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길 끝에 가면 설화호 그 소녀가 있을까?

[중국 운남 여행기11] 마오니우핑의 설화호, 그리고 소녀

등록 2005.09.27 09:47수정 2005.09.27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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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안개 자욱한 마오니우핑. 설산은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고, 라마 사원만이 마오니우핑을 지키고 있다.

안개 자욱한 마오니우핑. 설산은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고, 라마 사원만이 마오니우핑을 지키고 있다. ⓒ 최성수

리지앙(麗江)을 둘러싸고 있는 우람한 산은 위룽쉐산(玉龍雪山)이다. 산 위의 만년설과 구름이 어우러지면 마치 용이 승천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그래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도 모른다.

리지앙 고성의 아기자기하고 한편으로는 들썩이는 풍경에 마음이 다 흥성거리다가도, 문득 그런 복잡한 거리를 떠나 한적한 곳에 가고 싶다면 설산을 향해 떠나보라. 굽이굽이 아득한 산길을 아슬아슬하게 차가 넘어가다 보면, 지천으로 피어 있는 들꽃들을 마주하게 되고, 또 눈이 시리게 푸르른 골짜기 호수를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눈을 들면 시린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 산 꼭대기의 그 희디흰 만년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몇 해 전 겨울에 찾았던 윈산핑(雲杉坪)의 기억을 떠올리며, 나는 마오니우핑(牦牛坪)을 향해 떠난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설산 가는 길은 차들로 막혀 시내보다도 더 혼잡하다. 왜 이리 사람이 많을까 생각하다 보니 오늘이 일요일이다.

중국에서의 토요일과 일요일은 관광지에서 한적함을 찾을 수 없는 날이다. 더구나 요즘이 휴가철 아닌가? 한적함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제대로 구경이나 할 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오래 전, 북경 배낭여행을 갔을 때, 만리장성에서 겪었던 일이 어제처럼 되살아난다. 마침 그날도 일요일이라, 만리장성 입구에는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입추(立錐)의 여지(餘地)가 없다는, 그 송곳 세울 틈조차 없다는 관용구가 그대로 생각날 정도였다. 매표구에서 표를 끊는데, 줄이라고는 없었다. 그저 이곳저곳에서 마구 몸을 밀치며 먼저 매표 창구에 서는 사람이 우선이었다.

그 와중에 줄에 서 있던 나는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느라 허리가 다 뻐근할 지경이었다. 겨우겨우 밀려 매표창구에 돈을 밀어 넣고 네 장의 표를 끊었는데, 그 좁은 창구 틈으로 얼마나 많은 손들이 밀려드는지, 받은 표를 꺼낼 수조차 없었다. 한국 말로 마구 소리를 지르고, 손 좀 치우라고 난리를 친 끝에 겨우 표를 꺼낼 수 있었던 그날의 기억이 악몽처럼 되살아났다.

a 마오니우핑 가는 길. 저 아득한 길이 굽이굽이 이어져 설산에 닿는다.

마오니우핑 가는 길. 저 아득한 길이 굽이굽이 이어져 설산에 닿는다. ⓒ 최성수

역시 예상대로, 설산 입장권 끊는 곳부터 차들이 밀려 아수라장이었다. 입장권과 우리로 치면 환경부담금쯤 되는 돈까지 지불하고 겨우 그곳을 통과하니, 그래도 차가 좀 드물어진다. 점점 깊은 산 속으로 이어지는 길 너머로 설산의 발치만 보인다. 눈은 없다. 그 꼭대기에 분명 희디흰 눈이 남아 있을 테지만, 설산 위는 온통 짙은 안개다.


a 모우평 가는 길의 들꽃. 바람에 제 몸 낮게 감추고 살아가는 지혜가 돋보인다.

