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수능시험, 음식을 가려서 드시라고요?

수능시험에 부모님의 마음이 애틋합니다

등록 2005.11.23 09:14수정 2005.11.23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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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밥상이 푸짐합니다. 상추, 쑥갓, 고추, 깍두기, 제가 제일 좋아하는 호래기채나물, 청국장 등등.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없습니다. 저는 큰 양푼에 밥을 비비기 시작합니다. 상추와 쑥갓과 고추 썬 것과 호래기채나물과 청국장이 들어갔습니다. 밥을 비비면서도 침이 꼴깍꼴깍 넘어갑니다. 아내는 옆에서 참기름도 몇 방울 떨어뜨립니다. 고소한 냄새가 입맛을 자극합니다.


a 청국장 상추 비빔밥입니다

청국장 상추 비빔밥입니다 ⓒ 박희우

"여보, 근데 말이지요. 감기에는 삼겹살이 좋대요. 저번에는 감기 드셨을 때 삼겹살을 곧잘 드셨잖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왜 안 드시는 거지요. 무슨 이유라도 있으세요?"

저는 밥숟갈을 입에 가져가다 말고 씩 웃습니다. 그러면서 낮에 있었던 얘기를 들려줍니다. 오늘 점심때였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다들 고민하는 눈치입니다. 오늘따라 마땅히 먹고 싶은 음식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걸을 수도 없습니다. 일행은 4명입니다. 서로 얼굴만 쳐다봅니다. 날씨가 제법 쌀쌀합니다. 저는 연신 코를 훌쩍거립니다. 목이 칼칼하고 가래가 낀 것 같습니다. 으스스 몸이 떨리기도 합니다.

이거 감기에 걸린 것 아냐, 순간 저는 깜짝 놀랍니다. 감기에 걸리면 큰일입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과 달라서 감기에 한번 걸리면 며칠 동안 꼼짝을 못합니다. 밥도 못 먹고 하루 종일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제 업무를 다른 직원에게 맡길 수도 없습니다. 건강도 못 챙겨서 남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습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정신이 다 아뜩합니다.

소장님이 저를 힐끗 쳐다봅니다. 아무래도 제 감기기운을 눈치 챘나 봅니다. 길가에 서서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합니다. 갑자기 소장님이 손뼉을 탁 칩니다. 좋은 생각이 떠오른 모양입니다. 저를 보더니 싱긋 웃기까지 합니다. 소장님께서 제 손을 은근히 잡아끕니다.

"계장님, 감기에 좋은 음식이 있으니 갑시다."
"그래요?"


저는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도대체 무슨 음식일까? 저는 소장님을 멀뚱멀뚱 쳐다봅니다. 소장님이 제 귀에다 대고 속삭입니다.

"감기에는 보신탕이 최고랍니다."


그러고 보니 그런 얘기를 들은 것도 같습니다. 뭐, 보신탕이 원기를 북돋아 준다나요. 감기가 뭐겠습니까. 기(氣)가 감소해서 생기는 병 아니겠습니까. 저는 바로 옆에 있는 사무관님에게 의향을 물었습니다. 그런데 어쩐다지요. 사무관님 표정이 밝지 못합니다. 머리를 몇 번 극적이더니 어렵게 말을 꺼내는 것이었습니다.

a 상추와 고추입니다

상추와 고추입니다 ⓒ 박희우

"박 계장님, 그게…."
"괜찮습니다. 말씀해보세요?"
"내일 수학능력 시험이 있잖아요. 큰놈이 수능시험을 칩니다. 아내가 저한테 몸조심, 음식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사실 저는 항상 큰놈에게 부끄러웠습니다. 도대체 제가 해준 게 있어야지요. 아내가 그동안 고생 많이 했습니다.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큰놈에게 매달리다시피 했으니까요. 오늘, 내일 이틀만이라도 조심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쩌지요? 계장님 감기에 보신탕이 좋다는데, 저 때문에…."

"아, 아닙니다. 저 보신탕 안 먹어도 얼마든지 감기 나을 수 있습니다."

저는 황급히 손을 저었습니다. 그러고는 사무관님 손을 꼭 잡았습니다. 자제 분은 분명 고득점 할 것이라며 용기를 북돋아주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소장님께서 한마디 하십니다. 자기 작은 애도 내일 수능시험을 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박 계장님 건강이 염려되어 보신탕을 먹자고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활짝 웃었습니다. 갑자기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꼈습니다. 보신탕이 무슨 대수겠습니까. 그보다 훨씬 좋은 따뜻한 마음들이 이렇게 많은데요. 그분들의 따뜻한 마음이 감기를 날리고도 남을 만했는데요.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겁니다. 우리는 어제 점심을 아주 간단하게 먹었습니다. 육식은 입에도 대지 않았습니다.

a 깍두기와 호래기채나물입니다

깍두기와 호래기채나물입니다 ⓒ 박희우

"호호, 그런 일이 있었군요."

아내가 제 말을 듣고는 살포시 웃습니다. 아내는 제 밥그릇에 상추와 쑥갓을 더 집어넣습니다. 감기에는 삼겹살이나 보신탕보다도 싱싱한 채소가 더 좋다고 말합니다. 뭐, 채소에는 비타민이 많다나요. 어쨌든 우리 가족은 저녁을 참 기분 좋게 먹었습니다.

저는 설거지도 거들어주었습니다. 아내가 저녁 밥상 준비한 것에 비하면 이깟 설거지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내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저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옵니다. 아내도 덕담을 건넵니다. 소장님이나 사무관님 자제분이 수능시험에서 고득점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마음이 따뜻한 부모님을 두셨으니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오."

저는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설거지를 끝내고 우리 부부는 산책을 나갔습니다. 하늘에 별이 총총히 박혀 있는 게 더없이 아름다운 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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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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