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61명, 그들은 왜 크레인에 올랐나

[순천 하이스코 농성] '노조결성' 이유로 폐업·대량해고... 강제진압 우려

등록 2005.11.02 12:05수정 2005.11.02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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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경찰과 회사측이 현대 하이스코 순천공장 정문을 바리게이드로 봉쇄했다.

경찰과 회사측이 현대 하이스코 순천공장 정문을 바리게이드로 봉쇄했다. ⓒ 시민의 소리

a 경찰 차량이 공장 내부로 진입해 "자진해산 하라"는 선무방송을 하고 있다.

경찰 차량이 공장 내부로 진입해 "자진해산 하라"는 선무방송을 하고 있다. ⓒ 김성철


a 하청업체 해직근로자들이 점거한 현대하이스코 순천공장 크레인에 '해고자 복직투쟁' 현수막이 걸려있다.

하청업체 해직근로자들이 점거한 현대하이스코 순천공장 크레인에 '해고자 복직투쟁' 현수막이 걸려있다. ⓒ 연합뉴스 최은형

현대하이스코 하청업체 해고 노동자들의 순천 공장 크레인 고공시위가 오늘(2일)로 열흘째를 맞고있다. 하지만 협상의 여지는 점점 좁아지면서 경찰의 강제 진압이 임박한 모습이다. 하이스코측은 단 한차례의 협상 이후 모든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

하이스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크레인 점거농성 사태는 비정규직들이 얼마나 쉽게 거리로 내몰릴 수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하이스코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61명이 20m 위에서 시너 등을 소지하고 고공 점거시위까지 벌이게 된 출발점은 지난 6월 노조 결성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노조를 결성했다는 이유로 하청업체 비정규직 200명이 사실상 해고됐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노조를 결성했다는 이유로 사실상 대량해고되는 사례가 많다. 지난 2001년 광주광역시 소재 캐리어 비정규직 대량해고와 폐업, 천막농성 등 사태 역시 비슷한 이유 때문이었다.

노조 결성하자 회사측 결국 '폐업'

지난 6월 13일 현대하이스코의 10개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124명은 '전국금속노조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이하 비정규직 노조)를 결성, 민주노총에 가입했다. 비정규직 노조는 노조 인정과 노동 3권 보장 등을 요구하며 하청업체 사장단과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폐업과 정직, 대기발령 등 인사상 불이익 뿐이었다. 하청업체 사장단은 "여러 업체소속 노조 결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비정규직 노조 지회장, 사무국장 등을 다른 지역을 전출보내거나 정직 등 징계를 내렸다. 하청업체 사장들은 각 사별로 자체 노조를 만드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여러 회사가 연합해서 노조를 결성하고 민주노총에 가입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노조 결성 전후로 4개사는 경영상의 이유를 들어 폐업했다. 이로 인해 200여명이 사실상 해고돼 거리로 내쫓겼다. 이 가운데 47%는 재고용된 상태지만 120명은 해고자로 남아있다.


현행 노동법상으로는 노조 결성, 노조의 형태는 전적으로 해당 노동자들의 의사에 맡겨져 있다. 따라서 업체 사장들의 주장은 이러한 권리마저 무시한 것이다.

하이스코 비정규직 노조 장철희 교육선전부장은 "정규직과 동일 라인에서 일해도 월급은 70만원 정도"라며 "이런 차별을 없애겠다고 노조를 만들었는데 제대로 말 한번 못하고 이런 사태가 왔다"고 말했다. 장 부장은 "고용불안, 기본권을 주장하면 1년 단위로 하는 재계약 때 사측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면서 "노조탄압 과정에서 원청과 하청사는 노조원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고 험악한 말을 해서 부모가 실신하고 부인이 유산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비정규직 노조는 하청업체 폐업에 대해 "경영상의 이유를 들고 있지만 지난 7년동안 업체들이 폐업한 예가 없다"며 "노조활동을 방해할 목적으로 이뤄진 위장, 불법적인 폐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a 25일 민주노총광주전남본부 소속 노조원 등 5000여명은 현대하이스코 순천 공장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공장 진입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100여명의 경찰과 집회 참석자들이 부상당했으며 흥분한 시위대가 경찰 차량에 불을 지르는 등 사태가 격렬하게 번졌다.

25일 민주노총광주전남본부 소속 노조원 등 5000여명은 현대하이스코 순천 공장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공장 진입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100여명의 경찰과 집회 참석자들이 부상당했으며 흥분한 시위대가 경찰 차량에 불을 지르는 등 사태가 격렬하게 번졌다. ⓒ 뉴시스 제공

하청업체 노동자 "말이 도급이지 사실상 고용주는 하이스코"
하이스코 "우리 문제 아니다" 모든 대화 거부


거리로 내몰린 비정규직 노조는 지난 7월 파업투쟁 선포식을 연 이후 4개월여 동안 준법투쟁을 벌이며 하청업체는 물론 원청사인 현대하이스코 측에 교섭을 요구했다. 그러나 협상 테이블은 마련되지 않았다.