모우평 가는 길의 들꽃. 바람에 제 몸 낮게 감추고 살아가는 지혜가 돋보인다. ⓒ 최성수

한참을 달리다 보니, 길가로 푸른 평원이 나타나고, 평원 가득 들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차를 세우고, 평원에 내려 꽃구경을 한다. 높은 산의 꽃들은 다 키가 작다. 바람을 견뎌내기 위해 그 꽃들은 한없이 자신의 몸을 낮추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 여리면서도 강한 몸짓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다시 두어 시간을 달려 이른 곳이 바로 마오니우핑이다. 마오니우핑은 위룽쉐산의 북쪽 끝에 있는 평원이다. 장족(藏族 티벳족)과 이족(彛族)이 주로 이곳에 사는데, 야크 목축이 생업이라고 한다. 마오니우(牦牛)는 야크를 뜻한다. 그러니 마오니우핑은 '야크가 사는 평원'이라는 말이다. 야크는 주로 티벳 지역처럼 해발고도가 높은 곳에 사는 털이 많은 소다.


자연 경치가 아름다워, 봄이면 온갖 꽃들이 비단처럼 피어나고, 여름이면 초록의 풀들이 방석처럼 펼쳐지는 마오니우핑은 어느 계절에 가도 그 풍경이 그림 같은 곳이라고 한다. 그러나 오늘은 그림 같은 풍경이 사람들에 치여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마오니우핑에 올라가기 위해서 리프트를 타야 하는데, 얼마나 사람이 많은지, 꼬불꼬불 이어놓은 줄이 끝이 없다.

a 모우평 리프트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중. 중국 연인은 휴대용 산소통을 들고 즐겁다.

모우평 리프트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중. 중국 연인은 휴대용 산소통을 들고 즐겁다. ⓒ 최성수

표를 사 들고 한 시간도 넘게 기다리는데, 앞줄에 선 중국인 연인들은 그런 기다림도 즐겁다는 듯, 사랑을 속삭이기에 여념이 없다. 아가씨는 휴대용 산소통을 들고 있다. 마오니우핑이 높긴 높은가보다. 나도 휴대용 산소를 사올 걸 하는 생각도 든다. 해발 3500~3700 정도 된다니 결코 낮은 곳은 아니다. 전에 윈산핑도 그냥 갔었는데 뭐, 하며 스스로 위안을 한다.

한동안 기다려 마침내 리프트를 탄다. 햇살이 쨍하고 비친다. 잘하면 설산을 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부푼다. 리프트에서 휴대용 배낭에 든 물건을 꺼내다 보니, 일회용 커피 봉지가 팽팽하게 부풀어 있다. 고산지대에 왔다는 실감이 난다. 전에 윈산핑에 갔을 때, 리프트에서 내리니 잠시 머리가 띵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리프트에서 내리니, 온통 꼬치 굽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눈 저 아래쪽은 넉넉하게 평원이 펼쳐지고, 푸른 벌판이 싱그러운데, 내려가는 길 양쪽으로는 기념품 가게와 음식점 천지다. 그 음식점들에서 주로 파는 것이 꼬치 구이. 무슨 고기냐고 물으니, 야크란다. 리지앙의 시내에 야크 육포 파는 집이 있는 것을 보고, 야크 육포도 먹는구나 생각했는데, 여기서는 꼬치구이로 만들어 팔기도 한다.

하긴 육포도 먹는데 꼬치구인들 못 먹으랴, 이따 올 때 하나 먹어봐야지, 하며 지나친다. 작은 돼지를 통째로 구워 바비큐처럼 해놓고 파는 곳도 있다. 양 옆으로 늘어서 관광객의 발길을 잡는 가게 숲을 지나니, 나무로 발판을 해 놓았다. 그 나무 발판 길을 따라 언덕을 내려갔다 올라갔다 하며 마오니우핑이 펼쳐져 있다.

a 모우평으로 내려가는 길의 가게들. 저 가게들을 통과해야 모우평을 구경할 수 있다. 가게들은 꼬치구이와 기념품을 파느라 바쁘고, 여행가는 꼬치 굽는 연기에 숨을 몰아쉬어야 한다.

