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만 북한 17번 다녀왔어요"

[인터뷰] 이윤상 나눔인터내셔날 대표... "대북지원, 남북한 마음 열어줄 지름길"

등록 2005.11.03 10:13수정 2005.11.0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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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윤상 나눔인터내셔널 대표

이윤상 나눔인터내셔널 대표 ⓒ 오마이뉴스 남소연


"대북지원 사업을 위해 지금까지 북한을 49번 다녀왔습니다. 올해만 평양·개성을 포함해 북한을 17번 갔다 왔어요."

대북지원 단체인 (사)나눔인터내셔날 이윤상(42) 대표의 말이다. 그가 처음 북한을 방문한 것은 2001년 3월. 그 때부터 1년에 평균 10번 이상 북한을 드나든 셈이다. 올해는 한달에 북한을 3번이나 다녀온 적이 있다고 그는 털어놓았다. 우리나라에서 북한을 가장 많이 다녀온 인사 가운데 그가 꼽히는 이유를 알만하다.

여성인 그가 자주 북한을 드나들다 보니 북한 관계자들이 그에게 "도대체 김치 담그는 법은 아느냐"고 종종 묻는다고 한다. 가부장적 사회인 북한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더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하는 게 쉽게 납득이 안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 관계자들은 대북지원 사업을 위해 애쓰는 그에게 "협력사업을 위해 정말 수고한다"며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서로 이해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 남북관계 경색 땐 발 동동

이 대표가 대북지원 사업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1996년. 당시 북한이 대홍수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이 국제사회에 알려지면서부터다. 사회복지법인인 굿네이버스에 몸담고 있었던 그는 중국을 통해 대북지원에 나섰다.

"당시 저는 굿네이버스 해외지원 사업본부에서 제3세계를 지원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어요. 방글라데시·네팔·케냐 등의 난민들을 집중적으로 돕고 있었지요. 그러다가 북한이 큰 어려움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알고 대북지원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제3세계를 돕는 것과는 분명히 뭔가 다른 보람을 느꼈어요. 누군가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10년 가까이 북한을 드나들며 대북지원 사업에 앞장섰다. 그러나 모든 게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반세기가 넘게 다른 체제와 문화 속에서 살았던 만큼 그 벽을 뛰어넘기가 쉽지 않았다.


이 대표는 "무엇보다 서로를 이해하기가 어려웠다"며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며 그간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갑작스런 남북관계의 경색도 그에게는 또다른 어려움이었다.


"지난해 6월 조선적십자종합병원 정형외과 수술실을 개·보수 해주기로 북한의 조선의학협회와 합의했어요. 곧바로 병원 측은 수술실의 낡은 유리창을 모두 부숴버렸습니다. 남측으로부터 물자가 곧 도착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한달 후에 발생한 대규모 탈북자 입국과 김일성 주석의 조문파동으로 남북관계가 갑자기 경색되는 바람에 저희 단체 관계자들이 한동안 방북할 수가 없었어요. 따라서 북한 주민들이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도 수술실을 사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는 너무 안타까웠어요."

2002년 10월 발생한 제2차 북핵 위기도 대북지원 사업에 어려움을 초래했다. 모금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당시 북한을 바라보는 사회 분위기가 너무 싸늘했다"며 "대북지원에 필요한 물자와 자금을 모으기가 어려웠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순수하게 북녘동포 돕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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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남소연

이런 와중에 이 대표의 신상에 변화가 찾아왔다. 9년간 몸담았던 굿네이버스를 떠나, 지난해 2월 나눔인터내셔날을 새로 만든 것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굿네이버스는 제3세계 지원·보건복지 사업 등 하는 일이 다양했어요. 그러나 저는 대북지원 사업에 전념하고 싶었습니다. 나눔인터내셔날을 새로 만든 것은 그 때문이지요. 각계에서 말없이 일하는 평범한 사람들과 힘을 합해 북녘 동포들을 순수하게 돕고 싶었어요."

나눔인터내셔날은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지난해만 무려 20억원 상당의 물자를 북한에 지원했다. 올해는 지난 해에 비해 두배나 되는 43억원 상당의 물자를 지원할 것으로 이 대표는 내다봤다. 이 대표의 전문성과 헌신적인 노력이 가져온 결과였다.

그는 86년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후, 곧바로 세계적인 구호단체인 월드비전과 유엔아동기금(UNICEF)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했다. 이후 굿네이버스를 거쳐, 20년 가까이 지원사업에 종사했다. 이러한 그의 전문성이 마침내 꽃을 피기 시작한 것이다.

잦은 출장에 북한 관계자도 "서울은 갔다 오셨나요?"

현재 나눔인터내셔날은 북한에 보건·의료 지원과 아동 지원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무엇보다 인간의 생명이 존엄하다는 이 대표의 평소 소신이 반영된 결과다.

특히 우리 민족의 통일세대인 북한 어린이들의 건강과 교육 문제는 결코 외면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지난달 27일 평양 만경대구역 축전1동에 '평양의료협력센터'를 세워준 것도 같은 맥락이다.

1년여의 공사 끝에 완공한 이 센터는 의료장비센터와 의료연구센터의 2개 건물로 구성돼 있다. 의료장비센터는 북한의 병원에서 고장난 의료장비를 수리하고 남한에서 지원하는 의료장비를 보관·수리하는 곳이다. 의료연구센터는 말 그대로 보건·의료분야를 연구하고, 북측에 의료 기술을 전수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이 대표는 설명했다.

북한 출장이 너무 잦아 가족 식구들의 불만이 크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대표는 "항상 미안하게 생각한다"며 "하지만 가족들도 이제는 북한 다녀오는 것을 중국이나 부산을 다녀오는 것처럼 여긴다"고 대답했다. 심지어 그의 잦은 북한 출장에 북측 관계자들도 "서울 갔다 왔느냐, 아니면 여기에 계속 있었느냐"고 묻는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을 들려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나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껴서 나누는 게 진짜 나눔입니다. 우리가 작은 것이라도 이웃과 함께 나눌 때 우리 사회는 보다 밝아지고 행복해져요. 특히 어려운 북녘 동포들과의 나눔은 남북한이 마음을 열고 화해할 수 있는 지름길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남과 북이 마음의 벽을 허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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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현 기자는 오마이뉴스 고정 칼럼니스트입니다. 건국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 연구위원을 거쳐 94년 <중앙일보>에 입사, 현대사 및 북한 담당 전문위원을 역임했습니다. 현재 <오마이뉴스> 부사장 겸 건국대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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