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리쉐산 너머 세상 끝으로 가다

중국 운남 여행기(14)

등록 2005.11.21 16:24수정 2005.11.21 17:18
0
원고료로 응원
a 메이리쉐산의 밍융삥촨 모습. 세상 끝에서 무지개를 만나듯, 빙하는 그곳에서 냇물처럼 흘러 내리고 있었다.

메이리쉐산의 밍융삥촨 모습. 세상 끝에서 무지개를 만나듯, 빙하는 그곳에서 냇물처럼 흘러 내리고 있었다. ⓒ 최성수

돌아보면 샹그리라(중띠엔, 中甸)에서 더친(德欽)으로 가는 길은 아득하다. 그 여행길에서 돌아와 일상의 삶에 자리 잡은 뒤에도, 나는 때때로 그 매화마을 눈 덮인 산 가는 길의 오금 저리던 풍경을 눈앞에 선하게 그려내곤 한다.

히말라야 산맥의 한 귀퉁이인 메이리쉐산에는 감춰진 마을 더친이 있다. 그리고 더친을 가는 것은 밍융삥촨(明永氷川)을 보기 위해서다. 히말라야 산맥 깊은 자락에 숨어 있는 빙하에 대한 기대는 어린 날 하늘 저 편에 걸린 무지개를 쫒아 가던 마음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무지개가 있는 세상 끝으로 가면, 늘 그리기만 하고 손에 잡히지 않던 어떤 환영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마음 말이다.


산길에서 소녀를 만나다

버스가 샹그리라 시내를 벗어난다. 낮은 산도 높은 곳인 샹그리라다. 이미 해발 고도가 높을 대로 높기 때문에, 그 높은 곳에 다시 솟아오른 산은 낮아도 높은 산이다.

a 샹그리라를 벗어나는 길목에 펼쳐진 나파하이. 그 초원 호수를 차마고도의 옛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지났을까?

샹그리라를 벗어나는 길목에 펼쳐진 나파하이. 그 초원 호수를 차마고도의 옛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지났을까? ⓒ 최성수

버스 왼편으로 큰 호수가 보인다. 호수 가장자리는 넓디 넓은 초원이다. 호수의 이름은 나파하이(納帕海)다. 겨울에는 호수, 여름에는 초원으로 변한다는 나파하이는 티베트어로 '숲 속의 호수'라는 뜻이다. 해발 3270m에 있는 호수의 물은 흘러 금사강(金沙江)을 이룬다. 차마고도(茶馬古道)를 지나던 사람들은 이 호수의 초원에서 말을 배불리 먹이고, 자신들도 지친 몸을 달랬으리라.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호수는 여전히 그대로이고, 그 길 또한 한적하다. 다만 말이 걷던 그 길을 이제는 자동차가 바삐 달린다. 풍경은 그대로이고 사람은 바뀐 것일까? 나파하이를 옆구리에 매달고 달리는 더친 가는 길은 그래서 더없이 쓸쓸하다.

나는 차마고도를 걷던 옛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길 가로 띄엄띄엄 늘어선 마을들을 바라본다. 유채꽃이 노랗게 핀 밭 귀퉁이에 그림처럼 처마 낮은 집들이 놓여 있다.


고개를 넘어서자, 버스가 허름한 집 마당으로 들어선다. 벽에 지아수웨이(加水)라고 붉은 글씨가 박혀 있다. 물을 더한다? 무슨 집일까 궁금해 하는데, 사람들이 나와 버스 아래 쪽에 호스로 물을 넣는다.

왜 그러냐니까 기사는 차가 열을 받아 식히는 중이란다. 차가 낡은 탓일까, 아니면 히말라야라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맥을 넘기가 그만큼 힘들기 때문일까?


a 밍융마을 가는 길에 만난 소녀. 그 순하고 큰 눈망울이 늘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밍융마을 가는 길에 만난 소녀. 그 순하고 큰 눈망울이 늘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 최성수

난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본다. 길 건너편으로 마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 집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경운기가 한 대 천천히 길을 거슬러 오른다. 경운기 뒤에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눈이 커다란 소녀가 앉아 우리를 보며 생끗 웃는다. 소녀는 검은 개 한 마리를 끌어안고 있다.