모우평으로 내려가는 길의 가게들. 저 가게들을 통과해야 모우평을 구경할 수 있다. 가게들은 꼬치구이와 기념품을 파느라 바쁘고, 여행가는 꼬치 굽는 연기에 숨을 몰아쉬어야 한다. ⓒ 최성수

언덕을 몇 개 올라도, 그러나 설산은 보이지 않는다. 온통 안개 천지다. 안개는 마치 제 집이라도 되는 듯, 펼쳐진 평원에 켜켜이 내려앉아 있다. 저 안개 너머에 설산이 있으리라. 설산이 과연 무엇이기에 이렇게 설산을 찾아 먼 길을 달려오는 것인가? 설산은 신비로움이며, 인간의 심연에 내재해 있는 고향과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오래 전, 실크로드를 답사할 때, 우루무치에서 보았던 천산(天山)의 그 가슴 뛰던 설산 풍경이 마음에서 되살아난다. 타클라마칸의 아득한 사막 벌판에 솟아 있는 천산도 장관이지만, 그 천산의 머리 위를 덮고 있던 눈부신 눈의 모습을 보며, 어쩌면 인류는 사막의 모래바람 속에서 시작된 것이고, 그 생존의 근거가 저 설산의 눈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마오니우핑의 설산은 보이지 않는다. 안개만 자욱할 뿐이다. 보이지 않으니 더 보고 싶은 것이 인간의 심리인 탓일까? 발걸음이 자꾸 설산 가까이로 향한다. 그러나 다가가면 갈수록 짙은 안개뿐이다. 마오니우핑에 있는 연못인 설화호(雪花湖)도 찾지 못한다. 그저 사방을 덮고 있는 안개만 구경한다. 상상 속에서 안개 뒤에 숨어 있는 설산과 호수를 떠올릴 뿐이다. 마음에 그리라고 저렇게 안개가 지천인 것인지도 모른다며, 설산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랜다. 설화호, 눈꽃 호수는 마오니우핑에 있는 호수 이름이다.

a 구름과 안개에 가려 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설산.

구름과 안개에 가려 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설산. ⓒ 최성수

오래 전, 이 설화호 근처에 한 장족 소녀가 살고 있었다. 야크를 길러 젖을 짜고, 또 그 야크 털로 옷감을 지어 입고, 봄이면 들꽃에 묻혀 까르르 웃음을 짓던 그 소녀에게는 제 목숨보다도 아끼는 어린 야크가 한 마리 있었다. 사람이 귀하고, 나무나 풀, 구름이 동무였던 소녀에게 새끼 야크는 다른 무엇보다도 가까운 친구 같은 존재였다.

어느 날, 소녀는 새끼 야크를 데리고 설화호 근처로 갔다. 호수 근처에 지천으로 깔린 풀을 뜯어 먹게 하기 위해서였다. 새끼 야크는 온갖 꽃들과 풀들을 보자 신이 나서 고개를 홰홰 내저었다. 먹을 수 있는 풀이 무진장했기 때문이다. 소녀는 새끼 야크를 호숫가에 풀어놓고 벌판에 누워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과 설산에 눈부시게 내려앉아 있는 눈을 바라보았다. 눈이 시려왔다.

저 푸른 하늘과 흰 구름, 흰 눈은 어디서 시작되는 것일까? 소녀는 그런 생각을 하며 누워 있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햇살이 너무 따가워 퍼뜩 눈을 뜬 소녀는 먼저 새끼 야크를 찾았다. 그러나 어디에도 새끼 야크는 보이지 않았다. 놀란 소녀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새끼 야크를 불렀다.

"애기 야크야, 애기 야크야!"

한참을 부르자 어디선가 슬픈 야크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곳은 호수 속이었다. 자세히 보니, 자기가 그렇게 아끼던 새끼 야크는 호수에 빠져 물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어머, 저를 어째."

