 머릿고기를 먹고 있는데, 앞에 있던 한 여성이 아직까지 분이 풀리지 않는지 불만을 터뜨렸다.

“이럴 수는 없어요 다른 산악회는 이렇게 굶기지 않아요. 준비하는 사람들이 고생을 한 건 알지만, 이렇게 하면 안되죠!”

내가 한마디 했다.

“저는 버스 타고 설악산에 다녀오려고 했는데, 이렇게 편히 갔다 올 수 있도록 해 준 것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러자 더 이상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불만인 모양이었다. 그날, 함께 차를 탔던 분들의 목적은 각기 다 달랐을 것이다. 그냥 단풍 구경 간 사람, 오랜만에 제대로 된 등산을 해보고 싶은 사람, 그냥 오가며 노래 부르며 스트레스 풀려고 간 사람, 나처럼 사진을 촬영하고 싶어 간 사람 등, 각자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단체 생활을 하게 되면, 내가 하고 싶은 행동보다 팀을 생각하고 전체를 생각하는 마음을 좀 더 가졌으면 하는 생각을 집에 오는 길에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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