사진기를 들이대자 소녀가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본다. 그 눈빛이 더없이 순하고 착해 보인다. 한 마디 말도 없이, 나는 그저 사진만 찍고 소녀와 헤어졌지만, 이상하게도 그 눈빛은 불로 지진 것처럼 내 마음에 남는다. 어쩌면 억겁 전생의 세월 어디쯤에서 만난 적이 있는 것일까? 나는 한동안 소녀를 태운 경운기가 사라진 길을 바라본다. 우리는 기억할 수 없는 숱한 인연들을 얼마나 많이 스쳐 지나며 살고 있는 것일까?

오늘 내 여행도 그런 스쳐 지남의 하나일지 모른다. 내가 이 길에서 마주치는 풍경들과, 사람과, 나무와, 바람과, 햇살들. 지금 스쳐가는 그것들은 어제의 그것이 아니라 이 순간의 그것이리라. 지금, 이곳에서 만나는 세상의 모든 것! 생은 이렇게 늘 스쳐 지나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길은 산을 휘감고, 물은 산을 감싸고

나의 그런 상념을 싣고 버스는 다시 히말라야 한 굽이를 넘어선다. 한없이 오르고 오르는 버스 차창으로는 나무 한 그루 없는 산 주름이 이어진다.

a 더친 가는 길의 산과 마을. 세상의 끝에서 오늘도 사람들은 살아간다.

더친 가는 길의 산과 마을. 세상의 끝에서 오늘도 사람들은 살아간다. ⓒ 최성수

숲이 없는 산은 안타깝다. 괜히 마음 한 가운데가 텅 빈 것 같다. 거대하고 우람한 히말라야 산줄기는 끝도 없이 이어지는데, 그 깊고도 험한 산에 나무가 없다. 그저 툭하니 던져진 것처럼, 산은 제 몸뚱이를 한 점도 가리지 않고 놓여 있다. 그렇다. 그것은 놓여 있는 것이다. 제 의지와 무관하게 내던져진 것 같은 저 텅 빈 산. 그 산의 허리께에 매달아 놓은 띠 같은 길을 버스는 헉헉대며 달린다.

저런 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마다, 산 이곳저곳에 마을이 나타난다. 어떤 곳은 제법 여러 집들이 모여 있기도 하지만, 또 어떤 곳은 집 한 채만 달랑 놓여 있다. 산이 놓여 있는 것처럼, 집도 놓여 있는 것이다. 그 놓여 있는 곳에 사는 사람들의 아득하고 아득한 심정이 문득 내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집이 있는 곳에는 조금 푸른 밭이 있고, 나무도 몇 그루 있다. 그뿐, 더도 덜도 없다. 도시의 삶에 익숙해진 우리의 눈으로는, 도저히 살아 낼 수 없을 것 같은 절대 고독의 땅, 거기에도 사람은 순하게 깃들여 살고 있으리라.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휘젓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풍경에 대한 내 마음의 흔들림 때문이리라. 나의 그런 상념을 아는지 모르는지 버스는 큰 산 속의 작은 벌레처럼 느릿느릿 기어오른다.

한동안 달리던 버스가 산 중턱에서 멈춘다. 중턱이라도 워낙 높은 산이라 발 아래가 아스라하다. 그 아래쪽에 절로 감탄이 터져 나오는 풍경이 자리 잡고 있다.

a 월량만. 물은 산을 감싸고, 길은 물을 따라 흐르고...

월량만. 물은 산을 감싸고, 길은 물을 따라 흐르고... ⓒ 신병철

황토 빛 강물이 산 하나를 휘감고 돈다. 가까이에서 보면 거센 물줄기이겠지만, 이렇게 높은 곳에서 보니 강물은 순하디 순하다. 그저 젖먹이의 어미처럼 산을 보듬어 안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산자락에는 또 길 하나가 강물처럼 자국을 내며 휘감아 돌고 있다. 강과 길이 함께 산을 안고 감도는 이곳은 월량만(月亮灣)이란다. 달 밝은 물굽이쯤이 될까?

요즘은 우기라 물이 황토 빛이지만, 다른 때는 눈부시게 파란 빛이란다. 특히 달 밝은 밤이면 풍광이 뛰어나다는 이곳을 보며 나는 문득 노래 하나를 떠올린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티엔미미(添密密)>의 주제가를 부른 덩리준(鄧麗君)의 <저 달빛은 내 마음(月亮代表我的心)>이란 노래다.

