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라시압 박물관 가는 길김준희
처음으로 나오는 전시실에는 이곳에서 발굴 작업을 했던 당시의 사진들이 주로 있었다. 다음 전시실에는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들이 놓여 있었다. 1-4세기의 아프라시압 역사는 기록된 것이 없어서 오직 고고학에만 의존해야 한다. 이 전시실에는 많은 유물들이 있었다. 알렉산더 시대의 유물부터 세라믹으로 만들어진 도기와 잔, 작은 항아리와 작은 석상들이 있었다.
그 옆에는 그림과 문양이 있는 동전과 엽전을 연상시키는 구멍이 있는 동전, 사람 한 명이 들어갈 만한 큰 항아리도 있다. 물론 이 항아리는 온전한 형태가 아니라 부서진 조각들을 모아서 붙여놓은 것이다. 그 위의 벽에는 이 항아리를 발굴하고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붙어 있다. 이 많은 조각들을 모아서 어떻게 이 큰 항아리로 복원했을까. 아마도 그 작업은 천조각의 퍼즐그림 맞추기보다 더 힘들었을 것이다. 이외에도 9-12세기에 사용했다는 화려하게 채색된 세라믹 그릇들이 많이 있었다.
전시실을 빙 돌아서 나오자 이곳을 관리하는 아주머니가 "프레스코 프레스코"하고 말을 하며 벽화가 보관되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이 벽화가 프레스코 벽화인 모양이다. 이 벽화는 아프라시압 언덕에서 발굴된, 흔히 아프라시압 벽화라고 부르는 것이다. 7세기에 만들어졌다는 높이 2m가 넘는 커다란 이 벽화는 정면과 좌우측으로 나뉘어 있었다.
우측의 벽화는 사냥을 하는 모습이다. 활과 창으로 호랑이같이 생긴 동물을 잡는 그림이고, 좌측으로는 코끼리에 올라 탄 신부와 말을 탄 시녀들, 그 뒤를 따르는 행렬들의 모습이다.
정면으로는 왕이 가운데에 앉아 있고 각국에서 온 사절들이 그 앞에 조공을 위해 서 있는 듯한 모습이다. 이 각국의 사절들은 중국인, 투르크인, 파미르의 유목민 그리고 고구려인도 있다고 한다. 이 벽화가 만들어진 것은 7세기. 당시는 육상 실크로드를 통한 교역이 활발했던 때다. 그 시기에 고구려의 사신이 공물을 들고 사마르칸트를 방문했던 것일까.
이 벽화는 당시 사마르칸트의 문화 역량을 잘 나타내주는 벽화라고 하지만, 전체적으로 낡고 색이 바래 군데군데 떨어진 모습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