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대회 왜 유혈사태 낳았나

[取중眞담] 경찰 '공격이 최선의 방어'?... 진압방식 과거와 달랐다

등록 2005.11.16 23:13수정 2005.11.17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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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협상 국회 비준에 반대하며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집회를 가진 농민들이 국회로 진출하려 했으나 경찰의 진압으로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경찰이 집회장안까지 진압을 하면서 도로로 몰린 농민들이 경찰차에 불을 질러 경찰버스가 전소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과 문화공원 일대는 아수라장이었다. 수십명의 농민들은 거리 곳곳에 피 흘리며 쓰러져 신음했다. 농민 시위대에 고립돼 쇠파이프와 몽둥이로 몰매를 맞은 전경도 적지 않았다. 아스팔트 위는 깨진 돌과 유리조각, 그리고 소화기 분말가루로 어지러웠다. 이들 틈에서 시위대가 흘린 붉은 핏자국도 눈에 띄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은 이날 시위로 농민 113명이 병원에 입원한 것을 비롯해 총 600여 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경찰에 연행된 농민 및 전농 관계자는 모두 56명이다. 경찰쪽 '인명 피해'도 적지 않다. 전경 217명과 경찰 1명이 부상을 입었다.

농민 시위대와 전경이 충돌한 시간은 오후 4시 30분께. 모든 상황이 종료된 시간은 7시께였다. 약 2시간 30분 동안 모두 800여명이 다친 셈이다. 또, 전경버스 7대에 불이 붙었고, 이중 3대는 전소됐다. 국회 진입도로와 금융감독원 일대 도로는 전면 마비돼 퇴근길 정체는 극심했다.

예견된 농민-경찰 출동

사망자만 발생하지 않았을 뿐 전쟁터와 다름없던 상황. 그렇다면 도심 한복판의 전쟁은 어떻게 일어났을까. 사실 농민들과 전경들의 충돌은 해마다 반복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15일 충돌의 결과는 예년에 비해 매우 처참했다. 그 원인은 이날 시위의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전농 등 8개 단체로 구성된 '쌀협상 국회비준저지 비상대책위'와 농민 1만여 명은 15일 여의도 문화공원에서 '고 정용품씨 추모와 쌀협상 비준저지 전국농민대회'를 열었다. 농민들은 정부와 국회의 쌀협상 국회비준안 11월 통과 예고에 오래 전부터 반발해왔다. 여기에 지난 11일 전남 담양에서 농민 정용품씨가 자살하면서 농민들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15일 집회의 충돌은 이미 예견됐다.

집회를 마치고 행진에 들어간 농민들과 전경들이 처음 충돌한 곳은 국회 건너편 국민은행 앞. 경찰은 전경버스 두 대로 국회 진입로를 봉쇄했다. 이에 농민들은 몽둥이와 긴 대나무를 휘둘렀고, 전경도 물대포를 쏘며 시위대를 해산시키려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농민들과 전경들의 충돌은 시위 행렬의 앞부분에 국한된 국지전이었다.

그러나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강제 해산에 나서면서 충돌은 유혈사태로 커졌다. 경찰이 시위대를 밀어붙일 때마다 도로에는 농민들이 피 흘리며 쓰러졌다. 시위대열 앞부분에 국한됐던 충돌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돼 전선이 따로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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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여의도에서 열린 농민집회 도중 경찰과 농민의 충돌로 농민들이 쓰러져 있다. ⓒ 오마이뉴스 박상규

이날 전경의 진압 방식은 다른 시위와 사뭇 달랐다. 전경들은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을 실천에 옮긴 듯 공격적으로 나왔다. 몇몇 전경들은 대열을 이탈해 방패와 곤봉을 휘두르며 농민들에게 돌진하기도 했다. 또 부상을 당해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농민들을 발로 짓밟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많은 취재기자들이 '본분'을 잊고 전경을 말리는 일까지 벌어진 건 그 때문이다.

농민 시위대에 의해 전경버스가 처음 불이 붙은 시간은 오후 5시 30분께. 불길은 곧 진압됐고, 날이 어두워지면서 한바탕 '전쟁'도 차츰 정리돼 갔다. 시위대의 대부분은 집회가 열렸던 여의도 문화공원으로 들어갔고 산발적인 충돌만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시위는 끝날 것으로 보였다.

경찰의 진압 방식은 과거에 달랐다

그러나 평소와 다른 경찰 진압 방식으로 다시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전경들이 갑자기 집회 장소인 문화공원으로 진입한 것이다. 넓은 공원 곳곳에서 농민과 전경 사이의 통제 불능 상태의 싸움이 다시 벌어졌다.

깨진 보도블록과 유리병이 다시 허공을 가르는 등 격렬한 충돌에 의해 부상자가 속출했다. 전경들은 집회 무대를 곧 장악했고, 농민 시위대는 여의도역 방면 금융감독원 쪽으로 밀렸다. 이때 전경버스 3대가 농민들에 의해 전소됐다. "집회장소까지 빼앗긴" 농민들의 분노가 다시 폭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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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 시위대와 전경들이 여의도 문화공원 인근에서 충돌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박상규

이날 집회의 폭력사태와 관련 경찰 쪽은 "해마다 반복되는 농민들의 과격 시위를 그냥 놔둘 수만은 없는 노릇 아니냐"며 "농민들은 버스를 불태우는 등의 범죄 행위를 멈추고 평화적인 시위를 벌여야 한다"고 책임을 농민 쪽에 돌렸다.

전농은 16일 기자회견을 통해 "폭력사태의 책임은 경찰의 살인적인 진압에 있다"며 "15일 사태와 관련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하고 경찰청장 및 서울기동단장에게 법적인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맞섰다.

전농은 오는 21일 다시 국회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 계획이다. 또, 국회가 쌀협상 비준안 처리를 예고한 23일에는 전국의 모든 고속도로와 국도, 그리고 철길에 농기계 진입 투쟁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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