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택한 귀농... 정치 안바뀌면 더 죽을 것"

[빈소-현장] 오늘 새벽 사망한 여성농민 오추옥씨 남편

등록 2005.11.17 15:02수정 2005.11.18 10:13
0
원고료로 응원
a '쌀개방 반대'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음독자살한 여성농민 오추옥씨의 빈소가 대구가톨릭병원 영안실에 마련됐다. 화환 뒤로 고인의 영정이 있다. 잇따른 농민들의 죽음으로 빈소는 더욱 무겁고 황량한 분위기다.

'쌀개방 반대'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음독자살한 여성농민 오추옥씨의 빈소가 대구가톨릭병원 영안실에 마련됐다. 화환 뒤로 고인의 영정이 있다. 잇따른 농민들의 죽음으로 빈소는 더욱 무겁고 황량한 분위기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농사나 운동 경력은 짧았지만 누구보다 열성이던 사람이었는데…."

'성실히 노동하면 땅은 알아줄 것'이라고 믿었던 40대 여성농민이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 '쌀개방 반대' 유서를 남기고 음독 자살을 기도한 후 17일 새벽 치료 중 숨진 여성농민 고 오추옥(41·경북 성주군)씨의 빈소가 대구가톨릭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17일 오전 현재 고인이 문화부장직을 맡고 있던 성주군 여성농민회와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 관계자들을 포함해 유족과 지인들이 빈소를 지키고 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다 잇따른 농민들의 죽음으로 고인의 빈소는 더욱 무겁고 황량한 분위기다. 아직 차려지지 않은 영정 앞에서 갑작스런 비보를 접한 단체 관계자들이 간간히 향을 피우며 조의를 표하고 있다.

남편 "거짓이 없는 게 농사인데... 정치 안 바뀌면 더 죽어"

귀농 6년만에 아내를 잃은 남편 이용식(45)씨는 "거짓 없는 게 농사라 먹고 살기 위해 마지막 택한 것이 귀농이었다"면서 "하지만 늘어가는 것은 빚이고 희망은 사라졌고 아내마저 잃게 됐다"며 애통해 했다.

이씨는 또 "(저 세상으로) 가는 사람에게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면서 "한 사람의 희생으로 (농업을 무시하는) 정치가 바뀔지 모르겠지만 결국 죽는 사람만 안타까운 것 아니냐"고 한숨을 쉬었다. 이씨는 "정치가 안 바뀌면 아내뿐만 아니라 더 많은 농민들이 하나둘 죽어갈 것"이라고 염려하기도 했다.


빈소 주변에는 숨진 오씨에 대한 안타까움이 절절히 배어나오고 있다. 오씨가 평소 적극적으로 활동을 한 터라 주위의 안타까움은 더 컸다.

전여농 최옥주 사무총장은 "(오씨가) 전여농 행사에선 항상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고, 농사나 운동 경력을 짧지만 누구보다 적극적인 분이었다"면서 "갑자기 (음독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전혀 믿기지 않고 답답할 뿐"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최 총장은 "어떤 여성농민이든 고인과 같은 마음이고 고인처럼 될 가능성도 가지고 있는 게 현실"이라면서 "이렇게 농민들이 죽어가는데도 23일 쌀개방 국회비준을 처리하겠다고 공언하는데 분노를 금치 못하겠다"고 말했다. 최 총장은 또 "만약 이런 상황이라면 이제는 죽느냐 사느냐 문제만 농민들에게 남은 꼴"이라고 덧붙였다.

여성단체들 "농민 죽어가는데 눈하나 깜짝 안해" 분노

a 17일 새벽 숨진 고 오추옥씨가 자신의 노트에 남긴 메모. "쌀개방 안돼...(우리 농민들을 다) 죽여라"는 글귀가 남아있다. 고인은 치료 중 의식이 다소 남아있을때도 '수입개방 반대, 정부를 규탄한다' 등의 메모를 남겨 의지를 불태웠다.

17일 새벽 숨진 고 오추옥씨가 자신의 노트에 남긴 메모. "쌀개방 안돼...(우리 농민들을 다) 죽여라"는 글귀가 남아있다. 고인은 치료 중 의식이 다소 남아있을때도 '수입개방 반대, 정부를 규탄한다' 등의 메모를 남겨 의지를 불태웠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고인의 장례는 전여농과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등 농민단체들이 주관하는 전국 농민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하지만 지난 15일 서울 상경 투쟁 이후 국회비준을 앞둔 상황에서 농민들의 투쟁이 연이어 집중돼 있어 장례일정은 3일장으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전여농 등은 전농 단체 간부들이 아직 빈소를 방문하지 못해 이날 오후 전체 회의를 거쳐 구체적인 장례일정과 장례위원회 구성을 결정할 예정이다. 이어 같은 날 오후 3시 고인의 빈소에서 기자회견을 연다.

한편 이에 앞서 17일 오전 10시 전여농을 비롯해 여성민우회, 여성의전화 등 30여개 여성관련 단체들이 서울 여의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쌀협상과 국회비준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 단체들은 "여성농민회 활동에 열정을 다했던 경북 성주의 여성농민이 끝내 운명을 달리 하고야 말았다"면서 "제초제를 마시고 타들어가는 몸으로 간신히 써내려간 유서 앞에 발버둥치는 여성농민을 죽음으로 내모는 이 나라는 과연 누구를 위한 나라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고 분개했다.

단체들은 또 "정부의 쌀협상은 철저히 비밀 밀실협상으로 일관하였을 뿐만 아니라, 각종 이면합의의 의혹이 풀리지 않고 있고 협상의 일부 내용은 아예 비준대상에서 빠져있는 등 갖가지 문제점을 노출했다"고 지적하고 "우리 여성들은 쌀개방으로 인한 농업파탄에 죽음으로 맞선 오추옥 동지의 뜻을 가슴 깊이 새기고 연대해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구경북 오마이뉴스(dg.ohmynews.com)


AD

AD

AD

인기기사

  1. 1 오빠가 죽었다니... 장례 치를 돈조차 없던 여동생의 선택 오빠가 죽었다니... 장례 치를 돈조차 없던 여동생의 선택
  2. 2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3. 3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4. 4 대세 예능 '흑백요리사', 난 '또종원'이 우려스럽다 대세 예능 '흑백요리사', 난 '또종원'이 우려스럽다
  5. 5 윤석열 정부에 저항하는 공직자들 윤석열 정부에 저항하는 공직자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