소녀는 다급한 마음에 얼른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곤 죽어라 하고 헤엄을 쳐 새끼 야크에게 다가갔다. 겨우겨우 새끼 야크에게 다가간 소녀는 온 힘을 다해 새끼 야크를 호숫가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새끼 야크도 살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렇게 얼마나 애를 썼을까. 마침내 새끼 야크는 호숫가 낮은 곳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새끼 야크를 살리기 위해 온 힘을 다 쏟은 소녀는 그만 기진맥진해서 호수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호숫가로 나온 새끼 야크는 풀밭에서 오랫동안 소녀를 기다렸다. 자신을 자식처럼 길러 준 소녀에 대한 그리움이 새끼 야크의 마음 속에 가득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장족 소녀는 물 속에서 떠오르지 않았다.

'왜 떠오르지 않는 거지? 물 속에서 무얼 하는 걸까? 안 되겠다. 저 물을 다 마셔버리면, 나를 그렇게 사랑하던 소녀가 살아나올 거야.'

그렇게 생각한 새끼 야크는 호수에 다가가 물을 양껏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마셔도 호수의 물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 후부터, 소녀를 그리워한 야크들은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설화호의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야크들이 설화호의 물을 다 마시고, 마침내 장족 소녀를 찾아 낼 날은 과연 언제일까?

a 야크. 설화호에 빠졌던 야크가 성장한 것일까? 고산 지대에 사는 야크의 운명은 슬프다.

야크. 설화호에 빠졌던 야크가 성장한 것일까? 고산 지대에 사는 야크의 운명은 슬프다. ⓒ 최성수

리프트 타는 곳으로 돌아오는 길, 어린 아이가 말을 타고 안개를 헤치며 달린다. 장족 소년인가보다. 그 소년이 가고 있는 곳이 설화호? 혹은 설산 속? 나는 설화호에 얽힌 전설을 떠올리며 천천히 걷는다.

군데군데 털이 긴 야크들이 풀을 뜯고 있다. 그들의 움직임이 느릿느릿하다. 바쁠 것 없다는 듯, 조금씩 움직이며 풀을 뜯는 그 야크들이 어쩌면 마오니우핑의 주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양껏 풀을 뜯고는 다시 장족 소녀를 찾아 설화호로 가 물을 마시리라.

천천히 걸어 돌아오지만, 조금 숨이 가쁘다. 역시 고산은 고산이다. 리프트 앞 광장에 오니, 여전히 온갖 꼬치구이 연기가 피어오른다. 그 한 구석에 앉아 꼬치를 구워 파는 소녀가 있다. 수수한 얼굴에, 오랫동안 씻지 않았지만, 그러나 순박해 보이는 얼굴을 한 소녀의 모습은 우리 나라 소녀와 똑같다. 아니, 요즘 우리 나라 소녀들의 얼굴형이 바뀌었다고 하니, 내 어릴 때 함께 놀던 소녀들의 모습을 닮아 있다. 열심히 꼬치를 굽기에 다가가 물어본다.

"이거 무슨 고기냐?"
"야크다."
"이 거는?"
"새다. 위룽쉐산의 야생 새다."
"이름이 뭐냐?"
"왕슈린(王樹林)이다."

입을 조그맣게 벌리며 부끄러움을 가득 담고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소녀는 오래 전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고향의 얼굴을 닮아 있다. 나는 야크 꼬치 몇 개와 야생 새를 구워달라고 하고, 소녀의 모습을 지켜본다.

a 마오니우핑 광장에서 꼬치구이를 파는 장족 소녀. 언제 설화호에서 나왔을까?