하청업체의 폐업과 해고 등에 대해 비정규직 노조는 그 책임이 현대하이스코 측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이스코 측이 하청업체 비정규직에게 직접 작업지시를 하고 생산공정에서 정규직들과 동일한 노동을 했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조 차행태 부지회장은 "우리들을 실질적으로 지휘·감독한 것은 하청업체가 아니라 하이스코였다"며 "말이 도급이지 사실상 고용주는 하이스코"라고 주장했다. 그는 "완전도급을 위장한 불법파견"이라며 "그래서 우리는 하이스코와 협상을 해야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정규직 노조 등에 따르면, 하이스코는 지난 99년 2월 ISO9001을 인증받으면서 작성한 '품질경영메뉴얼'에 작업표준, 업무, 근무표준, 업무분장, 지휘감독체계 등 하청업체 직원들의 작업 등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는 노동부가 이 문서를 확인한다면 불법파견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하이스코는 불법파견과 위장도급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하이스코 측은 "하청업체와는 완전한 도급 계약을 맺어 생산공정을 운영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원청사인 하이스코측이 비정규직 노조의 협상 요구에 나서지 않고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하청업체 직원들의 문제를 왜 우리에게 묻느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 민주노총 등은 자료를 취합해 11월 중에 불법파견 등에 대해서 노동청에 진정서 등을 접수할 예정이다.

a 단병호, 심상정, 이영순 민주노동당 의원을 비롯해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현대 하이스코 공장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단병호, 심상정, 이영순 민주노동당 의원을 비롯해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현대 하이스코 공장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 광주드림 안현주

강제진압만 남았나

4개월 동안 비정규직 노조의 협상 요구에 하이스코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해왔다.

결국 지난 10월 24일 새벽 1시30분을 기해 비정규직 노조원 61명은 하이스코 순천공장 B동과 Q동의 20m 높이 크레인을 점거했다. 하이스코는 이날부터 공장 가동을 전면 중단해야 했다.

2일, 점거농성은 열흘째를 맞고 있다. 이들은 "배가 너무 고프다"고 호소하면서도 원직복직 등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결코 내려오지 않겠다는 뜻을 굽히지않고 있다.

경찰은 점거공장의 벽면을 뜯어내는 등 강제진압을 위한 수순을 밟고 있으며, 최소한 이번주 안에는 강제진압에 들어갈 전망이다. 지난달 31일 순천공장을 방문한 허준영 경찰청장은 "이번 주 안에 자진해산하기를 바란다"고 사실상 최후통첩을 보낸 상태. 공장은 그 어느 때보다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a 현대하이스코 하청업체 해고 비정규직 노동자 61명이 순천 B동과 Q동 크레인 7대를 점거농성에 들어간지 5일째인 28일 오후 공장 밖에 있던 민주노총 관계자 등이 함성을 지르자, 농성중인 노동자들이 옥상에 올라 손을 흔들고있다.

현대하이스코 하청업체 해고 비정규직 노동자 61명이 순천 B동과 Q동 크레인 7대를 점거농성에 들어간지 5일째인 28일 오후 공장 밖에 있던 민주노총 관계자 등이 함성을 지르자, 농성중인 노동자들이 옥상에 올라 손을 흔들고있다. ⓒ 광주드림 안현주

민주노동당과 시민사회단체는 "모든 것은 대화로 해결하라"며 하이스코 측에 협상을 촉구하고 있지만, 하이스코측은 모든 대화를 단절한 채 경찰의 강제진압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1일 "최근 하이스코 대표이사와 사장을 면담했다"는 열린우리당 한 의원은 노조의 원직복직 등에 대해 "'(경영진이) 직접 테이블에 나갈 수는 없다, 할 수 있는 성의는 하겠다'는 의사를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대하이스코 측은 순천공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그룹 계열사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더더욱 협상에 나서지 못하는 것 같다"며 간접적으로 경영진의 입장을 전달했다.

경찰의 강제진압이 이뤄질 경우, 이에 저항하는 농성자들의 안전이 보장받을 수 없다는 우려가 높다. 특히 농성자들은 화염병과 시너를 소지하고 있고, 바닥에 구리스 등을 발라놓아 저항하는 과정에서 불상사가 일어날 위험이 높다.

이와 관련 조충훈 순천시장은 "현대하이스코는 법적인 측면만을 강조하지 말고 기업의 지역사회에 대한 책무와 봉사정신을 생각해 평화적인 해결을 위한 대화에 성실하게 임해달라"고 촉구한 바 있다.

한편 자동차 강판과 강관 등을 생산하고 있는 현대하이스코(대표이사 김원갑 부회장)는 순천과 당진, 울산에 공장이 있으며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837억원이다. 순천공장에서는 정규직 250여명과 비정규직 450여명이 일하고 있다.

a 1일 밤 현대하이스코 순천공장 농성자에게 음식물과 물을 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가 경찰의 저지를 뚫고 정문 안으로 진입을 시도하는 가족들.

1일 밤 현대하이스코 순천공장 농성자에게 음식물과 물을 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가 경찰의 저지를 뚫고 정문 안으로 진입을 시도하는 가족들. ⓒ 김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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