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과 기다림이 여행의 매력

충북 월악산에서 가을을 느끼다

등록 2005.11.12 13:54수정 2005.11.14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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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0일 월악산에 다녀왔다. 동서울터미널에서 8시 40분 버스를 타고 갔다가 산을 내려온 뒤 까맣게 밀려든 가을밤 속에서 반달을 친구삼아 1시간 정도 노닥거리다 서울 오는 7시 10분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원래는 6시 40분 첫차를 타려 했으나 어떻게든 떠나고야 말겠다는 마음으로 전날 밤 1시까지 일을 해야 했던 피로 때문에 일어나지 못하고 말았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역시 버스나 기차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은 아쉬움과 기다림인 것 같다. 말을 바꾸면 곧 버스나 기차 여행의 불편이다. 차창으로 아무리 좋은 풍경이 스쳐가도 차를 세울 수 없는 것이 아쉬움이고, 기다림은 말 그대로 띄엄띄엄 있는 차 시간을 마냥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버스가 수안보를 지날 때쯤 밭 한가운데 서 있던 감나무와 월악산으로 들어가는 초입에서 붉게 타고 있었던 단풍들이 그 아쉬움으로 남아 있으며, 기다림은 떠날 때 동서울 터미널에서 해장국을 먹으며 보냈던 50분 정도의 시간과 아울러 돌아올 때 버스 터미널도 없는 마을 한가운데서 보냈던 1시간의 시간이었다. 버스에 오른 것이 달랑 나 혼자였으니 그 곳에 터미널이 생기길 바라는 것은 나의 지나친 욕심일 것이다.

버스표는 누군가 일러주지 않으면 그곳이 표 파는 곳이란 사실을 절대로 알 수 없는 '소따배기 가든'이란 이름의 식당에서 팔고 있었으며 나는 다행히 월악산 매표소의 친절한 직원에게서 그 비밀스런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곳의 아주머니는 바깥의 쌀쌀한 날씨 속에 식당 앞 들마루에 앉아있는 나에게 식당에 들어와서 기다리라고 했지만 나는 밀려든 짙은 밤 속에서 나뭇잎을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와 가끔 귓전을 울리는 마을의 개짖는 소리가 더 좋아 한 시간을 그렇게 바깥에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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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다른 산과 마찬가지로 월악산을 오르는 길도 여러 갈래다. 나는 덕주사쪽의 길로 올랐다. 초입에선 아직 단풍이 그 고운 자태를 마음껏 자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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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계곡은 원래 물의 차지였지만 가을엔 낙엽의 자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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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잎은 갔지만 감은 남았다. 곧 감도 갈 것이다. 잎과 감은 모두 가기 전에 아름다운 색과 달콤한 맛을 남긴다. 마지막 갈 때 나의 삶도 그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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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이제는 산에 가면 종종 나무들이 모두 제 이름자를 쓴 명찰을 목에 걸고 우리는 맞곤 한다. 어디 그 뿐이랴. 명찰과 함께 자세한 신상 명세까지 곁들인다. 이름도 알고 신상도 알게 되니 좋기는 한데 개인 정보를 이렇게 만천하에 공개해도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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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원래 높이 오르면 멀리 보이는 법이지만 아울러 하늘이 맑아야 한다. 말하자면 시선이 멀리 가려면 '높이'와 '맑음'이란 두 가지 날개를 동시에 필요로 한다. 날이 흐려 높이의 날개 하나만으로 날아간 나의 시선은 그다지 멀리가지는 못했다. 내려다보이는 곳은 충주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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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흐린 하늘의 틈새를 비집고 갑자기 한줄기 빛이 내려오더니 봉우리 하나를 환히 밝혀주었다. 옆에 있던 분이 빛이 밝힌 봉우리가 바로 월악산의 정상인 영봉이라고 일러주었다. 빛으로 길안내를 받는 기분은 아주 신비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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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이제 월악산에서 더 이상 오를 곳은 없다. 여기는 월악산의 정상 영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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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내려다보니 산은 대지의 등줄기이다. 위쪽이 등줄기면 우리가 사는 아래쪽은 그 품이 될 것이다. 우리는 대지의 품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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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산을 내려오는 길에 하늘이 튿어진 구름의 틈새로 빛을 쏟아냈다. 구경났다고 산의 나무들이 모두 그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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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이제 내가 가졌던 높이는 달이 대신하고 숲엔 어둠이 찾아들었다. 까만 윤곽으로 하늘과의 경계선을 그은 나무 위로 뜬 반달은 떠나는 내게 있어 월악산의 마지막 배웅이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동시에 게재했다. 블로그-->김동원의 글터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에 동시에 게재했다. 블로그-->김동원의 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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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갖고 돌아다니면 세상의 온갖 것들이 말을 걸어온다. 나는 그때마다 사진을 찍고 그들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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