마오니우핑 광장에서 꼬치구이를 파는 장족 소녀. 언제 설화호에서 나왔을까? ⓒ 최성수

연기 때문에 고개를 이리저리 저으면서도 소녀는 재빨리, 그러나 정성스런 행동으로 꼬치를 구워 내민다. 맛이 좋다. 야생 새를 이렇게 잡아먹어도 되나 하는 생각도 했지만, 하여튼 새 고기 맛은 좋다. 사진을 찍어도 좋으냐니까 소녀는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약간 경직된 표정으로 소녀는 내게 포즈를 취해 준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자 소녀가 나를 부른다.

"사진 부쳐줄 수 있나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첩을 내밀자, 소녀는 깨알 같은 글씨로 주소를 적어준다. 너무 작은 글씨에 간체자라 내가 몇 글자를 크게 쓰며 묻다 보니 뭔가 이상하다. 주소가 약재점(葯材店)이라고 돼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의아해 하며 그 글자를 짚자 소녀가 다시 배시시 웃으며 광장 앞의 가게를 가리킨다. 가게 간판이 약재점이다. 알고 보니, 그 가게를 통해 우편물을 받는다는 거다.

그럼 소녀의 집은 어디? 마오니우핑의 어느 깊은 골짜기가 집일까? 관광객이 오는 계절이면 이렇게 나와 꼬치구이를 팔고, 다른 계절이면 초원에 풀어놓은 야크를 돌보며, 어쩌면 고단한 한 생을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다시 소녀의 얼굴을 보니, 어느 구석엔가 쓸쓸한 표정이 남아 있는 것 같다. 내 눈 앞에 문득 야생화 가득한 초원을 느릿느릿 야크떼를 몰고 그 소녀가 지나가는 풍경이 스친다. 새끼 야크 한 마리가 호수 속으로 빠져들고, 소녀가 또 천천히 호수로 들어가 야크 새끼를 구해 내는 모습도 스쳐간다.

a 모우평의 소녀들. 웃음이 맑다.

모우평의 소녀들. 웃음이 맑다. ⓒ 최성수

아, 설화호로 들어가 새끼 야크를 구하고 영영 떠오르지 못했던 그 소녀가 바로 여기 앉아 있는 저 장족 소녀는 아닐까? 야크를 구하러 갔던 소녀는 이렇게 여름 한 철, 관광객들이 흘리는 푼돈을 찾아 햇살 나른한 고산의 광장에서 꼬치를 굽고 있고, 소녀를 잃어버린 야크들은 또 하염없이 설화호에서 물을 마시고 있을지 모른다. 생이란 얼마나 덧없고 쓸쓸한 것인가!

마오니우핑을 떠나기 위해 돌아서는 내게, 소녀는 쌩끗 웃으며 고개를 까딱 인사를 했다. 나는 리프트를 타러 돌아서며, 저녁 햇살 속에 환영처럼 앉아 있는 소녀를 다시 한 번 바라본다. 거기 어디 새끼 야크 한 마리가 서 있었던 것처럼 느낀 것은 나의 낭만적 상상력 때문일까?

a 바이수이허. 위로 올라가면 설산이다. 그 설산을 향해 가는 길은, 그러나 안개에 가려 있다.

바이수이허. 위로 올라가면 설산이다. 그 설산을 향해 가는 길은, 그러나 안개에 가려 있다. ⓒ 최성수

다음 여행지인 빠이수이허(白水河)의 맑고 시린 물을 보며 나는 또 야크를 구하러 호수로 뛰어든 장족 소녀를 떠올린다. 빠이수이허의 물살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니, 온통 귓전을 흔드는 물소리와 함께 길은 설산을 향해 이어져 있다. 그 길을 끝없이 가면 설화호의 소녀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그러나 설산을 향한 길의 끝은 짙은 안개에 묻혀 있고, 하늘은 용트림을 하는 듯, 온통 구름에 휘감겨 있다.

세상에는 만날 수 없고, 찾아 갈 수 없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저, 가슴을, 쥐어뜯는 것 같은, 삶의, 모호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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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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