그대는 내게 물었지요,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좋아하는지.
내 마음은 참이에요.
내 사랑도 참이에요.
저 달빛이 내 마음이에요.

내 마음은 떠나지 않아요.
내 사랑은 변하지 않아요.
저 달빛이 내 마음이에요.

당신의 부드러운 입맞춤이
내 마음을 흔들었죠.
아득히 그리운 마음
지금도 예전 같아요.

그대는 내게 물었지요,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좋아하는지.
생각해 보세요. 나를 그려 보세요.
저 달빛이 내 마음이에요.


여리고 우수어린 목소리에, 그의 곡절 많은 짧은 삶이 어우러져 마음을 울리는 노래다. 덩리준은 1954년 대만에서 태어났고, 1996년 프랑스 남자 친구와 태국 치앙마이를 여행하다 천식으로 세상을 떴으니, 겨우 마흔 조금 넘는 생을 살다 갔다.

"낮은 덩샤오핑이, 밤은 덩리준이 지배한다"는 말을 들을 만큼 인기 절정이었던 그의 삶도 짧은 순간으로 끝났으니, 생은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 그러나 그의 노래는 귓전에 남아 이렇게 나그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달빛 밝은 밤, 여기에서 덩리준의 <달빛은 내 마음>을 들을 수 있다면, 하는 몽상에 젖는 사이, 버스는 또 산길을 기어오른다.

a 더친 가는 길, 히말라야의 산록에 자리잡은 동죽림사. 시간이 멈춘 것 같은 티베트 불교 사원이다.

더친 가는 길, 히말라야의 산록에 자리잡은 동죽림사. 시간이 멈춘 것 같은 티베트 불교 사원이다. ⓒ 최성수

히말라야 산록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라마 사원 똥주린스(東竹林寺)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똥주린스는 전혀 절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아니 마을조차 없을 것 같은 산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낡고 바랜 절 건물들이 시간의 더께를 고스란히 감싸 안고 있는 듯한 곳이다. 참배객도 하나 없는 절, 일주문이니 당간지주니 하는 것은 아예 자취조차 없는 곳, 그저 이웃집 대문 열 듯 절 문을 밀고 들어서면 바로 절 마당이 나온다. 꽤 넓은 절 마당 주위로는 절집들이다.

우리가 들어서자, 본채 쪽에서 몇몇 스님들이 그냥 멀뚱히 낯선 관광객을 바라볼 뿐이다. 그 중 한 둘은 놋그릇을 닦고 있고, 다른 한 명은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는 지 아니면 게임을 하는지 정신이 없다. 마치 광고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똥주린스는 특별히 만들어진 종교적 건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스님들이 생활하는 공간일 뿐이다. 그래서 별다른 격식도 없고, 옷깃 여미며 주눅 들어야 하는 마음도 없다. 이웃집 마실 가듯 천천히 둘러보면 괜히 마음이 편안하게 가라앉는 절이다.

절 문 밖으로 나가 건너편에 툭 던져진 히말라야의 거대한 산 경치를 바라보는 것도 일품인 절, 똥주린스. 인적조차 드문 절 뒤쪽으로 몇 채의 집들이 늘어서 있을 뿐, 이름짜한 절에서는 느낄 수 없는 한가로움과 쓸쓸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라마 사원 똥주린스를 뒤로 하고 다시 버스는 출발한다. 그러나 마음을 그 절의 한 귀퉁이에 두고 온 것 같이 아득하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전세 대출 원금, 집주인이 은행에 돌려주게 하자" "전세 대출 원금, 집주인이 은행에 돌려주게 하자"
  2. 2 단풍철 아닌데 붉게 변한 산... 전국서 벌어지는 소름돋는 일 단풍철 아닌데 붉게 변한 산... 전국서 벌어지는 소름돋는 일
  3. 3 결혼-육아로 경력단절, 배우 김금순의 시간은 이제 시작이다 결혼-육아로 경력단절, 배우 김금순의 시간은 이제 시작이다
  4. 4 늙음은 자전거 타는 친구가 줄어들고, 저녁 자리에도 술이 없다는 것 늙음은 자전거 타는 친구가 줄어들고, 저녁 자리에도 술이 없다는 것
  5. 5 "한달이면 하야" 언급한 명태균에 민주당 "탄핵 폭탄 터졌다" "한달이면 하야" 언급한 명태균에 민주당 "탄핵 폭탄 터졌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